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② 과거] 그냥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어

브랜드 오너 하드: 회사를 나가면 정말 다른 사람이 될까?

by 코코넛 노무사




*솔직한 인터뷰와 아직 첫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회사와 인물명은 닉네임으로 대체합니다*









코코넛: 이제 과거로 넘어가 볼게. 1만 동안 일하면서 본인에게 가장 의미 있던 순간이 언제였어?

하드: 우리 첫 회사 다닐 때. 공중파 예능하고 제휴 프로젝트 했었잖아. 처음 콜드메일 왔을 때만 해도 아무도 이게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한 거야. 팀장님이 귀찮아해서 내가 답변을 했는데 갑자기 대표님한테까지 올라가고 엄청 빠르게 추진됐는데 너무 잘 된 거야. 그런 일이 내 인생에 처음이었거든. 내가 PM으로 처음부터 기획해서 만들고, 뭐 하나 불편함 없이 잘 마쳤고. 그래서 이게 나한테 제일 의미 있는 사건인 것 같아. 내 직무를 가장 잘 해낸 일이니까 뿌듯한 거지.







코코넛: 첫 회사 시절의 하드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해 줘. 지금의 너는 그때와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다고 생각해?

하드: 회사 다닐 때는 무조건 다음 단계가 있을 거라고 믿고,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위해 조급해했어요. 첫 회사는 직급이 없었지만, 예를 들면 ‘사원에서 대리를 달아야 한다.’라는 부담감. 또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사람들보다 뒤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 인사 평가도 잘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 이런 게 있었죠.

한편으로는 인간의 삶에도 일률적인 단계가 있는 것처럼 느꼈어요. 그때는 결혼도 안 했을 땐데도 때 되면 결혼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출산하고. 주변에 그런 선배들이 많았거든요. 제가 퇴사한다고 하면서 동생이랑 일하게 됐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은 “그럼 동생이 월급은 제대로 주냐, 지금보다 못 버는 거 아니냐.”라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여기는 참 작고 시야가 좁다는 걸 느꼈어요. 나와보니 세상에는 돈 벌 기회도 많고, 돈을 좀 못 벌더라도 잘할 방법도 정말 많은데. 회사에서는 틀에 갇혀 있었던 거죠. 지금이 훨씬 자유로워졌어요. ‘이게 안 되면 저거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니까 훨씬 좋다고 느껴요.



코코넛: 반대로 아직 그대로인건 없을까? 그때의 너와 지금이 너는 어쨌든 같은 사람이니까. 일할 때 예전 모습과 지금이 비슷하다고 느낄때는 없어?

하드: 비슷하다고 느끼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아. 없어. 퇴화는 많이 됐어. 첫 회사에서는 기획안도 엄청 많이 썼는데 그런 능력도 없어졌고. 그때는 어른들한테 설명해야 하니까 숫자도 많이 넣고 되게 꼼꼼하게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기획안을 쓰더라도 보여 주기 식으로는 안 해요. 그냥 이미지 몇 개 넣고, “이렇게 설명하면 되지 않아?” 해도 서로 다 통하니까. 그래서 똑같은 상태는 없는 것 같아요. 다 퇴화하거나 잘 되거나.



코코넛: 그럼 처음 인턴 때부터 지금까지 이력 쭉 한 번 간단하게 얘기해 줄래? 한 번 짚고 넘어가면 편할 것 같아.

하드: 처음에 홍보 대행사에서 일했었어. 엄청 짧게 일했는데, 그때 이제 홍보가 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그다음에 애니메이션 방송사에서 계약직 마케터로 일을 한 거지. 그때는 프로그램 홍보나 시청 독려 같은 프로젝트를 구상했고, 프로그램이 방영되면 재밌는 부분을 하이라이트 클립으로 만들어서 동영상 플랫폼에 올리는 식으로 했었고.

그다음 IT기업에도 계약직으로 잠깐 들어갔는데, 당시 거기서 유아동 대상 인공지능 서비스를 출시했었거든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무튼 제가 전에 애니메이션 방송사를 다녔으니까 공룡이나 동화 같은 콘텐츠도 만들고, 서비스에 퀴즈 콘텐츠를 넣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 우리 첫 회사 공고가 떠서 잘 맞겠다 싶어 넣게 된 거죠. 첫 회사에서는 다른 업체나 브랜드랑 콜라보레이션하는 제휴 마케팅 일을 이 년 조금 넘게 했어요. 인턴 하면서도 취업 준비를 했으니까 취준은 한 일 년 정도 했어요.



코코넛: 사회초년생 시절을 돌이켜 볼 때 특별히 고마운 사람이 있어?

