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이미지 : 핼러윈에 사탕을 받으러 이웃집을 찾아가는 마녀 복장의 Madison과 한복을 입은 세은이)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지역 축제 - 샤티코크 페어 (Schaghticoke Fair, 9월 미국 노동절 휴일)
미국 축제 : 페스티벌? 카니발?, "페어!"
아내와 가끔 연락하는 같은 학교 성우 엄마는, 어느 날 멀지 않은 곳에 지역 축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샤티코크(Schaghticoke, NY)라는 동네에서 해서 샤티코크 페어(Fair).
미국에서 축제를 일컫는 말은 페어, 페스티벌, 카니발(Fair, Festival, Carnival) 등이 있는데 행사 성격과 내용에 따라 각각 차이가 조금씩 있다. 보편적으로는 페어가 모든 특징을 아우르는 표현인 것 같다.
보통 페어라고 하면 페어그라운드(Fairground)라고 하는 넓은 공터에서 1~2주 정도 하는 축제를 말하는데, 먹거리나 공연만 있는 게 아니라 각종 놀이기구가 설치되고 지역 농장의 작물, 가축에 대한 콘테스트 및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행사를 말한다고 한다.
매년 같은 시기, 동일 한 장소에 페어가 열리는데, 작은 마을 수준도 있고 뉴욕주 수준의 엄청 큰 곳(NY State Fair @Syracus, NY)도 있다.
세은이 같은 어린이들 입장에서는 페어 중에 놀이기구를 타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다.
세은이는 스릴 있는 걸 좋아한다. 아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미국 놀이기구가 동네 근처까지 찾아온다니, 세은이도 가 보고 싶다고 했다.
넓은 나라 미국에선 놀이동산이 사람들을 찾아오지
집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동네인 샤티코크는 10년 전부터 매년 노동절이 있는 주에 페어를 하는 곳이다. 샤티코크 페어그라운드는 시골길을 지나면 나온다.
코비드 때문에 2년을 쉬었기 때문인지,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많은 차들이 주차장 입구부터 줄을 서 있었고 고등학생 정도로 앳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입장권도 팔고 주차도 안내해 주었다.
팸플릿에 쓰여 있기로는 행사장 크기가 여의도 공원정도는 되는 것 같았는데, 1주일짜리 축제 치고는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 넓은 공간을 뭘로 채우는 거지?
주차하고 나서 트랙터로 만든 셔틀을 타보니 가족 단위의 사람들도 많고 데이트를 하러 온 듯한 젊은 사람들의 모습도 많아 보였다.
입구에 들어가니 마치 농축산 박람회처럼 각 농장의 작물과 가축들이 콘테스트 형식으로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젖소 우유 짜기 체험도 해볼 수 있었고, 농기구 회사에서 세운 판매 부스도 있다. 사냥 부스도 있는데 사슴뿔, 여우 가죽 같은 것들을 판매용으로 전시하고 있다.
서커스, 몬스터 트럭 묘기 같은 공연도 있다고 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보지는 못했다. 아쉽지만 미국 초년차에게 페어에서 볼거리는 너무나 많다.
전시 부스의 끝 쪽엔 큰 캔디샵이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어서 세은이도 한참을 있다가 나왔다. 바비큐, 치킨, 양파꽃튀김 같은 음식을 파는 곳마다 대기 줄이 엄청 길다.
(사진) 샤티코크 페어 입구의 안내판. 미국의 노동절은 9월 첫째 주 월요일이다. 개학 바로 직전이다. (왼쪽) 놀이기구가 설치된 모습. (가운데) 놀이기구 티켓 부스. 생각보다 비싼 편이다. (오른쪽) Free Jump에 도전한 세은이. 엄청 주저했지만 결국엔 성공!
페어그라운드 가장 안쪽엔 놀이기구가 있는데 그 종류와 개수가 그냥 지역 축제라고 하기엔 뭔가 제대로 테마파크를 꾸며 놓은 느낌이다. '영화에서만 보던 미국 축제가 이런 모습이구나.'
한국에서 못 보던 것들도 꽤 많았는데, 자유이용권 없이 티켓 박스에서 $1.5짜리 티켓을 여러 장 사고 최대 6장까지 기구 앞에서 내고 타는 시스템이다. 제일 재밌어 보이는 것을 타려면 6장, 그러면 한 사람이 한번 탈 때 $9니까, 우리 세 가족 한번 타려면 35,000원 정도? 어이쿠 꽤 비싼 편이다.
그래도 처음 보는 놀이기구도 타고 처음 본 음식도 사 먹고 성우네 가족도 만나고, 해가 질 때까지 축제 기분을 한껏 즐겼다. 양파꽃튀김까지 먹은 세은이는 꽤 만족한 표정이다.
