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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fton Parker Mar 10. 2024

5. Dear Neighbors, "새로 이사 왔어요"

June 2021

(커버 이미지 : 우리 집 2층 안방. 이사 직후 책상도 없이, 박스 위에 이것저것 올려놓고 바닥에서 일하던 외로운 시절.)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이사와 학교 : 아내는 떠나올 준비, 남편은 맞이할 준비


내가 뉴욕으로 떠나고 난 직후 아내는 곧바로 이사를 해서 미국으로 짐을 보내야 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뉴욕까지 배로 이삿짐을 보내면 두세 달 정도 걸리기 때문에 (부산항 -> 태평양 -> 파나마운하 -> 대서양 -> 뉴욕항), 5월 중에 보내 놓아야 우리가 미국에서 7~8월쯤에 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더 늦어지면 안 된다. 여름옷은 캐리어에 넣어서 가져오지만 추워지면 겨울 옷과 이불이 필요하고 학교를 가기 전에 세은이 물건들을 다 받아야 한다.

아내말로는 우리 집에 온 이사 직원들은 지금껏 우리가 경험했던 어떤 이사업체보다 전문적이고 말끔한 일처리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모든 박스에 일일이 완충재, 흡습제를 넣고 번호와 내용을 다 적어서 나중에 찾기 쉽게 해 주었기 때문에 아내는 종이에 번호들을 적는 것 말고는 이삿날에 해야 할 일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삿짐을 전부 부산으로 보내고 나서 아내와 세은이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집에서 한 달 넘게 지냈다.

이 기간에 아내는 직장 휴직처리, 세은이의 전학 신청, 미국 학교 입학 서류 준비와 번역 등등을 처리하였다.

처가가 그리 멀지 않은 덕에 빈 집이어도 아이와 아내가 용케 잘 버틸 수 있었는데,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꼼짝없이 집을 떠나 호텔 같은 곳을 전전해야 했을 터였


미국 학교에 아이 등록하기


아내가 그렇게 떠나는 준비를 하는 사이에, 나는 우리 집이 속해 있는 Shen 학군의("Shenendehowa" School District, 보통 짧게 Shen.이라 불렀다.) 홈페이지에 서류 접수 및 입학 신청을 완료했고, 며칠 뒤 학군 내 여러 초등학교 중 Arongen (애론젠) 초등학교에 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뉴욕에선 학기가 9월에 시작하고 겨울 방학 없이 다음 해 6월에 끝나는데, 이곳 아이들은 한국 보다 6개월 빨리 입학한다.

그래서 세은이가 한국에서 3학년 1학기를 마친 뒤 오게 되면, 9월에 미국에서 바로 4학년이 된다. 학기 중에 입학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올 때 수강학기 계산이 수월해진다.

학교가 배정되고 나면 이메일로 급식, 버스, 건강검진 신청 등 각종 안내문이 날아오는데 외국인으로서 가장 신경 써야 했던 건 ENL(English as a New Language) 수업에 관한 것이었다.

이 ENL이라는 것은 학생 또는 학부모가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에서 온 경우 학생의 영어 실력에 따라 그에 맞는 도움을 주거나 학업 평가에 참고하도록 하는 미국의 수업 시스템을 말한다.

입학할 때 받는 영어 등급에 따라 수업의 차등이 있는데, 세은이 같은 영어 초보들은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외국인 아이들끼리 공부하는 별도의 교실로 모여서 영어 기초 수업을 받는다고 했다.

ENL 전담 선생님은 아마도 세은이가 매일 만나야 하는 분일 테니, 우리에겐 담임 선생님만큼 중요한 선생님이다.

며칠뒤 Arongen의 ENL 선생님 Mr. Sweet으로부터 '아이는 미국에 언제 오는지, 개학 전에 영어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인지' 등을 물어보는 이메일을 받았다.

