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잠자’의 직무 태만 : 부당해고

by 짱구노무사

5. ‘잠자’의 직무 태만 : 부당해고


직장을 제 발로 나가면 기분이야 좋을지 모르지만, 금수저가 아닌 우리는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반면에 직장에서 잘리면 기분은 나쁘지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전자를 ‘자발적 퇴사’라고 하고, 후자를 ‘비자발적 퇴사’라고 한다. ‘자발적 퇴사’는 학업, 이직, 여행 등의 이유로 근로자의 의지에 따라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를 말한다. 반대로 ‘비자발적 퇴사’는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은 의지가 있어도, 회사의 의지로 인해 근로자가 계속 회사에 다닐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잠자’의 다음 표현 ‘잘리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내가 그랬어 봐. 당장에 잘렸을걸.

하지만 그렇게 잘리는 게 나한테는 그다지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몰라.

부모님만 아니면 벌써 그만뒀을 텐데.

사장 앞에서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했을 거라고”


‘잘린다.’라는 것은 해고를 의미한다. 성희롱, 횡령 등의 이유로 ‘정당한 해고’가 있는 반면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부당한 해고’도 있다. 부당해고를 당했다면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제28조에 따라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마침 ‘잠자’가 ‘업무상 질병’으로 인해 벌레로 변하는 산업재해를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회사가 ‘잠자’를 해고하였더라면 이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


근로기준법 제23조 2항에서 ‘사용자는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의 요양을 위하여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하지 못한다.’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자’가 ‘업무상 질병’으로 인해 벌레로 변하여 불가피하게 휴업한 기간에 ‘해고’가 이루어졌더라면 곧바로 ‘부당해고’가 된다.

쓰다 보니 직업정신에 투철해지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구제신청은 부당해고 등이 있었던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 ‘잠자’가 크리스마스 직후 해고를 당했다면 3월 말 죽음을 맞기 전까지 약 3개월 기간 내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여야 한다. 부당해고로 인정되면 ‘잠자’는 원직 복직되며, 해고 기간 임금상당액도 받게 된다.


‘잠자’는 회사에서 잘리더라도 그다지 나쁜 일이 아닐지 모른다고 말한다. 회사에 다니기 싫기 때문이라는 이유겠지만, ‘잠자’가 우리나라의 직장인이라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통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일’이 아닌 ‘그저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잠자’의 말처럼 어차피 그만두고 싶었더라면.


그러고 보면 카프카의 「실종자(아메리카)」에서도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집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건너가고, 거기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외삼촌 집에서 쫓겨나고 직장에서도 해고당한다. 그런데 ‘잠자’는 곧바로 쫓겨나거나 떠날 생각도 없이 끝까지 집에만 붙어 있다. 변신한 ‘벌레’의 날갯짓으로 창밖을 향할 생각은 전혀 없이 말이다. 괴테의 표현처럼 지향하는 한 방황하는 인간인데, ‘잠자’는 아버지에게 늘 착한 아들이다. ‘잠자’처럼 카프카 역시, 아버지에 대한 불만조차 따지고 보면 착한 아들 행세를 멈추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인 것이다.


‘잠자’에 대한 해고 사유가 일을 지지리도 못해서라면 어떨까. 물론 업무상 질병의 요양을 위한 기간에 발생한 해고가 아니라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정당한 해고 사유라고 하더라도 ‘해고금지기간’의 해고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 터놓고 말해서 벌레로 변하는 듣도 보도 못한 질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될 가능성은 극히 낮을 테니까.


“사장님이 오늘 아침 일찍 자네의 직무 태만에 대하여 그럼직한 이유
넌지시 말씀하셨지만, 자네에게 얼마 전에 맡긴 미수금 때문이라고 말이네.

그래도 나는 그런 해석은 당치 않을 거라고 한사코 자네를 옹호했었네.


‘잠자’가 미수금과 관련한 직무 태만뿐만 아니라 제시간에 출장을 떠나지 않은 문제로 이제 회사 지배인의 눈 밖에까지 났다. 만약 이를 이유로 회사가 ‘잠자’에게 가장 중한 징계인 ‘해고’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근로기준법 제23조에서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등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직무 태만’으로 곧바로 해고는 우리나라에서 힘들다. 만약 ‘잠자’가 해고되었다면 징계 양정 기준의 적정성을 이유로 ‘부당해고’로 판정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징계위원회를 열어 피징계자의 평소 소행, 근무성적 등을 참고하더라도 소명의 기회 보장 등 취업규칙에서 정한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 ‘절차의 정당성’마저 살펴봐야 한다(쓰다 보니 너무 갔다. 그런데도 「변신」에는 노동법 관련 내용이 끊임없이 나온다).


“정말이지 파렴치한 방식으로 직무상의 의무를 태만히 하고 있으니 말이오.

내 이 자리에서 당신 부모님과 사장님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당신의 즉각적이고 명확한 해명을 아주 진지하게 요청하는 바이오.”


마침 회사 지배인은 즉각적인 요청이긴 하나 ‘잠자’에게 해명할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저자인 카프카가 법학 전공자여서 그런지 소설 구석구석 현실적인 법적 장치들이 녹아 있다. 심지어 ‘사장님의 이름으로’ 라는 대목에서 회사 지배인은 인사권을 가진 사용자라는 인상도 명확하게 심어준다. 근로기준법 제2조에 따르면 근로자에 대하여 인사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용자는 사업주 또는 사업경영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행위 하는 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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