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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암 Aug 13. 2022

신의성실의 원칙

(정기상여금과 통상임금, 그리고 재직자 조건)

 신의성실의 원칙,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 또는 금반언의 원칙은 근대 민법상 계약자유의 원칙 또는 사적자치의 원칙을 뒷받침하는 근본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산업사회의 발전과 자본주의 이념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근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일반원칙이 모든 법률관계나 사회현상에 보편타당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절대불변의 진리는 아닐 것입니다. 현대의 국가는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추구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계약자유를 제한하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개입이 헌법이 정하고 있는 근본규범이나 기본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를 두고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부합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가 타당하다면 노사 간의 합의에 반하여 법정수당(주로 연장근로수당)의 차액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 된다는 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먼저 근대 시민법의 계약자유를 존중하다 보니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실질적인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는 반성에서 현대의 노동법은 탄생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도 같은 반성과 배경으로 1953년 제정되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의 탄생 배경은 근로조건의 기준에 관한 설정의 해석을 두고 사적 자치를 뒷받침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신의칙이라는 일반원칙은 당해 사안을 해석하는 준거 규범이 존재하지 않거나 부족할 때 이를 보충하는 해석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우리 근로기준법 제3조는 “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이므로 근로관계 당사자는 이 기준을 이유로 근로조건을 낮출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 된 사안을 해석하고 적용하는데 분명한 근거 규범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원용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는 생각입니다.     


 

   끝으로 근로기준법 제49조는 “이 법에 따른 임금채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한다.”라는 단기의 소멸시효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임금의 시효에 대해 일반 채권과 달리 짧은 시효를 둔 것은, 노사 간의 신뢰 보호와 산업평화의 유지를 위한 취지로 해석됩니다. 법정수당의 차액에 대해 지나간 10년분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법이 정한 3년분을 청구하는 것이 어떻게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어긋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의의 관념이나 형평의 관념과 같은 불명확한 개념은 명시적인 근거가 없거나 수긍할 수 있는 논거가 없을 때 사용하는 불확정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지 않습니까. 일반적인 구속력이 없는 행정부의 지침이나 법원의 선례를 신뢰하고 따른 사용자의 행위에 대해서 행정행위와 같은 신뢰 보호의 원칙을 원용할 수는 없습니다.   



  

 너무 딱딱하고 법률적인 이야기만 한 듯합니다. 법 규정이나 해석의 관점을 떠나서 실제 현상을 같이 볼까요. 정기상여금은 말 그대로 일정한 시기와 금액(또는 지급률)을 미리 정해놓고 지급하는 임금을 뜻합니다. 일정한 시기나 정해진 금액은 기업 규모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물론 정기상여금 제도 자체가 없는 회사도 있습니다. 정기상여금의 지급 여부 자체가 법적으로 정해진 사항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①회사는 직원에게 정기상여금으로 기본급의 400%를 지급한다.

 ②전항의 정기상여금은 설, 추석, 여름휴가, 연말에 각각 100%씩 지급한다. 

 ③정기상여금은 지급일 현재 실제 재직중인 직원에 한하여 지급한다.     



 정기상여금이 있는 회사의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정기상여금 제도입니다. 이렇듯 대부분 정기상여금은 1년 동안 어느 시기에 얼마를 지급하겠다는 취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위 사례에서 연간 정기상여금은 대략 얼마쯤 될까요. 기본급이 200만 원이라 가정하면 800만 원이 되겠지요. 1년 동안의 임금총액, 즉 연봉에서 이 정기상여금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할까요. 명절 쇠는데, 여름휴가 보내는데, 연말에 특히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보태서 쓰라고 주는 돈일까요. 아니면 회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느라 수고했다고 주는 돈일까요. 여름휴가를 앞두고 며칠 전에 퇴직한 직원은 상여금을 못 받아 속이 상했다고 합니다. 여름휴가를 보낸 직후에 상여금을 받은 직원이 퇴사하자 나쁜 놈이라고 욕을 해댔습니다. 최근 일부 법원에서는 정기상여금은 지급 대상 기간 동안 근로를 제공한 데 대한 대가로서 임금이므로, 지급일 이전에 퇴직한 자에 대해서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재직자 조건은 그 자체로 효력이 없다는 판단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느 쪽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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