세은이의 입국 일정과 영어 상태(?)를 설명드렸고 7월 초로 방문 약속도 잡았고(코비드 때문에 아무 때나 갈 수 없었음) 학군에서 운영하는 5주짜리 여름방학 ENL 수업도 알려주셔서 그것도 당연히 신청했다.

자칫 하면 방학을 집에서 멍하니 태블릿 보면서 날려 보내거나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이것저것 찾아봐야 했을 텐데, 학교에서 방학 수업을 하니 교실 적응도 미리 하고 방학 시간도 의미 있게 보내게 되어 다행이다.

사실 Shen에 외국인 학생이 꽤 있는 편이어서 학교마다 ENL 선생님이 있기도 하고 여름 ENL 수업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건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거다.

왜냐하면 다른 주재원 아이들 학교 중에 여름 ENL 수업을 하는 곳은 Shen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지역 간에도 학교별 차이가 상당히 크다.


자, 이제 모든 준비가 되었고 세은이가 뉴욕으로 오기만 하면 된다.



학교 등록 일을 처리하다 알게 된 미국 문화가 하나 있었는데, 학교 업무와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는 반드시 Mr./Mrs./Miss 같은 존칭과 성(姓)인 “Last name”을 불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Mr. Sweet"처럼.

처음엔 뭐라 해야 할지 몰라서 "Hello, Adam"처럼 그냥 이름인 First name써서 메일을 보낸 적도 몇 번 있었는데, 선생님이 답장에서 나를 계속 "Mr. Kim"이라 부르는 것을 보고 '아뿔싸'하고 눈치채게 되었다.

그 외의 일상생활이나 회사 같은 곳에서는 누구를 만나든 First name 만을 부른다.

나이가 많거나 어려운 사이라고 해서 학교 선생님에게 하듯이 존칭과 Last name으로 부르면 분위기가 굉장히 어색해지게 되는 경험도 다. 이것도 그들의 어색한 미소를 보며 '아뿔싸' 했던 일이다.

참고로 First name과 Last name을 같이 부르는 경우는 정말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공적 문서에 이름 적을 때나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매우 사무적이고 공식적인 경우에만 사용)


초반엔 몰라서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모두들 좋은(?) 분들이라 모르는 척 이해해 준 것 같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말을 잘못하더라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고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외국인이라 한들 누가 다 큰 어른의 말실수를 일일이 찾아서 고쳐주겠는가?

주변의 친절한 사람들이 내 실수를 이해해 준 것은 다행이지만 내가 계속 이렇게 살아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스스로 공부하고 익숙해져서 잘못이나 실수를 줄이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민폐 없이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좀 더 많은 경험을 해야 했다.


처음 나서보는 우리 동네 산책


학교 등록 절차도 다 끝났고, 마치 숙제 같은 정착 작업들도 하나둘씩 해결되고 있고, 텅 빈 집은 매일매일 조금씩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곳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짐 정리, 회사일 등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이사 오고 나서 한 이틀 바깥을 나가보지도 않았었는데, 날씨가 정말 좋던 어느 날 동네를 좀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 있을 땐 미국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려 지내겠노라며 나름대로 꿈을 꾸었지만, 막상 미국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건 굉장히 두려움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마트 직원의 간단한 인사, Hi How are you? 조차도 자연스럽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아마 나의 대답은 "어.. 어.. 아, 예 아아 안년하쉐여"처럼 들렸을 것이다.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 익숙하지 않으니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할지 예상하기 어려워서, 이미 알고 있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굉장히 더듬대며 아주 간신히 짧게만 말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피하고 숨고, 일을 핑계로 방에만 있고 싶고, 밖에 나가더라도 누가 말 거는 게 싫어서 무인 단말기 같은 곳에서만 주문/계산을 하곤 했다.

파트너들과 하는 회사 미팅도 혼자 방에서 카메라도 끄고 하다 보니 상대방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 어렵고 궁금한 걸 물어볼 수도 없었다.

