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암 Apr 29. 2022

금속노조로 단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우경은 갑자기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여졌다. 스마트폰에 자주 사용하는 연락처 목록에는 회사 사람밖에 없다. 이럴 때 마음 편히 불러낼 친구 한 명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평소 친구들에게 관심 좀 가지고 더 잘 챙겼어야 했는데......’ 

 2년 전 이혼한 아내를 떠올려 보다가 더욱 초라해지는 꼴이 우습다. 원룸 근처 바에 키핑 해두었던 양주가 생각났다. 이혼한 다음부터 누군가를 만나기 싫어졌고 자연스레 혼자 하는 술자리가 늘어났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해 혼술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그 대부분의 공간은 원룸이 차지했으나, 오늘 같은 날엔 바가 어울릴 듯했다. 단박에 우경을 알아챈 사장님은 우경이 남겨둔 양주와 서비스로 먹태 안주를 꺼내 오셨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바에 들러 또 다른 양주와 과일 안주를 시켰고, 연거푸 스트레이트 몇 잔을 들이켠 다음부터 아무런 기억이 없다. 시간은 이미 출근 시각을 훌쩍 넘어 10시를 향해가고 있다. 

 ‘정식 결재도 받지 않았고, 3일 전에 신청도 안 했으니 오늘은 결근이 맞다. 무엇보다 회사의 승인을 받지 못했으니 무단결근이다.’


 다시 최 상무의 자진 퇴직을 권유하는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꿈꾸는 최 회장은 현금이 필요했다. 대충 잡아도 50억 이상은 필요해 보였다. 개인이 보유한 돈으로 특별당비를 충당하고도 남겠지만, 그 돈과 회삿돈은 엄연히 주인이 다른 것이다. 주머니 돈을 쌈지 돈으로 여겼다가는 감옥에 갈 수도 있겠지. 설계변경으로 공사대금 부풀리기, 허위로 등록된 직원의 인건비 빼돌리기, 납품 대금 부풀려 리베이트 챙기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부정과 비리의 중심에 우경이 있었다. 그렇다고 우경이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모두가 최 회장의 정계 진출을 위한 불법행위인 셈이다. 21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한 최 회장은 더 많은 비자금이 필요했다. 회사의 추잡한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관리팀장을 함부로 내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불법행위의 실행에 가담한 이상 쉽사리 떠벌리기도 어려운 처지다. 


 창원공장에는 민주노총 산하의 금속노조가 설립되어 있었으나 양산공장에는 노동조합이 없었다. 두 공장의 매출 규모나 지리적 여건 등 경영환경은 비슷했지만, 노사관계는 늘 창원이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창원공장을 폐쇄하고 양산공장으로 통합한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창원공장 근로자들은 주로 창원에 거주하였는데, 창원에서 양산까지 출퇴근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희망하는 경우 누구든지 양산공장으로 전직을 허용했으나, 일부 강성 노조간부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희망퇴직하였다. 당시 지회장은 강성 중에서도 최고 강성으로 평가되고 있었으나,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스스로 그만뒀다. 평소 이규태 부지회장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회사는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마감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자 명단에 부지회장은 없었다. 1억 원을 제시하면서 회유했다는 풍문이 있었으나 부지회장도 회사의 그 누구도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부지회장이 3억 원을 요구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양산공장의 생산직 근로자들은 희망퇴직을 신청해도 접수하거나 수리하지 않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우경은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지 알고 있었으나 노사 모두를 위해 입을 굳게 닫기로 마음먹었다. 1년 가까이 끌어온 임금교섭에 지친 데다, 최 상무의 밉살스러운 말과 행동에 우경도 모르게 그만 사실을 터놓고 만 것이다. 회사는 부지회장을 내보내기 위해 1~2억 원의 위로금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러한 제안이 수락되는 경우 양산공장의 생산직은 단 한 명도 정리하지 않겠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해두었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경우 창원공장의 노조 부지회장이 어마어마한 금액을 요구했다는 말을 흘려 내부 분열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양산공장의 근로자들이 강성노조 집행부에 물들지 않도록 나쁜 여론을 만들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부지회장 한 명만 희생하면 양산공장 전체가 안녕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세상일에 비밀은 오래가지 못하고, 진실은 끝까지 살아남는 법. 회사의 구조조정 계획을 알게 된 양산공장의 직원들 대부분은 금속노조에 가입하였고, 만장일치로 창원공장 부지회장을 신임 지회장으로 선출하였다. 그 후의 노사관계는 강대강으로 치달았다.                                               


 노조(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주식회사 이월 지회)는 1,200여 명의 직원 중 900명을 조직했다. 노조는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 신청을 했다. 이와 함께 쟁의행위 찬반투표도 실시했다. 재적 조합원 91%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파업이 가결되었다. 노동위원회의 조정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점심시간을 빌려 파업 출정식을 가졌다. 일체의 잔업과 특근은 거부되었다. 노조의 핵심 요구는 구조조정 중단과 코로나19로 인한 임금손실 확보를 위한 기본급 10% 인상에 있었다. 반면에 회사는 창원공장을 매각해야 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하여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며, 당연히 임금은 동결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맞섰다. 노동위원회는 인위적인 구조조정, 즉 정리해고는 하지 않는 조건과 기본급 5% 인상안을 조정안으로 제시했으나 노사 양측 모두 이러한 조정안을 거부하였다. 결국 노동위원회는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고, 노조의 준법투쟁과 부분파업은 지속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산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