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ifton Parker Mar 03. 2024

4. 2년 동안 우리 집. Sweet Home.

May 2021

(커버 이미지 : 내가 미국으로 떠나고 난 뒤, 한국에 남은 세은이가 친구들과 같이 갔던 에버랜드에 남긴 메모)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한 달 안으로 집을 구하세요."


이민 정착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좋은 집을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안전하게 지내는 곳을 찾는 게 중요한 건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자기 집 주소가 있어야만 사회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집이 필요하다.

우편물을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적어내지 못하면 자동차, 운전면허, 학교, 은행, SSN (Social Security Number, 미국 사회보장번호) 등의 정착 작업을 시작할 수도 없다.

더구나 신청 절차상 실제 거주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월세 계약서와 각종 고지서 등)를 증거로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좋은" 집을 최대한 "빨리" 구해야 했다.

회사는 일단 호텔을 한 달만 예약해 주었는데 이  연장하는 결재를 받으려면, 굉장히 불친절한 인사직원에게 구구절절 사정을 털어놓게 되는 굴욕을 당해야 했기 때문에 그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학교의 점수 그리고 부동산


집을 알아보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찾아봤던 것은 미국 부동산 사이트 질로우(Zillow.com)였다.

한국과 똑같이, 집값, 월세 등의 매물 정보를 지도 위에 표시해 주기 때문에 그 지역 대략의 시세를 알기에 아주 유용했다.

그리고 비용뿐만 아니라 아이의 학교도 집을 정하는데 중요하니까 그레이트 스쿨(greatschools.org) 같은 사이트도 찾아봐야 했다.

미국 학교들은 공립학교라고 해도 평준화되어있지 않고 지역별 편차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학생 성적, 교사 수, 교내 시설, 부모 소득 수준 등을 따져서 점수와 등수를 매기고 그것을 그레이트 스쿨에 공개한다.

생각해 보면, 돈 많은 학교가 좋은 점수를 받고, 좋은 점수의 학교가 부유한 가족들을 오게 하고, 부유한 사람들이 내는 많은 세금(지방세 항목의 School tax) 학교를 부유하게 만들게 되는 순환고리를 만든다. 이건 빈익빈 부익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무튼 학교 평가 점수를 그레이트 스쿨에서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질로우의 매물 가격 정보 이상으로 집을 구할 때 중요한 정보 중 하나다.

그리고 아이가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초등학교 점수만 좋으면 되는 게 아니고 주변 중, 고등학교도 일정 수준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보통"학군(School District)" 하나에 마치 대학교처럼 여러 개의 초, 중, 고교가 하나의 넓은 캠퍼스에 모여있기 때문에 전체 분위기도 중요하다 생각했고 학군 전체의 점수까지 봐야 분위기 파악이 될 듯했다. (학군별로 점수도 검색할 수 있음)

앞서 말한 대로 학교 점수는 대표적인 지역 생활환경 평가 지수라서, 이 점수가 낮으면 그것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고 주변 지역 전체의 문제이고, 아이들 뿐만이 아니고 어른들에게도 좋은 거주지가 아닐 수 있다.

물론 현지인들은 단순히 학교 점수만으로 사는 곳을 판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무 정보도 없는, 빨리 집을 구해야 하는 이민자다. 생각을 오래 할 수 없고 최대한 빨리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가능하면 학교 점수가 높은 곳으로 집을 구해야 했다.


직접 우리 집을 찾으러 나서다.


우선 질로우와 구글지도로 가격과 위치, 사진 등등을 찾아보고, 주소록에 있는 선임자들 동네도 차로 다녀 보고, 몇몇 학교 근처에도 돌아다니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좀 보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인터넷만으로 집을 구하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임자의 소개로 중개업자(Realtor)인 할머니 Peggy(페기)에게 연락해서 동기들과 함께 호텔에서 만났다.

우리가 가진 시간이 많지 않긴 했지만 미국 부동산 문화에서는 중개업자 여러 명에게 동시에 연락하는 건 상도(?)에 어긋난다고 해서, 일단 Peggy가 좋은 집을 서둘러 구해주기만을 기대해야 했다.

