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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암 Nov 26. 2022

어느 주례(主禮)의 고백

결혼식 주례를 설 정도의 인품이나 명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랑이나 신부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불러주는 곳이 많아 주례사를 자주 해본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혼주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워 주례를 서기로 한 날.  


   

창세기와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의 말씀 중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어울릴만한

말씀들을 꺼내어 읽어보다가,

성철 스님의 주례사 중 스스로 심연에 새겨 결혼 생활의 초석으로 삼았던,

부부의 연으로 시작된 출발부터 같은 무덤가에 풀이 무성할 때까지 지키기로 했던

생활의 신조까지 노래 부르듯 읊조리다가,

문득 가슴속 다른 울림에 놀라 한순간 주례사는 멈추었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 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서로 이렇게 좋아서 결혼하는데 이 결혼할 때 마음이 어떠냐,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이것저것 따져보는데, 그 따져보는 그 근본 심보는 덕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지위는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 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져 가지고 이리저리 고르는 이유는 덕 좀 볼까 하는 마음입니다.

손해 볼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래서 덕 볼 수 있는 것을 고르고 고릅니다. 이렇게 골랐다는 것은 덕 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내는 남편에게 덕 보고자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덕 보겠다는 이 마음이, 살다가 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첫째가 남편이나 아내를 우선시하고 둘째가 부모를 우선시하지, 남편이나 아내보다도 부모를 우선시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옛날이야기입니다.

일단 아내와 남편을 우선시할 것,
 두 번째 부모를 우선시할 것,
 세 번째 자식을 우선시할 것,
 이렇게 우선순위를 두어야 집안이 편안해집니다.
 그러고 나서 사회의 여러 가지도 함께 기여를 하셔야 합니다.

이러면 돈이 없어도 재미가 있고, 비가 새는 집에 살아도 재미가 있고, 나물 먹고 물 마셔도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즐겁자고 사는 거지 괴롭자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 두 부부는 이것을 중심에 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이 밖에 가서 사업을 해도 사업이 잘되고, 뭐든지 잘됩니다.

그런데 돈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권력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자기 개인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자기 생각 고집해서 살면 결혼 안 하느니 보다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 좋은 이 마음 죽을 때까지 내생에까지 가려면 반드시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따로 머리 깎고 스님이 되어 살지 않아도, 해탈하고 열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승보살의 길입니다.

제가 부주 대신 이렇게 말로 부주를 하니까 두 분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주례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신랑 신부의 결혼을 주재하고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는 것.

둘째, 혼주 됨을 축하하고 노고를 치하하는 것.

셋째, 참석한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

돌이켜보니 내가 신랑이었을 때, 내가 혼주였을 때, 내가 하객이었을 때

주례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허공에 한 조각구름 지나가듯 무심한 말이었다.     

 나는 주례사를 마쳤다. 오늘 주례사는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선물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하객들의 큰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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