게다가 아직 업무도 능숙하지 않다 보니, 같이 일해야 하는 고객사 파트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에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용기를 내야 했다. 아내와 세은이가 이곳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게 미국 생활의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책임감도 있고 회사에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 동료가 되어 일을 하러 왔지, 구경꾼이 되러 온 게 아니니까. 이런 건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다.


(왼쪽) 우리집과 좌우 이웃집. 집앞 도로가 코트(court)여서 집들이 원형으로 배치되어있다. 우리집 부엌 (중앙)과 침실 (오른쪽).


나는 점심을 먹고 나서 '큰맘 먹고' 혼자 동네 산책을 나섰다.

구글 지도에서 본 우리 동네는 8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단독주택(Single House) 단지이고 30분 정도 걸으면 한 바퀴 다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나오기만 하면 되는 이제야 나와 보다니...

집집마다 관리 잘 마당의 잔디좋고, 20년 넘은 동네라서 그런지 큰 나무도 곳곳에 있고, 보면 볼수록 정말 그동안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 왔던 전형적인 미국 동네다. 

집들은 전부 2층집인데, 비슷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씩 다르게 생겼다. 창문 개수, 차고의 모양 등등 이런 것도 집을 살 때 선택 옵션인가 보다.

평일 낮인데도 아이나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 같이 나에게 How are you? How are you doing? 같이 짧은 인사를 건넨다.

심지어 운전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길에 서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차 안에서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살짝 부담되기는 하지만 다정한 느낌의 동네라는 생각들었다.


옆집으로 보내는 편지 한 장 :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왔어요.”


그렇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우리 집 바로 오른쪽 옆집에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와 아이 엄마가 마당에 나와 놀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용기를 내서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좋은데요.”

아이 엄마가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여기 이사 오신 거예요?”라고 물어서, "네, 며칠 전에 왔는데 가족은 한 달 뒤에 올 거라서 지금은 저 혼자 있어요."라고 답하고 몇 가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들어왔다.

'옆집은 아이가 있는 집이구나. 잘 됐다. 아이들 중심으로 좀 친해져 볼 수도 있겠는걸?'


집에 들어와서 한 시간쯤 지난 뒤엔 집주인 쪽 중개업자인 할머니 Lauri(로리)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집주인은 텍사스에 살고 있기 때문에 Lauri가 우리 집 관리인(Property manager)이다.

Lauri는 내가 무사히 이사를 했는지, 가족은 언제 오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등등을 확인하러 온 것이었고 집 관리에 대해 몇 가지 주의해야 할 것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옆집에 물어보라면서, 양쪽 옆집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약간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오른쪽 집은 Mark(마크)와 Sarah(사라)가 아이 둘과 살고 있고 조금 전에 인사를 나눈 사람은 Sarah였다.

왼쪽 집은 Tim(팀)과 Cassi(캐시)가 고등학생 딸들과 사는데, Tim은 우리 집 잔디 깎는 것과 눈 치우는 것 등 집 관리 몇 가지를 대행해 주기로 계약되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Tim은 집주인과도 오랫동안 잘 아는 사이고, 이 집을 지을 당시에 일을 했던 사람이라 우리 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니 편하게 연락해도 된다고 했다.

한국에선 중개업자가 옆집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주는 일은 절대로 없기 때문에, Lauri의 말에 당황하긴 했지만 2년 동안 계속 봐야 할 옆집 사람들이고 연락처를 받았으니 지내봐야겠다고만 생각을 했다.

Lauri가 돌아가고, 나는 연락처 메모지를 보면서 이웃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사 온 내가 이렇게 이웃 전화번호를 받았으니 옆집도 누군가를 통해 내 번호를 받았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한국이야 개인정보에 민감해서 이런 일은 없지만, 여기는 미국이니까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개인정보의 수준이 한국에서와는 다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여기는 이사할 때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문화가 있는 건가? 국스타일이라고 하면서 떡이라도 돌려야 하나?'


온갖 질문이 떠올랐지만 물어볼 사람도 없다.

어찌 되든 시간 한참 지난 뒤 무슨 용무가 생겨서 연락하기보단, 바로 지금 이사 인사부터 하는 게 이웃들을 대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 같다.

