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December 2021
(커버이미지 : 뉴욕 자이언츠 풋볼팀의 홈구장인 MetLife Stadium. 뉴욕 팀이지만 홈구장은 뉴저지 East Rutherford에 있다.)
프로 스포츠의 나라 미국, 1등은 역시 미식축구(American Football)
날이 많이 추워져서 비니모자 하나 사고 싶었던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나름대로의 애향심으로 '뉴욕'이라고 쓰인 것을 사고 싶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세계 최고 인기 야구팀 '뉴욕 양키스'의 모자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너무 흔하다. 이건 좀 빼고.
다른 것을 찾아보니 뭔가 다른 디자인으로 'NY'라고 쓰인 모자가 괜찮아 보여서 아무 생각 없이 그걸 하나 샀다. (사고 나서 보니 뉴욕 풋볼팀의 모자였다.)
그런데 이 모자를 쓰고 마트 같은 곳에 가면 가끔 모르는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곤 했다. '엥? 왜 나한테?'
느낌상 풋볼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내가 뭘 알거나 경기를 보거나 한 게 아니어서 말없이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꽤 자주 있어서 나는 이유를 알아보고 싶어졌다. 워싱턴 DC 여행 갔을 때(참고 : 16. 여행 4: Washington DC (2/3))도 스포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가.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이게 뭐길래 말을 거는 거지? 남들은 뭘 보고 있는 거지? 어떻게 해야 남들이 보는 걸 나도 볼 수 있지?'
그리고 40대 아저씨라면 본인이 좋아하고 말고를 떠나 스포츠는 일정 수준 상식의 영역이지 않나 싶다. 이런 걸 잘 알면 사람들과 얘기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Mark도 스포츠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막연하게 뭐 좀 봐야지 하고 생각만 하면 흐지부지 아무것도 안된다. 아예 특정 게임, 팀을 하나 정해서 팬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부가 좀 필요하다.
미국에서 큰 프로 스포츠 리그는 4개를 꼽을 수 있는데, NFL 풋볼(=미식축구), MLB 야구, NBA 농구 그리고 NHL 아이스하키다.
미국에 왔으니 한국에선 아예 볼 수 없는 풋볼이 적당할 것 같다. 이름 자체가 "미국식"이고 지금 한창 시즌 중이라 TV나 유튜브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NFL 프로 풋볼 팀 32개 중에 뉴욕에만 세 팀이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인 버펄로에 홈구장이 있는 빌스(Buffalo Bills), 뉴욕시티 외곽엔 제츠(New York Jets)와 자이언츠(New York Giants)가 각각 있다.
세 팀 중에선 빌스가 가장 성적이 좋은 편이라 뉴욕에서 인기가 많은데 홈구장이 너무 멀어서 내가 직접 가서 보기엔 어려울 것 같고, 제츠는 성적이 오랫동안 바닥권이라 인기가 없는 팀이다.
자이언츠가 최근 성적은 안 좋지만 10여 년 전에 우승한 적이 있어서 상당한 팬덤이 있고 경기장도 3시간 거리라 직접 관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제츠와 자이언츠는 경기장을 공유한다. Metlife Stadium)
하위팀의 팬이 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는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경기장 거리 같은 현실을 고려해서 자이언츠의 팬이 되기로 결정했다.
지금껏 풋볼을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검색도 하고 TV나 유튜브로 공부를 좀 해야 했다.
경기 규칙, 일정, 팀 순위, 주요 선수, 팀 역사, 라이벌 팀 등을 찾아보고, 경기 영상도 보고, 댓글들까지 읽어보니 어느 정도는 보기에 불편하지 않을 만큼은 되었다.
미국에서 프로 스포츠를 생방송으로 보려면 보통 돈을 내고 봐야 한다. 스포츠 전문 채널(예 : ESPN)이나 리그 채널(예 : NFL) 또는 팀 자체(예 : YES 채널 for Yankees) 채널 서비스를 구매해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나는 아직 초보라 돈까지 내고 보는 건 부담되어서 공중파 TV 중계를 챙겨 봤다. 이렇게 하면 내가 원하는 경기를 골라 볼 수는 없지만, 나는 유료 게임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풋볼 인기가 많아서인지 공중파에선 다른 스포츠들보다 풋볼 중계를 많이 해주는 편이다. 아마 케이블을 신청해서 봤다면 야구나 농구 중계도 어렵지 않게 보겠지만 나는 이 정도도 괜찮다.
대개 3시간 정도인 풋볼 중계는 월요일, 목요일, 일요일에 하는데 경기 수가 많은 일요일엔 TV에서 오후 1시부터 밤 11시까지 여러 방송사가 릴레이로 쉴 틈 없이 중계를 한다.