대화를 나눠보니 Peggy는 이 지역 한국 사람들과 거래 경험이 많아서 우리 같은 주재원들이 갑자기 집을 구해야 하는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일단 학군 점수가 95점 이상이고 말타에서 출퇴근이 멀지 않은 곳 중에 내가 직접 가봤던 세 군데 정도를 찍어서 매물을 구해달라고 Peggy에게 부탁했다.

첫 만남 이후에 Peggy는 질로우에서는 볼 수 없는 매물을 2~3일 간격으로 보여 주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클리프턴 파크(Clifton Park)라는 곳에 있는 2층집 하나를 보러 가게 되었다.

이 지역은 내가 미리 가봤던 곳은 아니지만, 사무실이 있는 말타에서 남쪽으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인데 꽤 규모 있는 쇼핑몰과 마트가 여러 개 있고 고속도로(I-87) 출구 바로 옆이어서 살기에 상당히 편리한 곳이다.

우리가 본 집은 2001년에 지어졌고 미국 교외(Suburban) 지역에 있는 2층짜리 싱글 하우스(Single House, 단독 주택)인데, 이 동네 집들평균 연식을 고려할 때 비교적 젊은 집이다.

나는 이 집이 전형적인 미국식 단독주택인 데다 코트(Court, 아주 작은 원형도로)에 있어서 맘에 들었다.

코트에 있는 집은 장점이 많은데, 이 길이 외부로 바로 연결되는 길이 아니어서 이웃들 말고는 외부 차량이 여기까지 올 일은 거의 없는 데다 도로 구조상 차는 서행으로 지나야 해서 아이들이 놀기에 안전한 곳이다.

75평 정도(2,650sqft)인 이 집은 1층에 화장실, 부엌, 거실 2개, 개인 서재가 있고 2층엔 방 4개에 화장실 2개 그리고 지하실과 차고까지 있었다.  

그리고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히터, 에어컨, 가스 벽난로 등의 기본 가전제품을 모두 기본으로 갖추고 있었고, 집 밖으로는 잘 정리된 잔디밭과 큰 단풍나무, 뒷마당에는 바비큐를 할 수 있는 큰 데크(Deck)가 있었다.


(왼쪽) Court 도로 예(출처 구글 맵), 원형의 도로를 따라 집들이 있다. (가운데) 우리집과 내 인생 첫 새 차, (오른쪽) 우리집 뒷마당의 Deck.


월세는 매달 $3,000나 되었는데 이 지역 시세로 볼 때 아주 비싼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높은 편이긴 했다.

다행히 회사가 상당 금액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그 차액 정도는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됐다.

미국에서는 세입자가 월세 지불 능력이 충분한지 집주인에게 증명하는 절차가 있다고 하는데, Peggy 말로는 회사가 지급 보증을 해주는 경우니까 그런 절차 없이 바로 계약해도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살고 있는 세입자가 없이 현재 집수리 중으로, 2주 후에 수리가 다 끝나면 바로 입주가 가능한 상태여서 더 망설일 필요가 없어 보였다.

시간을 끌면서 이것저것 따질 상황도 아니었고, 같이 본 동기들은 한편으로는 경쟁자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대답하지 않으면 누군가 가져가 버릴 것이다.

난 집을 본 날 저녁에 이메일을 보내서 계약하기로 했다. 성급했다기보다는 결단력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가장 큰 문제를 해결했다는 안도감, 예쁜 동네에 있는 마당 넓은 2층짜리 집을 구했다는 뿌듯함, 본격적인 미국 생활을 드디어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성취감에 이 날밤엔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이날은 동기들의 축하와 부러움을 받으며 비싼 맥주를 사다 마신 날이었다.


주소 다음으로 정착에 필요한 것은? : 은행, 학교, SSN, 자동차


마침내 집을 구하고 나니 안심이 되긴 했지만 곧바로 이제껏 미뤄질 수밖에 없던 정착 작업을 해야 했다.

우리의 매니저 Jason은 신규 주재원들이 부임 직후 한 달가량은 정착 업무 처리에 문제없도록 업무부담을 조정해 주는 등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직원들 가정이 안정되어야 회사 일도 문제가 없을 테니 그런 것이었겠지만, 그래도 이런 배려가 없었다면 고생의 시간이 서너 배는 더 길었을 것이다.