어둑어둑해져서 돌아올 땐 모든 것이 내일을 위해 정리되고 있었지만 아직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닭과 토끼, 흥겨운 밴드의 음악이 여전히 페어그라운드에 남아있었다.
비용면에서는... 글쎄... 조금은 아쉬웠지만 소소한 즐거운 추억을 하나 만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미국 이웃들의 핼러윈 (10월 31일)
(이 글은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 1년 전에 뉴욕에서 경험한 것들을 지금에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사고 당시, 저뿐만이 아니라 제 주변 미국인 친구들도 한국의 소식을 듣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였습니다. 참사에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고, 그 사고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안고 지내야 하는 분들께도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매년 10월 31일은 핼러윈(Halloween Day)이다. 미국에선 꽤나 중요한 명절이다.
아내와 나는 한국에 있을 땐 핼러윈에 큰 관심은 없었는데, 문화적으로 우리와 상관없는 명절이니까 그랬다.
특히 세은이 또래의 아이들에게 영어 교육이랍시고 무분별하게 아무 배경 설명도 없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주입하는 걸 나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도 핼러윈 행사 같은 곳엔 가 본 적이 없고 세은이에게도 그냥 세계 어딘가에 그런 것이 있다고만 알려줬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명절은 유럽에서 시작된 것이 미국으로 오면서 변형되어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다. 실제로 주변 이웃들도 핼러윈의 유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알더라도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진다.)
미국의 중요한 명절 중 하나인 핼러윈
핼러윈은 더 이상 먼 나라 명절이 아니고 바로 우리 동네 사람들 행사다. 올해는 우리가 미국에 있으니까.
핼러윈이 미국 휴일까지는 아니라서 학교나 회사에서 쉬지는 않지만, 10월 초부터 가는 곳마다 핼러윈의 기운이 넘쳐났다.
마트나 쇼핑몰에는 핼러윈 물건들이 진열대에 가득 찼고, 심지어 아예 팝업 스토어가 생기기도 하고 여기저기에서 각종 장식품과 가면, 의상 등을 팔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동네에도 이 집 저 집 문 앞에 핼러윈 호박이 놓이고 재치 있는 장식품으로 꾸며진 집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모든 집들이 핼러윈 장식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가 있는 집들은 어김없이 뭔가 있는데 꾸밈의 장난기 수준을 보면 그 집 아이의 나이대도 짐작할 수 있다.
서너 집 정도는 핼러윈 꾸미기에 진심인 듯, 자동으로 움직이는 해골, 용 인형이나 큰 유령거미 같은 것들까지 마당에 설치했는데 덕분에 동네가 재미있는 분위기가 되는 것 같다.
우리는 한국에서 약간 부정적으로 생각했었지만, 미국에 왔으니 핼러윈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고 보통의 아이 키우는 가족이 경험하는 것들을 똑같이 해보고 싶었다.
마트에서 큰 호박을 하나($7) 사서 문 앞에 두고, 파티 용품점에서 커다란 거미줄, 묘비석, 쥐 인형 같은 소품을 사서 집 마당 곳곳에 꾸며놓았다.
잘 꾸며 놓은 다른 집들에 비하면 약소한 편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세은이 나이 또래 수준에 구색 맞출 정도는 되었다.
특히, 세은이가 유치원 때 만들었던 각시탈을 찾아서 호박에 씌워 놓았더니 한국 분위기가 더해져서 세은이가 아주 맘에 들어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핼러윈 며칠 전인 금요일 저녁에 학교에서 파티를 한다고 알림장을 보내왔다.
아이들이 각자 적당히(허용되지 않는 복장이 명시) 핼러윈 복장을 입고 오면 선생님들이 사탕을 나눠주고 학교 피크닉 때처럼 아이들이 자유롭게 어울려 노는 행사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진짜" 핼러윈 분위기를 느껴 보는 좋은 기회일 거 같았다. 집만 대충 꾸며놓았지 사탕 받으러 다닐 생각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핼러윈 용품 판매점 구경도 할 겸 세은이가 입을 만한 옷을 직접 골라보라고 했는데 세은이는 한참을 둘러보더니 그냥 한국에서 가져온 한복을 입겠다고 한다.
조금 아쉬웠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그러는 걸까? 안쓰럽고 대견하게 느껴졌다.
금요일 시간 맞춰 학교에 도착해 보니, 이미 아이들이 공룡, 해골, 마녀, KFC 할아버지 등등 각자 재밌는 옷을 입고 와서 학교 곳곳에 있는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사탕을 받고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바구니를 가득 채울 만큼 사탕을 잔뜩 받고, 놀이터에서 자기들끼리 어울려 놀고, 어른들은 아이 친구 부모나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핼러윈 팝업 매장(Spirit Halloween)의 장식 인형들. 집 앞 나무 같은데 걸어두면 아주 그럴싸하다. (왼쪽) 학교 핼러윈 파티 전경. 선생님들이 사탕을 나눠주고 있다. (오른쪽) 핼러윈 분장의 세은이와 Liv, Madison. 아이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놀았다.
