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이 부당해고를 다투는 동안 노조의 파업은 날로 강도를 더해갔다. 코로나19가 풍토병으로 인식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생산 물량은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었으나, 창원공장의 폐쇄와 희망퇴직으로 생산인력이 부족하여 물량도 납기도 맞출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거래선이 축소되면서 매출과 이익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잔업과 특근이 사라지고, 파업 기간 중 무노동 무임금으로 근로자들의 소득은 감소하였다. 작년 연말 이규태 지회장에게 몰표를 던졌던 평조합원들 사이 볼멘소리가 들렸다.
‘요새 월급이 반으로 줄어 마누라 눈칫밥 먹고 다니는데 힘들어.’
‘이러다 회사 망하는 거 아닌가 몰라.’
‘퇴근하고 친구들하고 마음 편히 술도 한 잔 못한다니까.’
‘이쯤 했으면 적당히 합의하고 다음 기회를 봐도 되지 않나?’
‘집행간부들 사이에도 의견이 안 맞다는데 이래 가지고 회사를 이기겠나?’
조합원들의 단결력이 예전만 못하고 부분파업에 동참하는 조합원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노조는 단결력을 회복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는 임금인상이나 구조조정 반대가 아니라 창원공장 원상회복과 희망퇴직자 우선 채용까지 협상 테이블의 메뉴로 등장했다.
이규태 지회장은 창원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0년째 지금의 회사를 다니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몇 차례의 대의원과 노조 집행부 활동을 하면서 노동자 계급이 주인 되는 세상을, 자본과 노동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어 왔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의 지령이 있을 때마다, 전국 단위의 부분파업에 참여했다. 인근 사업장에서 교섭이 결렬되거나 사용자의 부당한 행위가 논란이 될 때에는 연대파업과 동정파업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규태 지회장이 사는 창원에서 양산공장이 위치한 내원사 계곡 입구까지는 대략 70km가량 떨어져 있다. 교통이 원활할 때라면 한 시간이면 족할 거리지만, 출퇴근 시간대에 차량의 행렬은 시간을 고무줄 마냥 늘려 놓기가 일쑤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하려면 자택에서 6시에는 나와야 했고, 오후 5시에 일을 마치면 노조활동을 위해 정시에 퇴근할 수도 없었다. 회사와의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아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를 사용할 수 없으니, 통상적인 근로를 제공하면서 업무 외 시간에 노동조합을 이끌어가는 일은 과로를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
박동규 부지회장은 양산 토박이로서 양산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였고 일찌감치 회사에 취업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각 한 번 하지 않은 말 그대로 모범사원이었다. 박동규는 창원공장이 양산공장으로 통폐합되기 전 양산공장 노사협의회의 근로자위원이자 근로자 대표였다. 수시로 후배들을 챙기면서 고충을 접수하였고, 필요한 경우 정기 노사협의회 안건으로 상정하여 직원들의 불만과 불평을 줄여나갔다. 회사 사정으로 휴업이 필요하거나 휴일 특근이 필요한 경우, 먼저 나서서 직원들을 설득하고 다독거렸다. 모범사원 표창을 통해 부부동반 7박 8일의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 박동규에게 노동조합이나 금속노조라는 말은 무척이나 생경했다. 그간 노조 없이도 임금 수준은 인근의 여느 기업에 견주어 나쁘지 않았고, 대학생 자녀의 학비까지 전액 지원하니 복리후생도 이만하면 최상이라 생각되었다. 작년 말 절대다수의 추천에 못 이겨 부지회장이 되긴 했으나, 이규태 지회장과 호흡을 맞추는 것은 날이 갈수록 더 부자연스러웠다.
물금에 도착할 즈음 최 상무로부터 카톡이 왔다.
‘집 근처 일식집에 예약해뒀으니 저녁이나 합시다. 19시 정각.’
우경은 피하고 싶었으나 집 앞까지 찾아온 사람의 고집을 알고 싶었다. 최 상무는 우경보다 더 지독히 시간에 엄격했다. 아니나 다를까 최 상무는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어서 오시게. 한동안 뜸했는데 자네랑 한잔 하고 싶어서 불렀네.”
“저는 듣고 싶은 말씀도 드리고 싶은 말도 없습니다.”
“왜 이러시나. 그러지 말고 날도 더운데 시원하게 한잔 하시게.”
“보고서 때문에 부르셨습니까?”
“으... 응... 그건 아니고, 맞아, 보고서는 재미있게 잘 읽었네. 허허”
침묵은 서로에게 불편했고 술 따르는 소리만 정막을 깨뜨렸다. 녹색병과 갈색병이 테이블의 한쪽 편을 가지런히 차지할 즈음 최 상무가 흰 봉투를 내밀었다.
“회장님께서 챙겨주라더군. 동봉된 편지는 나중에 혼자서 보는 게 좋을 거야. 나 먼저 일어나겠네. 주말 잘 보내고, 회장님께서 충분한 시간을 주신듯하니 마음이 정리되는 대로 알려주면 고맙겠네.”
“네에. 잘 들어가십시오.”
혼자 남은 자리에서 봉투를 열어 보았다. 오만 원권 한 뭉치와 최 회장이 자필로 적은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이 팀장을 해고하면 노조가 조금 수그러들 줄 알았는데… 자네를 해고한 다음 노조와 대화창구가 꽉 막혀 버렸고… 노조가 지금 반대만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으니 걱정이 태산이고… 아무래도 자네가 다시 복귀해서 결자해지 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며칠 푹 쉬면서 적극적으로 생각해주기 바라네….」
소주와 맥주를 3:7 정도의 비율로 섞은 폭탄주를 연거푸 마신 탓에 취기가 올랐다. 옥상에서 부는 한여름 밤바람이 시원했다. ‘결자해지 하라고? 헛. 참... 나...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말인가?’ ‘노사관계 파행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말인가?’ 담배 연기는 회색 바람을 타고 흩어졌고, 초승달은 달무리를 이끌고 오봉산으로 기울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자고 보자. 내일은 또 내일 가서 생각하면 되지 뭐.’ 그렇게 생각하고 잠을 청했으나,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은 우경이 예상했던 시나리오와는 너무 괴리가 컸던 탓이다. 부당한 보직해임과 직급 강등에 대해 법적으로 다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싸움의 대상이 다투려고 하지 않으니 싸울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다시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물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자기 틀려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