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기획자 종이컵: 나는 어쩌다 끝내 회사에 남지 못했을까?
*솔직한 인터뷰와 아직 첫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회사와 인물명은 닉네임으로 대체합니다*
코코넛: 과거로 넘어가 볼게요. 어렸을 때 해외에서 살았죠? 살면서 경험했던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이 무엇이었나요?
종이컵: 맞아요. 대학교는 영국에서 다녔고, 어릴 때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 살았어요. 한국까지 세 나라에서 생활했다고 보면 돼요.
이 질문 준비해 왔던 건데, 한류의 등장이요. 어릴 때 살았던 나라는 인종차별이 심했거든요. 그런데 싸이가 2012년에 강남스타일로 뜨고 런던에 있는 대학에 갔는데, 분위기가 확 달라진 걸 느꼈어요. 런던은 대도시고 다인종이 살다 보니 원래도 차별이 덜했지만, 케이팝 팬이 많아지면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 자체가 좋아졌던 거죠. 반면, 어릴 때 살았던 나라는 지금부터 이십 년 전이니 더 보수적이었고 동양인도 드물어서 느낌이 전혀 달랐어요. 국제학교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학생 대다수가 현지인이라 계속 소수자로 느껴졌고요.
코코넛: 그때 느낀 문화충격이 종이컵님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종이컵: 솔직히 말하면 애국자가 됐죠. 국뽕이 심하게 들어왔어요.
코코넛: 이 경험으로 졸업 후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 건가요?
종이컵: 직접적인 계기는 아니에요. 원래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했고, 제가 외국에 살고 싶어서 나갔던 게 아니어서 한국이 더 편했어요.
코코넛: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선택할 때 내린 가장 큰 결정이 무엇이었나요?
종이컵: 저는 솔직히 대학도 열심히 안 다녔고, 포트폴리오도 따로 만들어 놓지 않았어요. 그래서 외국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느꼈죠. 예술대학 졸업장으로는 일반 회사 비자 받기도 어렵고요. 당시 저는 너무 게을렀고 즐기면서만 살았기 때문에 다수의 유학생을 따라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것보다는 영국으로 대학을 간 게 오히려 더 큰 결정이었어요.
코코넛: 영국에서의 대학 생활은 지금의 종이컵님과 어떻게 연결이 되나요?
종이컵: 사춘기 때는 주변에 동양인도 없고 혼자 고립되어 사람들과 교류를 안 하고 인터넷 세상에만 빠져 있었어요. 영국에 가니 사람들이 동양인에게 우호적이고, 한국인도 많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예술 대학에 가서 내 자아를 펼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부모님과 처음으로 떨어지면서 규율 같은 거 없이 살면서 되게 많이 자유로워지고 성격이 밝아졌어요. 그게 저의 오타쿠적인 면모를 긍정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대학 입학 전 옛날에는 집에서만 음침하게 인터넷 카페 운영하고, 맨날 부정적인 글만 썼어요. 그런데 영국에 가니까 이런 게 오히려 장점이 되고 영국에도 특이한 걸 좋아하는 오타쿠가 꽤나 많아 내가 전혀 특이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영국에서는 내가 평범한 사람이 된 거야. 그래서 내가 더 자유롭게 끼를 펼칠 수 있었어요.
이게 아무래도 한국에서도 좀 자신감 있게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사춘기 시절 음침했던 상태
그대로 바로 한국에 왔으면, 좀 이상한 애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이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영국에서 깨달아서 스스로 “저는 오타쿠예요.” 말하는 걸 창피해하지 않고 오히려 웃기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또 예술대를 졸업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덜 거부감을 가지면서 제 성향을 좀 당연하게 받아들여 준 것 같아요.
코코넛: 직무와 학부 전공이 크게 관련이 없죠. 왜 첫 회사에는 입사했던 건가요? 원래부터 콘텐츠 업계서 일하고 싶었나요?
종이컵: 원래는 대기업을 목표로 했는데, 인적성에서 계속 떨어졌어요. 유학도 다녀왔고, 주변 친구가 다 대기업에 갔거든요. 그래서 기업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관심도 없었지만, 타이틀만 보고 “멋진 대기업, 글로벌 기업에 가야지.” 하고 지원했어요. 열심히 안 했으니까 다 떨어졌고요. 그렇게 이년 반 동안 취준하며 히키코모리가 됐다가, 일단 대기업으로 점핑할 수 있는 회사에 가자고 첫 회사에 지원했어요. 운 좋게 그때 회사 상황이나 들어간 포지션이 제 성향과 다 잘 맞았고, 입사 후 거의 바로 해외 출장도 다니며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어요. 해외 경험도 있고 하니까 뭔가 맡기기 좋아 보였나 봐요.
코코넛: 혹시 아직도 대기업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나요?
종이컵: 대기업 갔으면 저는 근태 때문에 오래 못 가서 잘렸을 것 같아요. 차라리 제 성향을 처음부터 파악해서 첫 회사에 더 빨리 들어갈 걸. 스톡옵션을 받거나 조금 더 높은 자리를 노리지 못한 아쉬움이 제일 커요.
저 때만 해도 대기업은 합격하면 다 같이 합숙 생활하면서 단체 활동을 했었거든요. 저 그런 단체 생활을 너무 좋아하는 성향이라 대기업만의 그 끈끈한 문화는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그거 빼고는 차라리 처음부터 첫 회사랑 비슷한 콘텐츠 회사들만 지원할 걸 하는 생각이 있어요. 제가 그때 지원했던 회사는 다 제 성향과 안 맞았거든요. 다시 생각해도 그 회사들은 일 년 이상 못 다녔을 것 같아요.