아마 Jason 자신도 그렇게 적응해 왔을 테니 동병상련인가 보다.


은행 계좌 만들기


집 계약을 하고 나서 곧바로 해야 하는, 아니,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은 미국 현지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것이다.

월세 계약을 마무리하기 위해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보내야 하는데, 은행에서 발급한 수표(Casher's Check)를 우편으로 집주인에게 보내야 한다. 계좌입금보다 수표를 보내는 것이 더 정석이라고 한다. (한국 같이 수수료 없는 계좌입금이 대중화된 게 10년 정도밖에 안 되어서 나이 든 사람들은 여전히 수표에 익숙하고 수표를 우편으로 보내는  돈거래의 정석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져온 현금을 바로 보내지 못하고 은행에 입금한 뒤 수표 발행을 해야 하는데, 아직 계좌조차 없으니 계좌 개설부터 해야 한다.

미국 내 외국인 노동자로써 금융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것이라,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증명할 여러 서류(월세 계약서, 주재원 비자가 있는 여권, 회사의 파견명령서등)가 필요했다.

온라인 개설은 안 되고, 은행 홈페이지에서 미리 시간 예약을 하고 지점으로 찾아가야 했는데, 경험 많은 Peggy는 이 모든 것을 내가 부탁하기도 전에 이미 은행 방문 예약도 해주었고 같이 가 주기까지 했다.

아마 나 혼자 은행에 보냈다가는 계약이 제때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그 걱정마저 매우 고마웠다. 영어문제지만 금융 용어나 상황 자체를 이해 못 하는 게 나에겐 문제였고 그래서 더 위축된다. 다행히 같이 와준 Peggy 덕분에 그런 걱정은 하지 않고 처리할 수 있었다.

은행에 가서 다소 느린 미국 서비스에 약간 감탄하며 한 시간을 조금 넘게 보내고 나서야 계좌가 개설되고 보증금 입금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학교와 병원 등록하기


집과 은행을 해결하고 나면 그다음 일들은 상당히 순조로운 편이었다.

주소가 정해지면 학교는 자동으로 배정된다. 세은이가 가게 될 학교 홈페이지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학교 등록 담당자에게 이메일로 제출 및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학교 입학 서류 중엔 건강검진 서류가 있는데, 세은이가 도착하면 곧바로 검사받을 수 있게 치과와 소아과에 가서 환자 등록과 예약을 미리 해 두었다.

내가 실제로 무슨 일을 한 것이냐면...

미국 병원에선 환자 등록이라는 절차가 있어서 처음 방문하는 병원에는 보험정보,  질병이력과 처치 동의서 같은 것을 서너 페이지 정도 손으로 적게 되어있다.

그래서 병원에 미리 가서 서류를 받아오고, 집에 가서 의료용어를 한 줄 한 줄 번역해 가며 빈칸을 다 채우고, 다시 병원에 찾아가서 제출하고 검진 예약까지 마치고 왔다는 뜻이다.

온라인으로 병원끼리 정보가 공유되는 한국에서는 이미 없어진 지 아주 오래된 모습인데 아직 미국 일상엔 남아있다.


코비드 시대의 SSN 발급받기


한국의 주민등록 번호와 유사한 SSN 발급을 위한 방문 접수 예약도 무사히 성공했다.

SSN 발급은 본래 예약 없이 방문해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지만 코비드로 인해 방문 전 예약 필수로 바뀌었고, 예약 시간을 잡기 위해 상담원과 통화하려면 30분 정도는 전화기 들고 대기하는 게 보통이었다.

어렵사리 통화가 되더라도 바로 예약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비자 정보와 입국 날짜 같은 걸 묻고는 내부 검토를 한 뒤 다시 전화를 준다고 한다. 

내 입장에선 언제 다시 전화가 올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항상 전화기를 들고서 기다려야만 했다.

며칠간 전화를 못 받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고, 그러면 다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설명해야 했는데, 이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마침내 회신 전화까지 받아서 방문 예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단순히 전화를 걸고 방문 예약하는 것이 며칠이나 걸릴 만큼 이리도 힘이 드는 건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미국인들은 다 참고 살고 있는 것인가. 어쨌든 성공. 이제 방문해서 서류만 접수하면 되겠다.


