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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fton Parker Jun 16. 2024

17. 미국 초등학교 학부모 면담

December 2021

(커버이미지 : 매우 추웠던 날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세은이. 매우 추웠던 날이라 버스 창문에 고드름이 달려있었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학부모 면담 PTC (Parents Teacher Conference)

9월에 학기가 시작되면 한 해 전체의 일정을 학교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아이가 일찍 끝나거나, 학교 가지 않는 날을 확인해야 한다. 스쿨버스 픽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는 날 중에 학교 행사인 PTC라는 것이 있었다. Parents Teacher Conference의 약자인데 간단히 말해서 선생님과 학부모가 1:1 면담하는 날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없는 문화인데, 1년에 한 번 하고 미리 면담 시간 예약을 해서 학교로 찾아갈 수도 있고 전화로도 한다고 한다. 시간은 15~30분 정도.

12월이 되어 PTC날이 가까워지자 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는데 일정만 묻는 게 아니라 통역이 필요하면 알려달라고 한다. 이민자의 나라이니 학교 면담에 통역을 구해주는구나. 역시 미국 대단하다.

한국어 통역에 누가 오실지는 사실 짐작할 수 있었다. ENL 선생님 Mr. Sweet의 아내가 통역 봉사 일을 한다고 했었으니까.

우리는 방문 면담(전화가 더 어렵다.)으로 하기로 했고 아내도 같이 가야 하니 당연히 통역도 부탁했다.


어떤 얘기를 하게 될지 미리 생각을 해 보니 중요한 얘기들을 제대로 할 수나 있을지 걱정되었다. 아무리 통역이 있다 한들 짧은 시간에 생각을 다 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할 말을 미리 좀 적어서 가져가면 좋지 않을까? 같이 보면서 얘기하면 좀 쉬울 것 같은데'

나는 부모의 직업/배경, 왜 미국에 왔는지, 세은이의 일과 시간표, 영어 과외 선생님, 한국 친구 관계 등등 선생님이 모르실 수 있는 내용들을 글로 정리해서 몇 페이지로 만들고 사람 수 대로 프린트했다.

다 만들고 보니 '한국에서도 이렇게까지 했을까? 너무 과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뭐 어떤가.

이미 학교에서 세은이 적응문제로 여러 번 이메일도 받아 봤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들께 최대한 성의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아이가 잘하지 못하면 아빠라도 잘해야 한다.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주는 것도 필요하고 세은이가 가정에서 충분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 아이라는 것도 보여주고 싶다.


(왼쪽) PTC를 위해 우리가 준비했던 자료의 일부. (오른쪽) 초등학교 복도. 벽에는 학생들이 글과 그림 작품이 걸려있다.


Mrs. Miller 와의 첫 만남 그리고 한 가지 부탁

회사엔 미리 오전 외출 허가를 받아서 (재택근무 중이지만 근태 보고를 해야 한다.), PTC 아침에 프린트를 챙기고 아내와 세은이를 데리고 학교로 향했다.

세은이는 면담에 들어가지 않지만 보호자 없이 혼자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뉴욕 법상 아동학대에 해당) 학교 안에 면담시간 동안 아이가 대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4학년 교실은 2층에 있다. 복도에는 각 반의 아이들의 글과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데, 세은이 것을 찾으며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Mrs. Miller의 교실 217호 앞에 와 있었다.

시간도 늦지 않았다. 노크를 하고 인사를 했다. "Mrs. Miller, How are you? Nice to Meet you."

오리엔테이션에 아내 혼자 갔었기 때문에 나는 Mrs. Miller와 첫 만남이다. ENL선생님 Mr. Sweet과 통역을 도와줄 아내 분도 자리에 있었다.

시작하기 전에 프린트한 자료를 모두 한부씩 나눠주었는데 Mr. Sweet이 쓱 훑어보더니 흡족한 웃음을 지어 주었다.

"이렇게 학교 밖의 일을 알려주시는 게 크게 도움이 됩니다. 이 자료는 아주 맘에 드네요." 다행이다.


Mrs. Miller는 세은이가 굉장히 잘하고 있고 영리한 아이라며 칭찬해 주었다. '정말?'

밝은 아이라 모두가 좋아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 꽤나 적극적으로 수업도 참여한다고 한다.

같은 반, 같은 동네인 Madison에게 세은이의 적응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아주 잘해주어서 두 아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Mrs. Miller는

 "소통이 안 돼서 사고가 좀 있긴 했지만 이민 온 아이들이 거쳐가는 과정이니까 특별히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민 첫 해 성적은 평가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여행도 많이 다니세요."