풋볼 시즌엔 매주 이런식으로 방송되는데, 미국이라는 한 나라 안에 시차가 있다 보니 동부, 중부, 서부 경기를 시간차를 두고 하다 보면 하루가 꽉 차게 된다.
이러니 일요일엔 아저씨들이 소파에 누워서 맥주 마시며 풋볼만 본다는 게 납득이 된다. 이것이 진정한 미국 남자의 삶인가 보다.
풋볼 덕에 TV 보는 것에도 재미가 붙었다. 우리 같은 이민자에겐 광고도 재밌고 그 자체가 정보도 된다. 나는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풋볼 중계와 밤 10시 뉴스는 빼놓지 않고 봤다.
계속 TV를 보다 보니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 어느 팀 것인지도 알게 되고, 자이언츠가 지난주는 이겼는지 졌는지 어떤 선수가 뭘 했는지도 알게 되니까 자이언츠 팬을 보면 내가 먼저 말을 걸어 보고 싶기도 하다.
'어제 4 쿼터에 DJ가 패스 완전 제대로 꽂아서 오랜만에 이겼는데. 막 아는 척하고 싶네.'
물론 세은이는 아빠의 이런 모습을 달가워하지는 않아서 실제로 말 걸거나 한 적은 없다. 자이언츠 팬을 만나면 그저 웃으며 눈인사만. '하위 팀을 응원하고 있다니 너도 참 불쌍하네.'
언젠가 경기에 더 익숙해지면 꼭 한 번은 직접 보러 가보고 싶다. NFL은 티켓 가격이 특히 비싼 편이라 그냥 한번 구경삼아 가기엔 아까워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때 가야겠다.
이제는 나의 팀 자이언츠가 내가 뉴욕에 있는 동안은 좀 잘해줬으면.
MVP Arena에서 농구 경기 : Yale Bulldogs @Siena Saints, NCAA
MVP 아레나는 알바니 중심가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꽤나 규모 있는 실내 경기장이다. 서울 잠실 체조경기장 보다 조금 큰 크기라서 쉽게 눈에 띈다.
나는 이곳을 볼 때마다 스포츠나 공연 같은 것을 보러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연 보러 뉴욕시티나 보스턴까지 가는 건 너무 멀기 때문이다.
이 정도 크기의 경기장이면 볼만한 것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아서 우선 홈페이지에서 일정부터 살펴봤다. 아직은 코비드 시기라 실내 행사에 제약이 많긴 하지만 몇 가지 괜찮아 보이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엔 미국 전역에서 NCAA (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미국 대학 체육 협회) 농구 시즌이 한창이다.
알바니에 있는 시에나 대학(Siena College) 남자 농구팀은 NCAA의 제일 높은 디비전인 D1에 속해있고 MVP 아레나를 홈 코트로 쓰는데 경기 일정에 예일 대학(Yale University)과 저녁 경기가 곧 있다.
나중에 자주 와야 할 곳이니 답사할 겸 식사나 주차할 곳을 미리 봐둘 겸 가보면 좋겠다. 둘 다 아주 인기 있는 팀까지는 아니라 티켓이 $20 수준이니 가볍게 다녀오면 된다.
평일 저녁 경기를 예약했다. 시간이 충분히 늦어서 회사일을 다 마치고 가도 괜찮았다. 우리는 시에나 대학의 색깔인 녹색옷을 입고 갔다.
도착해 보니 주변에 무인 주차건물도 있고 주변엔 식당도 꽤 있다. 경기장에 들어가면 내부 통로에 간단히 먹을 것과 기념품 파는 부스들이 많이 있었다.
경기장은 3층짜리인데 오늘은 2층까지만 사람을 받고 있다. 천장에 달린 사방에서 볼 수 있는 중앙 디스플레이와 각종 광고판 같이 전체적인 모습은 한국이랑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자리를 찾아서 앉으니 아직 경기 시작 전이라 선수들이 나와서 몸을 풀고 있고 치어팀(Cheer + Dance)과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
치어팀이 밴드가 직접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갖은 묘기 공연하는 응원 문화는 미국 학교 스포츠의 상징적 모습인 것 같다. 인원도 굉장히 많다. 다 합하면 50~60명 정도?
심지어 응원 실력을 경쟁하는 전국 대회가 따로 있을 정도라고 하고 그 모습을 담은 넷플릭스 드라마(Cheer)가 꽤나 인기가 있을 정도다. 이쯤 되면 응원 자체가 하나의 게임이다.
