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 보쌈 그리고 물고기)
야 이놈의 손아! 된장독에 장이 남아나질 않는다. 물고기한테 다 퍼주면 우리 먹을 것도 없겠다. 보쌈에 넣을 된장을 퍼담고 있는 나를 볼 때마다 어머니는 이런 푸념을 늘어놓았다. 오늘도 많이 잡아 오너라. 잔챙이들은 잡아도 살려주고 씨알이 굵은 놈들만 잡아 오너라. 아버지의 말씀이다.
보쌈은 지름 30㎝가량의 양푼이에 된장 물을 풀고, 그 윗면에는 투명하면서도 조금은 두꺼운 비닐을 덮은 다음, 양푼이 가장자리는 고무줄로 묶고, 한가운데 지름 2~3㎝ 정도의 구멍을 뚫은 물고기 잡는 도구다. 보쌈을 글로 표현하자니 참 어렵고 희한한 장비인 듯하다.
큰 그랑. 배내골에서 시작하여 농암대를 굽이쳐 마을과 가까운 곳에서 잠시 쉬어가는 강물의 이름. 폭은 50m 정도, 길이는 200m나 될까. 깊은 곳은 수심이 3m가 넘는 곳도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진 산비탈 바위에서 강바닥을 바라볼 때, 조약돌은 투명한 빛을 반사했고 물고기들의 유영은 한가로웠다.
저놈을 잡아야 하는데. 보쌈 양푼이는 바닥에 묻어야 한다. 물살에 떠내려가서도 안 되지만, 물고기들이 함정인 줄 눈치채면 더더욱 안 되기 때문이다. 잠수한 상태로 자갈 바닥 파헤치기를 여러 차례. 된장 물 푼 양푼이 속에 공기 방울 단 하나라도 없도록 물을 가득 채우고, 또다시 잠수한 채로 양푼이를 구덩이에 묻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정해진 시간은 없었다. 물고기의 수와 크기에 따라 10분도 좋고 1시간도 좋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한여름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입술을 덜덜 떨 정도로 추웠다. 식은 몸을 데우기 위해 넓고 평평한 바위에 몸을 말린다. 한두 마리 앞장서서 된장 물을 헤집어놓으면 그 향내를 맡고 더 많은 물고기가 보쌈으로 빨려 들었다. 오늘은 뱃살이 통통하게 오른 피라미가 백 마리 넘게 양푼이를 가득 채웠다.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열대야 취침 예약 시간에 맞추어 꺼져버린 에어컨. 2022년 양산의 한여름 새벽은 상쾌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물고기 잡는 꿈은 길몽이라 했던가. 물고기라도 가득 잡았으니 오늘은 로또라도 한 장 사야겠다. 그 허황된 꿈과 무더위를 맞바꿀 수 있다면 1등 당첨 아니라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