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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암 May 03. 2022

태풍 매미와 사직의 추억

(사직서 제출을 둘러싼 논쟁)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다 보면 그 일이 엊그제 있었던 일인 듯한데, 실상은 몇십 년 전의 일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물리적 시간의 흐름은 어제도 오늘도 다르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어쩌면 한 조각 두 조각 단편만을 기억하는 우리의 한계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는 과거는 주로 후회나 탄식으로 가득하여 빨리 지나가 버리기를 원했으니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사람의 생명이 유한하므로 그렇다고 한다면 더 할 말은 없습니다. 시간은 멈추어있지 않고 늘 가거나 오는 것이므로, 우리는 단 한순간이라도 지금 현재를 살 수는 없는 것이지 않을까요. 그러니 늘 과거를 사는 우리는 세월 참 빠르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입니다. 태풍 매미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우리 국토 여기저기에 생채기를 냈었지요. 매미가 미친 듯 거세게 울던 그때는 추석 연휴였고, 저는 밀양 부모님 댁에서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결혼 후 처음으로 맞는 한가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창원에 소재한 한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추석 연휴가 지난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팀장이 휴대폰을 보자고 합니다. 걸면 걸린다는 광고 카피로 한 때 유명세를 떨쳤던 현대 걸리버 폴더폰. 팀장은 문자메시지 목록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제가 회사의 비상출근 명령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지웠고, 문자를 받고서도 일부러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단정하여 사실관계를 제멋대로 확정해 버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를 제외한 관리자들 전원이 비상출근했던 것입니다. 팀장의 인식에 이해가 없지는 않았으나 저는 분명히 문자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저의 항변은 변명밖에 되지 못했으니 일말의 미련도 없이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당시 부서장이 사직서를 수리해주지 않아 상당한 기간이 지난 다음 퇴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이 역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 일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에 회사가 사직서를 수리하면, 수리한 날이 퇴직일이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에는 다음과 같이 사직서 제출 기한과 인수인계 의무를 약정한 문언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자 하는 경우 최소 30일 전에 사직의 의사를 표시하고후임자에게 업무인계를 완료한 다음 퇴직하여야 한다.” 

    

 이러한 약정이 있는 경우에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수리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직서를 제출한 날로부터 30일이 지나야 퇴직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사직서 수리도 안되고 제출기한도 없는 경우에는, 사직서를 제출한 날이 속하는 달과 그다음 달이 경과 한 날에 퇴직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퇴직의 효력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출근을 하지 않는 기간은 무단결근이 되고,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사직서 제출 시점은 퇴직금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시급제나 일당제, DC(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의 경우 관련이 적습니다. 월급제 근로자로서 퇴직금제도나 DB(확정급여)형 퇴직연금제에 해당한다면, 2월, 3월 또는 4월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퇴직금을 계산하는 평균임금이 다른 달보다 다소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직서가슴에 품고 다니는 것도제출하는 것도 우리 모두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부디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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