다들 자기 역할에 열심인 걸 보고 있으니, 경기를 뛰는 선수들 뿐만이 아니라 치어팀과 밴드까지 진정한 의미의 한 팀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 시간이 되어서 장내 아나운서가 미국 국가 제창으로 경기가 시작됨을 알려주었다. 미국 국가는 고음이 많아서 부르기 어려운 곡이다. 게다가 반주도 없이 부른다.
오늘은 알바니 시내 중학교 합창단이 불러주었다. 아이들에게 상당히 좋은 무대겠다.
우리는 시민권자는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가슴에 손까지 얹지 않았지만 존중하는 마음에 자리에 일어서서 감상했다.
앳된 얼굴의 합창단이 실수 없이 가장 높은음을 성공해 내자 곡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관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진다.
모든 식전 행사가 끝나고 선수들이 입장해서 경기가 시작되었다.
초반엔 두 팀이 엎치락뒤치락한다. 우리 자리가 꽤 앞이라 선수들이 집중하는 모습, 흥분하는 모습도 가까이서 보인다. 우리 팀 에이스인 센터 55번이 득점을 잘하는데도 분위기가 아슬아슬하다.
중간 타임아웃 때마다 치어팀 공연이 있고 하프타임 때는 관객 참여 게임이나 퀴즈 같은 것을 해서, 경기가 잠깐 중단되어도 관객은 지루할 틈이 없게 느껴진다.
후반이 되어 경지가 재개되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시에나 대학이 체력이 달리는지 외곽 방어에 연거푸 실패한다. 결국 시에나 대학이 예일 대학에 큰 점수차로 패배했다. 씁쓸하다.
꽤나 신선했다. 특별한 것을 경험했다기보다는 미국 사람들 일상에 들어가 본 느낌? 아주 잘하는 프로팀 경기는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거리를 보고 온 것 같다.
패배의 아쉬움을 달래며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경기장을 나오니 조금은 현지인 같아졌다는 느낌도 든다.
여행을 멀리 가는 건 자랑거리가 되지만, 동네 여행은 얘깃거리, 공유거리가 된다. 주변의 작은 경험은 사람들과 얘기 나누기 좋다. 내일 Mark와 마주치면 오늘 얘기를 해 봐야겠다.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유명한 프로팀 게임을 보려면 그나마 교통 좋은 알바니에서도 3시간은 넘게 운전해서 보스턴이나 뉴욕시티까지 가야 한다.
실제로 양키스(야구), 자이언츠(풋볼), 닉스(농구) 같은 유명 프로팀 경기를 보기 위해 뉴욕시티로 가는 건 정말 큰 맘먹어야 하는 일이다.
대도시에 사는 게 아니면 시간도 많이 써야 하고, 티켓 값, 숙박비, 주차비, 식사, 기념품 등등, 아마 한 가족이 간다면 $1,000는 넘게 써야 할 것 같다.
프로팀 경기라는 것이, 미국에 산다고 해서 아무나, 아무 때나 가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미국 사람들에게도 아주 특별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마이너리그나 대학리그의 경기들이 촘촘하게 있고, 그런 경기는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많이 하게 되는 게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스포츠를 즐 길수 있도록. 마치 오늘 이 경기처럼.
확실히 오늘의 경험은 사람들의 일상에 가까운 모습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 '얘깃거리'를 조금씩 채워간다.
Fondly,
C. Parker.
- 참고 -
미국의 경기장들은 돈을 받고 기업체에 이름을 파는 경우가 많다. '이름 사용권'
1990년에 만들어진 이 실내경기장의 이름은 원래 'Knickerbocker Arena'로, 상업적 의미 없이 네덜란드 계 뉴욕사람의 오래된 별명인 니코보코(네덜란드 인이 입던 바지를 뜻함, '니코보코 입는 사람들')라고 지어진 것이다.
그 이후 경기장에선 이름 사용권을 판매하였고, 이름이 3번 바뀌었는데, 현재는 의료 보험 업체 MVP insurance의 이름을 따서 MVP Arena가 되어있다.
우리가 뉴욕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첨부된 사진과 같이 Times Union Square였으나 뉴욕 Capital 지역의 유력 신문회사인 Times Union이 이름 사용에 대한 연장 권리를 포기하였기 때문에 2022년 1월에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게 되었다.
우리가 농구를 보러 경기장에 갔던 시점에서는 Times Union Square였으나, 그 이후 이곳에서 우리가 겪은 일들은 모두 MVP Arena였기에 동일한 장소임을 의미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MVP Arena라고 언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