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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도 있지, 왜 저래?

보이지 않는 프레임에 갖힌 우리

by 기록하는최작가

[원문장] <프레임>, 최인철 저

진정한 지혜는 내가 나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는 마음의 습관에서 나온다.


프레임이라는 안경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다.
나 역시 그렇다. 나의 실수는 이해할 수 있는 사정이 따르며, 나의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타인의 행동에는 쉽게 눈살을 찌푸리고, 쉽게 판단을 내린다. 마치 내가 가진 정보가 전부인 양, 마치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의 전부인 양.

살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다.
작은 사건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자꾸만 떠오르고, 결국엔 내 생각의 틀을 흔들어 놓는 그런 순간.

몇 년 전의 일이다.
땀을 쭉 빼고 싶은 하루였다. 운동복을 챙겨 헬스장으로 향했다.
런닝머신 위에 올라 운동을 시작하려는 찰나, 이어폰을 두고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순간 실망감이 몰려왔다. ‘이어폰 없이 뛰면 지루할 텐데...’ 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마침 헬스장엔 나밖에 없었다.
나름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런닝머신 위를 달렸다.
아무도 없으니 괜찮을 거라 여겼고, 실제로 방해될 사람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누군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혹시 음악 좀 꺼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곧바로 음악을 껐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없었고, 시끄럽게 튼 것도 아닌데 그 정도도 이해 못하나?’ 나의 행동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며칠 후, 다시 헬스장을 찾았다.
이번에는 이어폰을 잊지 않고 챙겼다. 런닝머신에 올라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TV 볼륨이 귀를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남자가 최대 볼륨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처음엔 참고 뛰어보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결국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TV 소리 좀 줄여주실 수 있을까요?" 남자는 내 말을 듣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며칠 전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달리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찌 보면 그 남자의 입장도 나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역시 ‘그 정도는 괜찮지 않나’ 생각했을 테고, 내가 민감하게 굴었다 여겼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프레임 안에서만 판단하고 있었다.
내가 했을 땐 이해가 되고, 남이 했을 땐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
그것은 타인이 문제여서가 아니라, 내가 쓰고 있는 인식의 안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시선을 갖는다.
자신의 선택에는 배경과 맥락이 있다고 여기고, 타인의 선택에는 배려나 생각의 부족을 문제 삼는다.
이 이중 잣대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고, 우리는 그것이 ‘객관적 판단’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판단조차 프레임이다.
프레임은 단지 생각의 관점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며, 결국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조차 그 프레임 안에서만 유효하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이들이 이 프레임이 '틀'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마치 물고기가 물속에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듯, 우리는 자신이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면서 상대를 비난하고, 정당한 분노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돌아보면, 우리가 던지는 말과 행동에도 충분히 이기적인 시선이 녹아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그날의 헬스장 경험을 통해, 내가 얼마나 나 중심의 사고에 갇혀 있었는지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틀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도. 누군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고 느낄 때, 그 사람도 나처럼 자기만의 당위와 사정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이 공감의 시작이라면, ‘나도 그런 적 있다’는 고백은 이해의 시작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완전히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프레임을 인식하고, 최소한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삶의 태도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쓰고 있는 프레임의 존재를 자각하고, 때로는 그 안경을 벗어보려는 시도를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우리는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고, 더 너그러운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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