우리는 Madison 엄마를 만나서 세은이가 Madison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서 잘 적응하고 있고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도 얘기하고, 선생님들도 만나서 세은이가 우리의 걱정보다 훨씬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피드백도 들을 수 있었다.
세은이는 Madison, Liv, Audrey 등 같은 반 친구들이랑 놀이터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 당시 넷플릭스에서 엄청 유행한, 모든 미국인이 알고 있던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알려주면서 놀고 있었다.
한복을 입은 세은이가 마녀, 좀비, 도로시 옷을 입은 미국 아이들과 해맑게 한국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즐겁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개학 피크닉 때처럼, 학교는 핼러윈 같은 소소한 재미가 있는 행사를 통해, 아이들에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 어른들에겐 선생님 혹은 다른 학부모와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건 참 좋은 문화, 좋은 분위기라고 느껴진다. 아이를 키울 때 어른들끼리의 교류가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그런 기회 자체가 없다. 알음알음으로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학교가 중심이 된 학부모/선생님 교류 모임, 한국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것이고 아마 서울에서 이렇게 되기는 어렵겠지.
핼러윈이 이렇게 학교 활동 소재로 쓰임이 있으니, 아이나 어른들이 복잡한 유래까지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날인 것 같다.
사탕까지 잘 받아왔으니 한동안 쌓아놓고 먹게 생겼다. 다시금 학교 PTA에 감사.
우리 동네 핼러윈 퍼레이드를 가다, 아이들을 위한 핼러윈 "Trick or Treat"
학교 파티를 다녀온 며칠 후, 옆집 꼬마 Gavin 엄마, Sarah한테서 문자가 왔다.
"핼러윈 저녁에 동네 전체에서 퍼레이드랑 트리팅을 한다는데 올해 우리랑 같이 다니지 않을래요?"
'이렇게 고마울 데가. 나는 동네 소식을 어디서 어떻게 보는지도 몰라서 행사 자체를 몰랐는데.'
이 문자를 받고 Sarah의 사려 깊은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동네에서 6년이나 살고 있는 Gavin이네가 같이 갈 사람이 설마 없어서 우리에게 연락했을 리는 없다.
아마 우리가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모를 것 같아서 고맙게도 먼저 연락도 해주고 같이 다닐 기회를 준 것이다.
(내가 살고 있던 주택단지에는 거주자들의 이메일을 등록해서 각종 행사나 소식을 알려주곤 했다. 우리는 그렇게 이웃끼리 소식을 주고받거나 이메일을 등록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동네 연락망에 1년이 넘도록 빠져있었다. 담당자에게 연락처를 보내야 한다는 것도 나중에 옆집에서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
Sarah가 알려준 우리 동네 핼러윈 퍼레이드는...
10월 31일 핼러윈 저녁에 동네 사람들이 각자 분장을 하고 행사 주최자인 Tanya의 집 앞에 모임
아이들을 데리고 인도 차량을 따라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걸으면서 퍼레이드를 한다. 동네 사람 중에 경찰관이 한 명 있어서 아이들 행렬은 경찰차 에스코트를 받을 예정.
퍼레이드가 끝나면, 아이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핼러윈 트리팅 (Halloween Treating, 아이들이 집에 찾아가서 "Trick or Treat!"이라 하고 선물로 사탕을 받는 것)을 하고 끝남.
며칠 전 학교 행사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생각했던 것에 비해 조금 부족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건 정말 진짜 미국 일반 가정의 핼러윈 행사 아닌가.
동네에서 이런 것을 하더라도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뭐가 뭔지 알 수도 없고, 알게 되어도 뻘쭘해서 참여할 수가 없다. 근데 우리는 고맙게도 Sarah 덕분에 진짜 미국의 일상적 핼러윈을 경험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소식을 회사 주재원들 대화방에도 남겼는데, 다른 사람들은 동네에 행사가 아예 없는지, 동네 소식을 몰라서인지, 어쨌든 핼러윈 트리팅을 하러 간다는 사람은 우리 가족 말고는 없었다.
이민자들이 현지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학교나 행사장 같은 곳에서 주는 사탕을 받으러 가는 거야 용기내면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웃의 집에 가서 받아오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동네에서 핼러윈 트리팅을 한다 하더라도 동네 사람 누군가 함께 해주지 않으면 선뜻 나갈 용기가 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다른 주재원들의 반응을 보면서 나는 Sarah에게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왼쪽) 각시탈을 씌워 놓은 우리집 할로윈 펌킨. (오른쪽) 동네 집들 중에 가장 많은 할로윈 장식을 했던 집. 큰 아이가 여럿인 집이었다. (사진) 이웃집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는 모습.