한동안 비어 있던 집에 누가 이사 온 것, 멀리 있는 어느 아시아 나라에서 온 것, 우리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 같은 뻔히 눈에 보이는 것들은 어차피 동네 사람들 모두가 곧 알게 될 터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숨기보다는 내가 먼저 나에 대해 공개하고 앞서서 다가가는 게 도리어 우리를 안전하게 해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생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고 도움 받을 곳도 없어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처지인 나는, 명실상부 이 동네 최약체다.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먼저 다가가는 게 순리에 맞다.

게다가 오늘 산책 길에서 짧게 인사를 나눈 사람들이 있으니 새로 온 아시아인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간단한 편지라도 보내야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편지를 떠올린 이유는, 집으로 찾아가는 것은 그 순간 사람들이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으니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아 보였고, 즉흥적으로 버벅대며 말로 하기보다는 첫인사니까 정확한 정보를 글로 써서 전달하는 게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다행히도 우리 팀 전임자가 프린터와 밥솥 같은 각종 110V 가전을 내게 귀임 선물로 주고 돌아간 덕에 편지에 가족사진 같은 것을 넣어서 만들어 볼 수도 있었다.


쇠뿔도 단김에, 어두워지기 전에 보내야겠다는 결심이 서자마자 바로 노트북을 켜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동네 이웃님들 안녕하세요.

여기 코트 7번째 집에 며칠 전 이사 왔어요. 저는 아시아에 있는 한국에서 온 김준형이라고 합니다. 저는 말타에 있는 연구소에 업무 파견되어 오게 되었고 2년간 일하고 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가족은 저와 아내 그리고 9살짜리 딸아이 하나인데 아내와 아이는 학교 문제 때문에 다음 달이 되어야 미국으로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는 이 집에 저 혼자 지내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미국에 사는 것도 처음이고 이런 단독주택에 사는 것도 처음이라서 모르는 것이 많고 생소한 것 투성이입니다.
 
"만약 우리로 인해 뭔가 불편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그건 절대로 우리가 의도한 것이 아니고, 단지 우리가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그럴 땐 주저하지 말고 저희에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좋은 이웃으로 지내고 싶습니다. 연락이 필요하면 편하게 이메일이나 전화 주세요.

감사합니다. (나의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


편지의 한쪽에 가족사진을 넣어서 10통 정도 출력하고 하나씩 봉투에 담아 이웃들의 편지함에 일일이 넣었다.

내가 먼저 우리정보를 알려주었으니, 앞으론 동네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도 조금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훨씬 수월해진 느낌이었다.


(왼쪽) 우리집 현관에서 본 이웃집들. 도로 중앙엔 동네 아이들이 노는 원형 정원이 있다. (오른쪽) 각 집의 우편함은 보통 마당에 인접한 길가에 설치되어 있다.


저녁 먹고 뿌듯한 기분으로 아침이 된 한국으로 전화해서 아내에게 이웃들 편지 보낸 얘기를 했다.

그런데 아내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조금 불편해하는 눈치였다.

아직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개인 전화번호와 우리 얼굴이 크게 나온 사진까지 넣어서 보낸 것에 대해 걱정하는 아내의 한국식 생각이 이해는 된다. 나도 한국에서라면 이러지 않는다.

'에효', 그동안 내가 직접 보고 느끼고 고민해서 결정한 걸 아내가 이해해 주지 못한 게 조금 서운했지만, 한국에 있는 아내는 이곳의 생활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도 이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다. 그냥 하는 거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으니까.

어차피 이미 편지는 보낸 데다가, 아내와 굳이 이런 걸로 다툴 필요도 없고, 동네 생활에 잘 적응하여 좋은 모습으로 살게 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던 이 은 얼마 뒤 우리의 예을 완전히 뛰어넘는 결과로 되돌아왔다.

(https://brunch.co.kr/@cphlibrary12065/9)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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