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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암 May 05. 2022

천성산 막걸리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토요일 아침. 차바퀴가 아스팔트 바닥과 마찰하는 소리가 너무 컸고, 몇 마리 참새 떼의 합창이 기분 나쁘게 시끄러웠고, 무덥고 습한 바람이 지난밤 혼돈의 시간을 더욱 부채질하면서 더 잘 수가 없었다. 차라리 창문을 닫고 에어컨 바람 속에 자는 게 맞았을까. 창밖으로 오봉산 능선과 맞닿은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다 천성산이 떠올랐다.

 천성산은 우경의 칠정(七情)을 어루만지고 주말 휴식을 함께해준 좋은 친구였다. 천성산은 원효대사가 당나라 승려 천 명을 교화시켰다는 설화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보다 우경은 도롱뇽과 습지를 살리기 위한 지율 스님의 단식 투쟁 속에 오늘의 천성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율은 통도사의 말사 중 천성산 자락에 위치한 내원사의 승려다. 스님은 울산과 부산을 잊는 KTX 노선을 위해 천성산에 터널을 뚫는 것은 생명을 존중할 줄 모르는 미개한 인간만을 위한 천한 짓이라며, 2003년부터 2005년까지 5차례에 걸쳐 300일이 넘도록 단식을 했다. 공사 중단과 재개를 둘러싸고 환경단체와 보수단체가 맞붙었고, 대통령이 공약을 파기하거나 단식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언론은 뒤에서 각자의 입장에 유리한 군불을 지폈고, 국론은 통일되지 않았으나, 결국은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2006년 6월 공사가 다시 진행되었다. 이렇게 하여 2008년 말 길이 13km가 넘는 천성산 원효터널이 완성되었고, 2010년 11월부터 KTX가 운행되고 있다.    

           

 우경은 천성산 정상에서 막걸리를 한잔할 요량으로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한여름 시원한 막걸리를 즐기기 위해 보냉병과 김치를 챙긴 다음 편의점에 들렀다. 얼음 조각을 담은 컵과 막걸리 두 통, 그리고 김밥과 바나나를 샀다. 보냉병에 조각 얼음을 넣고 막걸리를 잘 흔들어 부었다. 단골을 알아보는 사장님이 이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는다.

 양산역에서 11번 버스를 타고 내원사 삼거리에 내렸다. 저 너머 회사에 잠시 들릴까도 생각하다 이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회사를 향하던 충성심이나 애정도 바닥이었고, 무엇보다 아직 최 회장의 편지에 대해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으므로-흔들었다.


 산행은 시작도 안 했는데 이미 온몸이 땀에 젖어 왔다. 내원사를 통과하여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포장도로에 차량의 통행이 많아, 우경은 노전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계곡물소리가 청량하고 새들의 노랫소리도 귀를 즐겁게 했다. 신록이 우거진 산속 길은 더 이상 여름이 아니었다. 짚북재를 지나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에 정상에 도착했다. 저 멀리 조감도처럼 회사 전경이 펼쳐져 보였다. 노조가 주말 특근을 거부하면서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양산과 울산의 중간 지점 정도를 관통하는 경부고속도로 위에 개미떼의 소풍 행렬이 끝도 없었다. 아름드리 참나무 그늘에 앉아 막걸리 석 잔을 연거푸 비우고 신김치를 우걱우걱 씹었다. 호흡이 가라앉고 땀이 식으니 또 지난밤의 혼란과 갈등이 마음을 심란하게 일으켰다.     

 ‘나는 그동안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일하였던가? 누구를 위하여. 나 자신을 위하여 일했던가? 내가 선택한 일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그것은 다시 말해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었나? 어쩌면 지금까지 이 회사를 다니지 않았더라도 그만한 돈은 벌었겠지. 돈벌이가 목적이라면 나는 언제까지 회사를 다녀야 할까?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둬도 되지 않을까. 더 필요하다면 다른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도 있지 않나. 로또 1등에 당첨되면 일 안 해도 될까. 혹 그 많은 돈으로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하니 또 다른 일을 하게 될까. 재벌 회장은 더 많이 더 열심히 일을 한다지. 하루의 절반 이상은 회사와 회사 일이라는 시간과 공간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지난 세월을 살아왔던가. 자아실현이라고. 도대체 그게 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라고 하지. 그 옛날 귀족들과 양반들은 노예나 종에게 맡겨두고 자기들은 글이나 읽고 토론이나 하고 싸움질이나 해댔다고 그러지.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다 앗아가면 그때도 일이 자아를 어쩌고 저쩌고 개소리다.’     


 우경은 다시 막걸리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김밥 하나를 씹으려는데 벌써 상한 기운이 느껴져 퉤 하고 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젠장.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어쩌고 그래서 자본주의 정신이 저쩌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매한가지로 일은 하잖아. 생산하는 인간과 소비하는 인간. 새것으로 바꾸고 이것도 사고 더 많이 사라는 광고의 유혹.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 테일러가 자동화와 분업화 시스템을 만들고, 노동자들이 술을 많이 먹으면 다음 날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고 금주법을 만들고, 성경에서 말하는 신성함이란 어쩌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극단과 뭐가 다를까. 정년퇴직이나 은퇴한 사람들이 심심해 죽겠다고 하는 거 보면 일은 심심풀이의 수단일 수도 있겠다. 법정 스님이 그랬던가. 사람이 그 일을 하지만 또 그 일을 통해 그 사람이 만들어지니 세상에 내 일이 아닌 것이 없다고. 잘 기억나지 않네. 그러니까 일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씀 같은데. 역시 존경하는 스님께서도 일과 사람의 형성 사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보셨구나. 돌이켜보면 나도 일 잘한다고 성실하고 능력 있다고 인정받았고, 그 인정 받음으로써 알 수 없는 보람과 기쁨도 느꼈고, 노고를 보상받았다고 생각도 했다. 원시시대 수렵과 채집도 일이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일하는 것은 유전인가 본능인가. 일 안 하고 놀고 있으면 백수라고 놀림을 받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어떻게든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끼기 위해서 애쓰는 것일까. 정말 뒤죽박죽이고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인간을 창조한 신에게나 물어야 할 질문인지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몇 잔 먹지도 않았는데 막걸리 두 통이 사라졌다. 저 멀리 다시 회사의 푸른 지붕과 널찍한 주차장과 내원사 계곡이 아른거린다. 땅에서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선다고 했던가. 우경은 일단 회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이끌림으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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