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5일제(36시간제) 근무에
관한 단상

by 농암


우리는 흔히 “시간은 돈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이 언제 어디서부터 유래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오늘날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근로시간과 임금의 관계를 규율하는 중요한 틀의 일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관념은 노동법이라는 법제도로 체화되면서 근로시간과 임금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연속적 규범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시간이 돈이고 근로시간이 임금이라는 단순화된 인식에 기초한다면 근로시간을 규율하는 법제는 임금제도의 뒷받침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임금제도보다 근로시간 그 자체를 세밀하게 규율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노동력의 재생산과 근로자의 문화생활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하여 근로시간에 대한 최저한의 기준을 법률로써 정할 필요가 있고, 휴일과 휴가와 같은 법정휴식제도를 통해 근로시간의 길이를 규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적자치의 원칙에 기초한다면 노동시장에서의 근로시간과 임금의 자유로운 교환은 국가가 존중하여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근로시간은 근로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사용자가 처분할 수 있는 구속 상태로 맡겨둔 시간이기 때문에 장시간의 구속은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점에서 국가의 개입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법적 측면만 강조하는 국가의 개입은, 예컨대 근로시간의 장단을 규제하는 것은 사용자에게 있어 생산 활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고 일정한 시간 이상의 근로를 금지하거나 할증된 임금의 지급을 강제하는 것은 사용자의 이윤감소를 초래할 수 있는 점에서, 근로시간의 사법적 측면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 고용 없는 저성장의 시기에 근로시간의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실업률 감소를 위한 국가정책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결국, 근로시간에 대한 법적 규제는 근로시간을 둘러싼 노사정간의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환경을 개선시키면서 한 나라의 국민경제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문제의 영역으로 이해된다.


근로시간의 규제나 단축의 문제는 근대 노동법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국제적 노동축제일인 5월 1일(근로자의 날, May day)은 미국에서 1일 8시간의 근로시간제를 부분적으로 확보한 1886년 5월 1일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시작되었고, 노동법의 역사가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각국의 근로시간은 지속적으로 단축되는 추세에 있다. 다만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왔는데, 당초에는 인간의 생리적 한계를 설정하여 노동력을 보존하려는 경제적 목적으로, 다음에는 사회생활의 단위로서 근로자와 그 가족의 문화적 생활을 확보하려는 사회적 목적으로, 오늘날에는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통한 문화적 생활보장과 병존하여 국내외적인 공정경쟁을 확보하고 실업을 방지하고자 하는 국가적 목적으로 확대 발전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근로시간의 기준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한편 충분한 휴식과 여가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법률로써 정해야 함을 선언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노사 간의 조화를 통해 실근로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실업을 방지하고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근로시간법제의 지향점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근로시간법제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근로시간과 휴일, 휴가 등의 최저기준을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은 1953년 5월 10일 제정된 이래, 산업구조의 고도화, 정보통신기술과 인공지능의 발달 등 사회문화적 환경변화에 발맞추어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에 따른 관련제도의 개편 등 몇 차례 개정을 거침으로써 점진적으로 실근로시간도 단축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다른 근로시간법제는 큰 변화 없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간 중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의 국제적 금융위기, 그리고 최근 불어닥친 전 세계적 코로나 팬데믹은 사용자들에게 필요최소한의 인력을 통한 기업경영전략을 모색하게 하였다. 이러한 경영환경의 변화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내부노동시장을 더욱 고착화하였고, 비정규직 근로자나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의 활용과 법정근로시간 위반에 대한 법규제의 느슨함 속에서 장시간근로의 관행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장시간근로가 관행화된 원인은 근로시간의 각 이해당사자인 노사정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①노동수요자 측인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인력 수준을 가능한 낮게 유지하여 비용부담을 최소화하고 경기 변동 시 이미 확보된 인력 수준을 통한 시간 외 근로로써 생산물량을 조절하며, ②노동공급자 측인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저임금을 보전하기 위한 생계유지의 목적에서 시간 외 근로를 선호하고 휴가사용을 꺼려하는 한편 일자리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장시간근로를 용인하게 되고, ③노동수요자와 공급자를 조율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장시간근로가 종래의 압축적인 고도성장에 밑거름이 되고 있었다는 순기능에만 주안을 두었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장시간근로의 원인을 법제도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현행 근로시간법제가 20세기적 시대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종래 하나의 고정된 사업장과 제조업 위주의 생산 공정을 전제한 법제를 설계하고 유지해 온 것도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법정근로시간은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다. 2005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6년에 걸쳐 사업장 규모별로 순차적으로 시행되긴 했으나 이미 20년 전부터 주 5일제였다. 그러나 우리는 온전한 주 5일 근무를 할 수 없었다.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이유로, 휴일근로는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근로시간은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의 반복이기도 했다.


주 4.5일제와 같은 실근로시간의 단축은 이를 통해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하여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함으로써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을 구체화함과 동시에, 인간다운 생활을 통한 창의적인 노동력의 재생산을 유도하여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국민경제발전에 기여하고자 함에 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나 인간답게 살 권리는 내가 다니는 회사의 종류나 규모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기본권이다. 법으로 강제하여 시행할라치면 모두 같은 시기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 우리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과 임금을 동등한 교환적 가치로 규정하고 있어 근로시간의 단축은 임금 감소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과거 20년 전처럼 부칙에 임금보전의무를 규정할 수도 있겠지만, 근로시간과 노동생산성의 관계는 정비례하지도 않고 고정된 상관관계도 없다. 근로시간에 따라 정해져 왔던 시급제, 일급제, 기본급제 임금체계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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