(왼쪽) 동네에 있는 Bank of America. 신용점수가 없았지만 회사의 도움으로 계좌나 카드 개설에 문제가 없었다.(오른쪽) 세은이가 가게 될 초등학교


차 구입하기


회사는 렌터카도 딱 한 달만 제공해 주었는데, 그 얄미운 인사 담당자는 이건 절대로 연장 결재 안 해준다는 말을 굳이 여러 번 하며 호텔을 어서 나가라는 재촉을 하곤 했다.

우리 회사 미국 지사 중 캘리포니아 지사의 한국 직원인데 본사에서 감사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무례하고 막무가내인 경우가 있었다. '아, 한국이었으면 당장 부서 이동 감인데.'

근데 뭐.. 어쩌겠는가.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도 없는데 차나 얼른 구해야지.

뉴욕 주의 북쪽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4륜 구동 SUV가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운전 환경이 익숙하지 않고 평생 운전을 안 하고 살아온 아내도 운전을 해야 하니까 최신 안전 장비가 갖춰진 새 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몇 군데 딜러 샵을 가서 시승해 보고, 현대자동차 매장에 전시되어 있던 신형 산타페가 맘에 들었는데 왠지 자동차에서 만큼은 한국 감성을 느끼고 싶었다. 

알바니 거리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차였기 때문에 오래 고민하지 않고 바로 계약하고 딜러가 알려주는 대로 보험도 가입했고 며칠 뒤에는 차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 경우도 물론 은행에 가서 수표를 발급받아 결재한다. 차를 등록하고 번호판을 받으려면 등록증, 소유증 등의 우편물을 받을 자기 주소가 필요하다.)


계획한 일들이 큰 사고 없이 잘 진행되어 다행이었고, 숨 가쁘게 하루하루 “잘” 살아내고 있었다.

중요한 정착 작업들이 하나씩 해결되고 있었고 처음엔 어색했던 뉴욕 일상에도 약간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호텔을 떠나 나의 집으로. Sweet Home


집주인이 집수리가 다 끝났다는 연락을 해주어서, 입주 이틀 전 점검차 Peggy와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을 다 둘러본 뒤, Peggy는 내가 입주하기 위해서 신청해야 할 서비스의 종류에 대해 알려주었다.

전기, 가스, 수도, 인터넷, 쓰레기 수거, 세입자 보험, 제설, 잔디관리 등 여러 가지를 신경 써야 했고, 몇 개는 집주인이 관리하는 것이지만 대부분은 내가 직접 가입해야 했다.

Peggy를 만나기 전에 미리 찾아봤었는데, 전기나 가스, 쓰레기 수거도 두세 개 업체가 있고 사용할 때의 옵션도 여러 가지여서 이걸 다 이해해서 일일이 골라야 했는데 정말 당혹스럽기만 했다.

이번에도 고맙게도 Peggy가 나를 대신해서 각 서비스 상담직원과 직접 통화해 주고 옵션들을 대신 선택해 주어서 모든 신청을 순식간에 마무리해 주었다.

상담원과의 전화는 정말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에 여기까지 신경 써준 Peggy가 참 고마웠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 상담원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을 빠르게 말하곤 하니까, 나는 이렇게 전화 한번 하려면 정말 큰맘 먹어야 하고 해야 할 말을 미리 종이에 크게 적어놓고 해야 했었다.

Peggy가 "보통 다들 이 정도는 써요."라고 하며 골라준 옵션 중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 있을 수도 있었겠으나, 그 순간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장 전기나 가스 같은 것이 없으면 아예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입주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 고마울 뿐이었다.

이렇게 Peggy와의 볼일은 모두 끝나고 입주 준비는 다 되었다. (Peggy의 수임료는 집주인이 내고 세입자인 나는 아무것도 부담하지 않는다.)


2년 동안 잘 부탁해. 아직은 텅 빈 뉴욕 우리 집.


이틀 후, 마침내 호텔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뉴욕 우리 차"에 모든 짐을 싣고 "뉴욕 우리 집"으로 향했다.  

영화 보던 것 같은 수풀 빼곡한 좁은 도로를 따라 보이는 단독 주택가를 지나서 우리 집에 오는 길은 너무 예뻤다.