코코넛: 어떻게 보면 대기업이 사람을 잘 보고 인적성에서 커트시켰네요. 떨어진 게 오히려 다행이었을지도 몰라요.
종이컵: 적응 잘 못하고 진짜 관심병사처럼 지냈을 것 같아요. 다행히 첫 회사는 지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분위기가 비교적 자유로웠어요. 저는 규율이 많은 회사는 못 다녔을 것 같긴 해요.
코코넛: 처음 입사는 다른 팀으로 했잖아요. 배급팀이었죠?
종이컵: 네. 소속은 나중에 달라졌지만 제 업무는 같았어요. 콘텐츠 배급도 결국 해외 영업이에요. 영업 카테고리 안에서 전 콘텐츠 영상을 팔아서 해외 배급을 했던 거죠. 나중에는 해외 배급을 하면서 제작 PM도 같이하게 됐어요. 해외 배급을 하기 위해서는 해외 버전 완성본이 있어야 하니까 해외 제작사 관리, CG팀 견적 협상같이 콘텐츠가 완성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을 제작팀과 함께했어요.
코코넛: 업무가 확장되면서 일하는 방식은 어떻게 변했나요?
종이컵: 영업보다는 제작 일이 확실히 어떻게 하면 이 사람한테 내가 원하는 바를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야 했고, 세밀한 시각화 스킬이 필요했어요. 영업에서 오가는 계약서는 어쨌든 금액이 제일 중요해요. 하지만 제작 업무는 글로 표현 안 되는 걸 어떻게든 상대에게 설명해야 하니까 프레젠테이션이나 화살표, 그림까지 활용하면서 간단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더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회사 안에서도 팀마다 소통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어요. 제작팀은 의사 표현이 확실히 조금 더 두루뭉술하고 이윤 생각을 안 하니까요.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 너무 달랐고 어려웠어요.
코코넛: 첫 직장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 무엇인가요?
종이컵: ‘인간관계에 일희일비하지 말자.’요. 남한테 영향을 잘 받고 모두와 잘 지내고 싶어 하는 성격인데, 회사가 가족처럼 끈끈하다 보니 오히려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컸어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내 일만 잘하면 되는 거였는데,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사람에게도 너무 똑같이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못하는 건 못 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게 아쉬워요. 하지만, 다 해 본 적 없는 일이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그때는 몰랐어요. 덕분에 제가 싫어하는 일, 못하는 일이 뭔지 확실히 알게 됐죠.
코코넛: 첫 직장에서 일하던 과거의 당신과 지금 당신이 만난다면,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할 것 같아요?
종이컵: 어느 회사에나 불합리성은 존재해요. 차라리 이직이나 부업같이 분명한 노선을 정하고 살지. 왜 모든 가운데서 혼란스러워하고, 조그마한 이득의 득실에 망설이며 살았는지 과거의 나한테 아쉬워할 것 같아요. 근데 지금도 똑같은 걸로 괴로워하고 있긴 해요.
무언가를 물어본다면, “그래서 결국 커리어가 쌓였냐? 아니면 일에 대해서 만족하냐?” 뭐 이런 거 물어보겠죠?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온 게 나중에 잘 풀렸을지 과거의 나는 엄청 궁금해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불안한 과정들이 많았으니까.
코코넛: 첫 직장에서 가장 잘 배운 것, 혹은 가장 좋았던 경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종이컵: 이게 어떻게 보면 너무 힘들어서 퇴사했는데, 글로벌 대기업과 협업한 경험이요. 그때는 팀장님이 절 믿어서라기보다는 저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하게 된 일이었어요. 팀장님의 그 무대뽀 정신이 이런 큰 규모의 일을 진행하는 데에 오히려 도움이 됐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어요.
만약에 나 같은 사람이 리더였다면 신입한테 그 일을 줄 생각도 못 하고 그 상황을 힘들어했을 것 같은데. 그때 무대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하고 리더가 된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아요. 그래서 돌이켜보면 그 사람이 저한테 그 일을 시켜 줬던 게 대박인 것 같아요. 나였으면 못 시켰을 거니까.
코코넛: 반대로 흑역사나 후회되는 점은요?
종이컵: 굳이 미워할 필요 없는 사람들을 미워했던 거요. 적당히 거리를 두면 되는데, 당시엔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했어요.
코코넛: 회사원으로서 충분히 누리지 못해 아쉬운 게 있나요?
종이컵: 복지를 제대로 못 누린 게 제일 아쉬워요. 프리랜서는 그런 게 없잖아요. 조직에 있을 때만 누릴 수 있는 걸 못 해본 거죠. 예를 들면 회사에서 나오는 축의금 같은 것도 못 받았고. 회사 다니면서 연애도 제대로 못 했죠. 대신 우리끼리 놀고, 미팅도 열심히 하고, 다양한 시도는 다 했어요. 큰 후회는 없는 게 회사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거든요. 다만 결과물로 남은 건 없어요.
코코넛: 사회 초년생 시절의 자신에게 스포일러 하나를 해줄 수 있다면 무엇을 해줄 건가요?
종이컵: “너 결혼하니까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돈 쓰지 말고 결혼 자금으로 쓸 수 있게 돈 모아라.” 정도예요. 순간을 즐기면서 살아온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다만, 내가 좀 더 준비했으면 결혼 준비 과정에서 둘 다 지금보다는 힘을 덜 수 있었을 텐데 싶어요. 이사도 너무 여러 번 했고, 그런 거 다 안 쓰고 현금으로 모아놨으면. 같이 뭘 못 해 주는 게 좀 아쉬워요. 후회라기보다는 아쉬움이에요.
남들에게는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일도 안 끊기고 쿨하고 재미있게 사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정말 표면적인 거고 내가 가정을 이루고 미래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그걸 사회 초년생 때는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이 정도로만 하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