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폭설
5월은 시뻘갰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부터
비릿했다
너무 긴 여름
열 개의 태양이
잠시 저문 밤
점점이 켠 촛불로
예羿의 별자리를 만들어
아홉 태양을 쏘아 죽였다
마침내 맞은 가을
타들어가는 여름볕에 익은
배와 사과 몇 알은
꿀처럼 쨍했다
붉어가는 단풍잎
노란 은행잎의 두런거림을
고요히 받아내는 플라타너스
가을이 익어가는 빛 속에서
하루가 무겁게 무너졌다
밤 사이
폭설이 쏟아지네
해가 뜨는가 싶은데
허옇게 날리는 것은
우박 섞인 눈
빛이 시퍼렇게
꺾이는 겨울
단풍 들던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에
눈이 뜨이고
#창작노트
우리나라는 참 모진 역사를 지나왔다.
바닥의 정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
좀 나아질까 싶었지만 군부독재였다.
수많은 피를 흘리고 자유를 얻었다.
고통스런 시간을 겪은 뒤에, 이제 선진국이다!
외친 어제가 가을의 절정이었다.
별안간 맞은 가을 폭설, 2024년 11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