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딱지를 살 수 있는 날은 1년 중 며칠 되지 않았다. 명절이나 제삿날이 바로 그날이다. 도회지에 사는 친지들이 용돈을 주면 그 돈을 엄마에게 빼앗기기 전에 얼른 처분해야 했다. 자칫 친지들이 떠나기 전까지 소비하지 못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엄마의 회유에 넘어가야 했다. 다음에 더 많고 좋은 것을 사주겠다는. 소년의 손바닥보다 작고 얇은 동그란 딱지는 또 다른 세상이었고 꿈이었다. 소년은 오늘 모은 딱지들을 바라보며 한없는 행복감에 젖어들고 있었다. 내일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딱지치기 놀이를 해야지.
구슬은 크기도 색깔도 모두 달랐다. 유리구슬, 옥구슬, 왕구슬. 각양각색의 구슬들이 앞주머니 속에서 까끌까끌 노래를 부르면 동네 아이들은 신작로 공터로 모여들었다. 정사각형 꼭짓점 모서리와 정중앙에 5개의 종지 그릇만 한 구덩이를 파고, 정중앙 구덩이로부터 3미터 남짓 거리에는 마지막 1개의 늑대 구덩이를 팠다. 늑대가 된 구슬은 친구의 구슬을 다 잡아먹었다. 삼각형 둘레를 치고 우리는 각자 몫으로 된 구슬을 그 속에 조심스레 놓아두었다. 각자 익숙한 방법으로 조준을 하고 삼각형 속 구슬을 칠 차례다. 삼각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 구슬은 소년의 차지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구슬을 깨끗이 씻은 다음 허공에 비추어 본다. 밤하늘 빽빽한 은하수 물결 따라 소년은 구슬을 타고 우주를 비행했다.
꿈을 꾼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소년은 숫자를 좋아하는 사업가 이기도 했고, 세상 밖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주정뱅이 이기도 했고,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왕이기도 했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미치광이처럼 오늘을 살고 있다.
지금 여기 또 다른 한 소년이 생김새와 재질이 다른 딱지를 모은다. 세상에 있는 모든 팽이를 수집할 모양이다. 도대체 누구랑 무얼 하고 있는지 독백이 장난이 아니다. 포켓몬스터 딱지 한 장에도 베이블레이드 팽이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양 행복해하는 또 다른 소년을 보면서 생각한다. 얼마만큼이면 만족해할 거니. 얼마나 더 있어야 행복할 수 있겠니.
칠흑 같은 어둠 건너 저 별 어딘가에 살고 있을 어린 왕자를 만나고 싶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진리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묻고 싶다. 내 마음속 어린 왕자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