라며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면서 수학은 아주 잘하지만 글쓰기와 읽기에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우리의 처지를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은이는 2년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예요. 그래서 집에서 매일 한국 학교에서 하는 공부를 엄마랑 같이 하고 있어요. 거기에 더해서 영어 공부를 일주일에 두 번 과외 선생님과 하는데, 학교 숙제, 과외 숙제에 한국 공부까지 하고 나면 솔직히 지금보다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어려운 면이 있어요."

Mr. Sweet은 우리와 같은 아이들을 많이 봐왔다면서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어로 독서를 하고 있으니 무리해서 공부 시간을 더 늘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얘기해 주었다.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었다.

"혹시 만약 우리가 체류기간이 연장되거나, 계속 살게 될 수 있다면, 그런 경우에도 세은이가 자기 나이에 적합한 수준으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가요? 졸업을 하고 중학교에 가는 것이 문제가 없으려나요?"

선생님 두 분 모두 정색을 하고 얘기했다.

"물론입니다. 아이는 아주 잘 따라오고 있고 지금의 문제는 실제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미국에 계속 지낼 수 있다면 진학에 전혀 문제가 없을 거예요.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건, 세은이도 자기가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미국에서의 공부가 의미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 학습하는 것에 대해서 가정에서도 동기부여를 잘해주셔야 해요."


그리고 선생님들은 세은이의 학교 밖 생활을 상당히 궁금해하셨는데, 우리가 미국에 온 뒤로 뉴욕시티, 보스턴, 나이아가라, 워싱턴 DC 같은 곳들을 여행 갔었다고 자랑했다.

우리의 미국에서의 시간이 2년뿐이라 열심히 다녀야 한다고 얘기했더니, Mrs. Miller는 좋은 생각이라며 여행을 다녀오면 사진을 몇 장 보내달라고 한다.

왜냐하면 세은이처럼 여행을 많이 다니는 아이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반 친구들에게 미국의 여행지를 소개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좋은 생각이다.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 이제는 사진도 좀 잘 찍어야겠다.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면담을 하고 있었고, 다음 가족이 기다리고 있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면담을 마칠 때 Mrs. Miller는 세은이의 1학기 성적표(1년이 3학기. 지금이 첫 학기 말)를 주었는데 학부모 의견을 적어서 학교로 보내달란다.


면담 내내 분위기도 좋고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기에 상당히 흐뭇한 시간이었다.

한국에선 선생님과 직접 연락하거나 만나는 게 상당히 조심스러워서 관계가 상당히 경직된 느낌인데 (심지어 아예 관계가 없기도 했음), 이런 식의 면담이면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든다.

자료를 미리 만들어 갔던 것은 선생님들께 좋은 인상을 준 것 같고, 좋은 분위기에서 얘기 나누고 통역 도움 받은 것도 좋은 경험이다.

그리고 Mrs. Miller가 부탁했던 여행 사진은 선생님이랑 정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일 것 같은데, 생각할수록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이건 정말 잘해야겠다.


(오른쪽) 노란 성적표 봉투와 학기 성적표. 학부모 의견을 적어서 봉투에 담아 회신한다.


집에 와서 Mrs. Miller가 준 세은이 성적표를 열어보았다. 각종 점수 기록과 선생님 의견까지 서너 장이다.

성적표는 읽기와 수학을 100점 만점으로 평가하고, 학교 생활 태도 10개 항목을 3가지 등급으로 점수 매기고 있었다. 출결사항, ENL 같은 수업 보조를 받았는 지의 여부도 기록된다.

그리고 선생님 의견이 길게 적혀 있었는데, 세은이를 위해 학교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세은이가 얼마나 잘 따라오고 있는지, 어떤 것이 부족한지 등이 굉장히 자세히 적혀 있었다.

세은이가 보인 작은 발전에도 칭찬해 주어 고마웠고 그 작은 것들을 찾아내고 기억해 준 것 자체도 고마운 일이다.

나는 아이를 잘 돌봐주어 고맙다는 말을 적어서 서명하고 회신 봉투에 넣어서 세은이 등교 편에 보냈다.


한국과는 다른 문화를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풀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좋은 사람들을 연이어 만나니 우리 가족은 참 운이 좋은 것 같다. 일회성이 되지 않게 이 관계를 잘 이어가야 한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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