동네 핼러윈 트리팅을 가기 전에 준비를 좀 해야 했다.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아이들이 찾아올 테니 마트에서 초콜릿과 사탕 같은 "핼러윈 트릿 (Halloween Treats)"을 잔뜩 샀다.
우리 집만의 특별한 아이템으로 한인마트에서 산 초코파이와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달고나 사탕을 준비했다. 달고나 몇 개를 따로 챙겨서 옆집에 먼저 주었는데 꽤 반응이 좋았다. 미국 사람들은 역시 오징어 게임을 엄청 많이 본다.
핼러윈 분위기로 예쁘게 칠한 바구니에 가득히 담아서 현관 앞 테이블에 두고 우리도 퍼레이드에 나선다.
세은이는 한복을 입었고, 나는 텍사스 살인마 "제이슨" 티셔츠, 옆집 Gavin은 소방관이 되어서 나타났다.
나와보니 몰랐던 동네 사람들도 꽤 많다. Mark가 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해준다. 나도 열심히 인사를 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어요. 우리 애 옷은 한국 전통 옷이에요."
Mark가 준 맥주를 한 캔 씩 마시며 음악소리와 비눗방울 요란한 퍼레이드 카, 경찰차를 따라 동네를 한 바퀴 천천히 걸으면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퍼레이드라고 해서 별게 있는 건 아니다. 아이들을 앞세워서 동네 한 바퀴 따라 걷는 것뿐이다. 집에 있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집을 나설 때는 옆집 Lodico 가족과 함께 시작했지만 조금 걷다 보니,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애들끼리 몰려다니고, 어른들은 뒤에서 어른들끼리 인사하고 안부도 물으며 시간을 보낸다.
밤 산책 다니 듯 집집마다 꾸며놓은 핼러윈 장식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고 아이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인사하고 사탕도 받아 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퍼레이드나 트리팅은 초등학생 정도로 눈높이가 맞춰진 느낌이어서 아이가 다 커버린 이웃들은 대개 나오지 않고, 집에 찾아오는 아이들을 맞아주는 편이었다.
사탕을 정성스럽게 일일이 포장해서 준 집도 있었고 온 가족이 아예 마당에 나와서 아이들을 맞아준 집도 있었다.
가는 집마다 웃으며 아이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말도 걸어주고 아이들 뒤편 멀찍이 서 있는 부모들에게도 손을 흔들어 주는 등, 이웃 간의 다정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간혹 핼러윈 장식이 없고 불이 꺼진 집도 있는데 Mark는 그런 집엔 애들을 보내지 않는 게 예의라고 했다. 사람이 없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애들이 문을 두드리지 못하게 말리는 게 부모의 일이다.
2시간 정도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트리팅하고 나서, 1년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이 아주 많은 사탕과 초콜릿을 잔뜩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에도 아이들이 많이 왔는지 문 앞에 놓아둔 과자가 많이 없어져 있었고, 특별히 준비했던 한국 아이템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흐뭇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갖고 있던 젊은 아이들의 축제 같은 핼러윈 이미지와는 달리, 미국 일상 핼러윈의 모습은 어린이 위주의 다정하고 가정적인 것이었다.
어른들은 돈과 시간을 써서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간식을 주고, 아이들은 잘 모르는 어른들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걸고 사탕을 달라고 하는 날이다.
우리 동네의 핼러윈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고 평소 잘 모르던 동네 이웃 어른들에게 인사하며 얼굴을 알리는 기회라는 의미가 있었다.
어른들 사이에서도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기존의 이웃들과 알게 되고 동네 생활에 대해 궁금한 것이나 필요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는 친목의 시간이 되는 자리였다.
이렇게 일부러 행사를 만들어서 이웃끼리 서로 어울리는 것,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 등등이 서울에서는 더 이상 경험하기 힘든 것이지 않은가.
벌써부터 내년이 기다려지는 참 포근한 느낌의 동네 핼러윈이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모든 것이 좋기만 하지는 않다. 뉴스에는 사람들의 친절함을 이용한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주의하라는 말과 함께.
(어른들이 차를 타고 다니며 현관 앞 사탕 바구니를 싹쓸이해 버리거나 사탕 안에 이물질을 넣거나 하는 범죄가 뉴스에 종종 나옴)
그리고 같은 미국이라도 사는 곳에 따라, 이를테면 뉴욕시티 같은 곳의 핼러윈은 우리 동네와는 완전히 딴판일 것이다.
하지만 일부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리 동네에서 처럼 미국의 어딘가에선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일상적으로 주어지고 있다는 것, 그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부러운 일이었다.
좋은 이웃을 만났다는 행복함과 뭔가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는 사이 어느덧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또다시 여행준비를 해야 했다. 조금씩 더 먼 곳으로 새로운 곳을 찾아 이동하기로 했다.
Fondly,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