곳곳에 큰 나무가 있고 개를 데리고 한가롭게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고 꽃을 예쁘게 가꾼 집들도 있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이 좋기만 했다.

차고에 주차를 하고 잠시 집 주변을 돌아보면서 아주 큰 만족감과 행복이 느껴졌다.


행복의 순간은 잠시, 집에 들어가 구석구석 보니 지금은 너무도 당연히 아무것도 없는 빈 집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과 호텔에 있을 때 조금씩 사 모은 것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간 전임자들이 주고 간 간이 식탁과 의자가 내가 가진 전부였다.

호텔엔 조리도구가 있어서 음식을 해 먹기도 했지만 이 집에는 내가 가져온 수저뿐이라 음식을 할 수 없다.

빈 방 하나에 대충 짐을 풀고 10분 거리에 있는 월마트로 향했다. 당장 먹을 것을 사야 했다.

근처의 마트들 중에선 월마트가 "보편적"으로는 편리했는데, 어떤 물건을 어느 곳에서 파는지 정확히 알지 못할 때 월마트에 가면 비슷한 물건을 살 수 있었다. 정말 모든 게 있고 별 걸 다 파는 곳이다.

우선 당장 먹을 고기, 계란, 양배추, 파, 과일과 미국 맥주 몇 캔을 사서 냉장고를 채울 수 있었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해야 하니까, 화상 미팅과 휴식 겸용으로 쓸 32인치 TV, 접이식 테이블을 샀고 침대가 없어서 전기펌프가 있는 작은 에어매트도 담고 그리고 그릇과 조리기구 몇 가지 등을 사서 돌아왔다.


이삿짐, 마트에서 사 온 것들을 위치 잡고 대충 방을 꾸미고 나니 어느새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그래서 불을 켜려고 벽에 있는 스위치를 '딸깍', 응? 아무 반응이 없다. 천장을 보니 전등이 아예 없었다.???

전등이 고장 난 게 아니라 아예 전등 자리조차 없는 그냥 매끈한 천장이었다. 이럴 수가?!

나는 이 황당한 상황이 이해가 안 돼서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미국 천장 전등”을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미국에선 최근에 지은 집이 아니라면 천장 등이 없는 건 그다지 이상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까 내가 만졌던 스위치는 방에 있는 전원 플러그의 전기를 연결하고 끄는 스위치인데, 이런 것이 있는 이유는 많은 가정에서 천장 전등이 아닌 스탠드 전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스탠드 전등은 켠 상태로 플러그에 꽂아 놓고 스위치로 플러그의 전기를 껐다 켜서 전등을 사용한다고 한다.

어째서 사람들이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가 너무나 궁금했지만,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어서 더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될 것 같다. 얼른 나가서 전등을 사 와야 한다.

다시 나가서 제일 싼 스탠드 전등과 전구를 사서 방구석에 세웠고, 마침내 사람이 살 수 있는 방 하나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에어매트에 바람을 채워 넣고 누워 보았다. 아무도 없는 넓은 집에 바람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머릿속으로는 지금껏 지내온 미국에서 겪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한국에 있을 때는 미국에 오는 것을 걱정했는데, 미국에 오고 나니 집을 구하는 게 걱정이었고, 집을 구하고 나니 이 텅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이틀 전 집에 처음 와 봤을 때와는 달리 예쁘고 아름다운 공간이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가족이 지내기에 너무 비어있고 부족한 집 같다.

뭔가를 이뤄낸 성취감은 금세 사라지고 또 다른 할 일, 그다음 걱정거리가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 나에겐 마트를 가고 밥을 해 먹고 회사 일을 하는 일상적인 생활조차도 너무 힘겹고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한국에서 꿈꿔왔던 아름다운 미국 생활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이렇게 바쁘고 어렵기만 한데... 이거 다 언제 끝나는 걸까?

그림 같은 집으로 이사 온 날, 나는 당장 내일 아침 먹을거리를 생각하며 잠을 자야 했다. 기쁨보단 서글펐다.


'그래도, 그래도.. 이젠 여기에 우리 집이 생겼어. 아내와 세은이가 좋아해 줄 거야.'


 

Fondly,


C. Parker

                    

매거진의 이전글 3. 마침내 뉴욕에 도착하다. (Upstate N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