하드: 생각해 봤는데, 없어요. 내 동생 있잖아, 동생이 제일 고마운 것 같아. 지금까지 많은 어른을 만났지만, 첫 회사 팀장님도 그렇고, 예전에 홍보 대행사 부장님도 처음에는 엄청 멋있고 ‘저게 어른이구나.’ 했는데 끝에서 좋았던 기억이 없어요. 그 어른들도 그냥 애고 완벽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내 동생은 나를 엄청 힘들던 시절로부터 꺼내준 느낌이고, 한 번도 무언갈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어요. 내가 “이거 하고 싶다.”라고 하면, “해보자. 그거 해보자.” 하고. 이번에 내가 F 사업 새로 한다고 했을 때도 솔직히 싫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해보라고, 이렇게 늘 해보라고 해서 그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냥 고맙더라고.



코코넛: 어떤 계기로 홍보에서 마케팅으로 커리어를 바꾼 거야?

하드: 제가 대학 때 홍보 학회장도 했고, 광고 홍보를 전공했지만, 광고보다는 홍보에 좀 집중했어요. 광고와 홍보의 가장 큰 차이는 돈을 쓰느냐 안 쓰느냐인데, 홍보 회사에 가보니까 돈은 안 쓰는 대신 뒷돈을 많이 쓰더라고요. 기자들에게 이것저것 보내라고 하고, 기자들은 그걸 당연하게 받는 거예요. 김영란법도 없던 시절이라. 너무 옛날 같네요.

제가 전화해서 “이거랑 이거 중 어느 게 좋으세요?”라고 물으면, 기자들이 “소고기 없어요?”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 제가 공부했던 방식과 완전히 달랐죠. 단순히 아부하고, 그런 일만 해야 한다면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다를 수도 있는데 그때는 그랬어요. 회사 그만두고 뭐 해야 할지 몰라서 공백기도 생겼어요. 처음에는 엄청 복잡하게 생각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나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니까, 그쪽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 정리하면서 애니메이션 쪽 마케터를 하게 되고 방송사로 연결된 거예요.




코코넛: 산업을 먼저 정하고 그다음에 직무를 정했었네요?

하드: 응, 근데 그때는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교집합을 찾았던 것 같아요. 방송사에서 일할 때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처음 계약한 기간보다 훨씬 더 오래 있었어요. 방송사에서 무기계약직으로 계속 근무하지 않겠냐는 제안도 받았는데, 십 년 동안 똑같은 월급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건 좀 힘들겠다 싶었어요. 그래도 일이 너무 재밌었어서 지금도 가끔 그냥 계속할 걸 그랬지 싶기도 해요.



코코넛: 지금은 아예 다른 길을 걷고 있는데, 당시 마케팅 직무를 선택한 건 잘한 결정이라고 느끼나요?

하드: 잘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마케팅이나 광고 홍보는 이론보다 현실이 더 빨리 변하거든요. 그래서 실무에서 그걸 계속 따라잡아야 해요.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 뜨면 빨리 페이스북 광고를 배우고 적용해야 하고, 이론은 그 뒤를 따라가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유연함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만일 제가 순수 학문을 전공했으면 새로운 걸 빨리 배워야 할 때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대학교 다닐 때부터 “이게 뜨네? 빨리 배워야지. 그럼 배워야지.” 해오다 보니 유연하게 대처하게 되었어요. 지금도 광고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이것도 첫 회사 퍼포먼스 마케터였던 분한테 따로 돈 내고 배웠어요.



코코넛: 첫 회사는 지금 A나 F보다 규모가 컸잖아요. 팀도 많고, 시니어도 있고 임원도 있고. 첫 회사가 체계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정말 싫지만, 그때 제일 잘 해봤거나 잘 배운 게 뭐라고 생각해요?

하드: 처세술? 그때 제가 외부 미팅을 정말 많이 다녔잖아요.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10을 15로 보이게 하는 블러핑 같은 능력도 조금 배웠고, 잘 말하는 법도 많이 익혔던 것 같아요. 그때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 사업을 설명해야 하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모두 호의적이지도 않았으니까요. 처음에는 같이 갔는데 나중에는 팀장님이 혼자 가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무서웠지만 그래도 해보니까 되더라고요. 그때 성취감도 좀 느꼈어요.



코코넛: 성취감이었나요, 아니면 ‘해보니까 된다.’ 이런 느낌?

하드: 해보니까 된다. 아니다, ‘이게 되네?’.



코코넛: 이번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밸런스 게임을 해볼게. 첫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서 A에 들어간 건가요, 아니면 A에 들어가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둔 건가요?

하드: 아니야.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 그냥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어.



코코넛: 그러면 퇴사할 때 어떤 부분을 주로 고민했었어? 왜 퇴사하고 싶었어요?

하드: 그때 팀장님의 그 히스테리가 최고조였어요.



코코넛: 팀을 바꿀 수도 있었잖아요.

하드: 다른 팀. 좀 복잡하잖아요. 알죠? 그 팀장 선의 기싸움. 뺏길 수 없다는 게 있어서 좀 옮기기도 쉽지 않고요.

