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을 폭설

by 이경준

가을 폭설



5월은 시뻘갰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부터

비릿했다


너무 긴 여름

열 개의 태양이

잠시 저문 밤


점점이 켠 촛불로

예羿의 별자리를 만들어

아홉 태양을 쏘아 죽였다


마침내 맞은 가을

타들어가는 여름볕에 익은

배와 사과 몇 알은

꿀처럼 쨍했다


붉어가는 단풍잎

노란 은행잎의 두런거림을

고요히 받아내는 플라타너스

가을이 익어가는 빛 속에서

하루가 무겁게 무너졌다


밤 사이

폭설이 쏟아지네

해가 뜨는가 싶은데

허옇게 날리는 것은

우박 섞인 눈


빛이 시퍼렇게

꺾이는 겨울

단풍 들던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에

눈이 뜨이고


#창작노트

우리나라는 참 모진 역사를 지나왔다.

바닥의 정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

좀 나아질까 싶었지만 군부독재였다.

수많은 피를 흘리고 자유를 얻었다.

고통스런 시간을 겪은 뒤에, 이제 선진국이다!

외친 어제가 가을의 절정이었다.

별안간 맞은 가을 폭설, 2024년 11월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입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