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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암 May 25. 2022

정신대도 위안부도 틀린 말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를 읽고)

많은 사람들은 쉬쉬 했다. 그만한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잊혀지기를 바랐다. 애써 지난 치욕의 역사를 고통 속에서 회상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가 그렇게 당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무관심하였고 일부러 기억하고자 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한일협정과 위안부 합의, 또 합의의 파기까지. 우리는 지금도 지우고 기억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군복을 만드는 공장에 돈 벌러 가는 줄 알았던 꽃다운 소녀들은 말할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고국 땅을 밟고서도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감감무소식이다 돈 한 푼 없이 빈손으로 나타난 요시코와 미에코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름 석 자를 신고하거나 밝힐 수도 없었다. 떠나기 전 나와 돌아온 후 나는 같지 않았다. 이 책의 주인공(김복동, 1926~2019) 역시 37년간 혼인 생활을 유지했던 남자에게 그 말을 비밀로 했다. 그 말은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증오와 원망의 대상은 분명하고 많다. 전범 일본의 파렴치에 대해 식민지 모국의 나약함에 대해. 인간 존재의 폭력성과 사악한 본성에 대해. 권선징악을 몸소 실천하지 않는 절대자에 대해. 나를 낳아준 부모와 나 자신까지도...... 


 주인공은 행복이 뭔지를 모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계절이 흐르는 곳에 살면서도 나이를 까먹고 살았다. 그래도 업보를 짓지 않겠다며 아무도 미워하고 싶지 않고, 아무도 원망하고 싶지 않다고, 아흔셋의 나이에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번개처럼 한순간 용서하고 떠나고 싶다는 말씀이 귓가에 쟁쟁거린다. 


 정신대(挺身隊)와 위안부(慰安婦)는 혼용되기도 구별되기도 한다. 정신대는 근로정신대로,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로 한정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위안부라는 용어로 통일된 듯하나 시기와 명분은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정신대라는 말도 위안부라는 말도 침략국이나 전승국의 입장에서나 성립될 수 있는 것이지 않나? 이런 말들이나 표현은 사전에서나 앞으로의 역사에서도 사라져야 할 말인 것이다.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숭고함이라면, 잘못된 역사에서 비롯된 언어도단의 상황을 사실 그대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를 선택하는 것이 후세의 책무이자 도리이다. 주인공은 일본군 성노예였다. 하여 나를 찾을 수 없었고, 나를 찾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고,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밤새 엎치락뒤치락 뒤척였다. 지금 여기 양산이 고향이었다니 더 애틋한 마음 달랠 길이 없다. 김복동 할머니! 더 이상의 업보는 없습니다. 부디 탐욕과 기만이 없는 극락에서 영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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