그리고 내가 한번 해내니까 나한테 너무 막 떠넘겼어요. 그때 지방에서 하던 행사 같은 거 있잖아요. 아무도 안 가고 자꾸 나한테 그냥 던지는 거예요. 공휴일에 혼자 부산 내려가고. 내가 하려던 건 이게 아닌데 갑자기 행사처럼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니까 그런 것도 스트레스가 좀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 터지고 얼마 안 돼서 갑자기 A 제품 하나가 터진 거야. 그래서 온 가족이 집에서 다 같이 박스를 잡고 있었어. 그때 “계속 이럴 거면 직원을 한 명 뽑아라.” 이런 얘기가 나왔거든. 근데 동생이, “그냥 언니랑 같이해보면 안 되나?” 이러면서 같이 하면 어떠냐길래, 나도 힘들 때니까 나쁘지 않겠다싶어서 퇴사한 거지. 근데 난 캐릭터나 애니메이션 쪽으로 가고 싶은데 갑자기 액세서리는 너무 뜬금없잖아. 그래서 그게 좀 고민이었어.



코코넛: 그때 퇴사한 비슷한 연차 친구들은 전부 다른 회사로 이직했잖아. 혼자만 개인사업을 선택한 건데, 무슨 자신감이었어?

하드: 그냥 생각이 없어서가 아닌가? 생각이 부족했던 거니까. 내 사주에 관이 없대. 그래서 한 곳에 이렇게 오래 머무는 스타일이 아니고, 맨날 막 직업이 바뀐다고 했거든.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그리고 나는 한편에는 어찌 됐든 살길은 있다는 생각이 있었어. 잠깐의 변화가 인생에 그렇게 크게 영향을 미치겠느냐고 생각했지만, 많이 영향을 미쳤고 그렇게 된 거지. 그때는 잠깐 A를 같이 하다가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로 이직할까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코코넛: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 갈게. A에 합류하고나서 퇴사를 후회한 적이 있었나요?

하드: 있지! 그런데 바로 직후에는 없었고, 다른 친구들은 직급을 달고 점점 더 구체적인 어른이 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더 모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그리고 이건 좀 더 현실적인 건데 노는 물이 좁아졌다고 해야 하나? 회사 다니면 주말 끝나고 월요일 점심시간에 다 같이 밥 먹으면서 얘기를 하잖아. 팀원 모두 사는 곳, 나이, 성별 다 다르니까 엄청 다양한 얘기가 오가고. 의도하지 않아도 새로 알게 되는 게 많은데, 지금은 적은 인원의 또래끼리 일하니까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아. 내가 뉴스를 찾아보지 않으면 세상 돌아가는 걸 아예 몰라서 그런 게 조금 아쉬울 때가 있어요. 어른이랑 얘기할 기회도 거의 없고요.



코코넛: 그러면 직장인에서 사업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제일 힘든 게 뭐였어?

하드: 모든 것을 다 새로 적응해야 했지. 쓰는 프로그램도 다르고. 그때는 자사 몰도 없고 포털 스토어만 있었는데 자사 몰도 만들면서 그것도 배우고 광고도 전혀 모르니까 퍼포먼스 마케팅도 배우고. 동대문 오빠 같은 시장 문화도 전혀 모르니까 다 새로 배웠지.

제일 힘들었던 건 머리가 얼마 없다는 거. 갑자기 제품이 매출이 떨어지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첫 회사에서는 여러 명이 이야기를 하고 관련 부서 사람들을 만나서 답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머리가 너무 적잖아. 그래서 정답 유추가 어려울 때.



코코넛: 과거를 돌아보면 너는 처음부터 너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너 사업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아니면 여러 가지 사건으로 지금의 성향을 가진 네가 만들어진 거야?

하드: 후자인 것 같아. 여러 일을 겪으면서. 회사 다닐 때는 사업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 그리고 지금도 사업이라고 생각을 안 하고 구멍가게라고 생각하지. 네가 보낸 질문 중에 그것도 있지 않아? 입사할 때부터 사업을 생각했는지.



코코넛: 맞아. 원래 커리어 패스를 어떻게 설정했었는지.

하드: 원래는 임원이 되고 싶었어. 한곳에 오래 정착해서 C 레벨까지 달고 싶었는데 첫 회사는 내가 가진 것보다 너무 많은 걸 계속 요구한다고 느꼈어. 그게 좀 부담스러웠어.



코코넛: 목표가 임원이었다면 이직할 수도 있었잖아. 다른 회사는 안 알아 봤었어?

하드: 전혀 전혀. 그리고 그때 A가 말도 안 되게 매출이 너무 높았어. 그래서 나는 그 약간 그게 영원할 줄 알았어.



코코넛: 공통 질문인데 지난 1만 시간 동안 벌어진 일 중 한 가지를 1만 시간 전 너에게 스포할 수 있다면 뭘 할 거야? 이런 질문 되게 고통스러워하지?

하드: 너무 어려워. 일과 관련된 것만?



코코넛: 상관없어. 종이컵은 결혼한다고 했어.

하드: 너 팀장이랑 영영 만나는 거 아니니까 너무 잘 보이려 하지 말라고.



코코넛: 참 그 사람이 이래저래 여러 사람한테 영향 많이 끼쳤다.

하드: 다 지나가는 인연이다. 이렇게 얘기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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