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2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탄소포인트 Aug 18. 2020

그런 계절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2005)

그런 계절

나의 세계엔 사랑밖에 없었어.”
 
A 자신의 앞에 놓인 카메라를 쳐다보며 누구에게 말하는지 불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언제나 그것을 반쯤 숨겨야 했지.”
 
A 이제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마주 보고 있던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눈을 쳐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역겨워. 사랑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도 되는  마냥 굴면서 번지르르한 말이나 하는 사랑충들
 
나에게 있어서 사랑은 언제나 거리를 두고 싶은 딜레마였다. 나의 연인들은 세계의 중심이 언제나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위성처럼 나의 주변을 떠돌다 사라지곤 했다. 나의 우주에서 중력은 사랑이 아니었다. A 대한 약간의 경멸을 느끼며 생각에 빠져들던 찰나, A 갑자기 말했다.
 
그런데  카메라 뒤에서 뭐하냐?”
 
학교 리포트였다. 사랑에 대한 인터뷰. 카메라 뒤에서 지켜보는 그의 눈빛은 렌즈를 거쳐 반쯤 굴절된다. 나는 A  달에 2번씩은 만났던  같다. A 어쩔 때는 침울한 표정으로 어쩔 때는 활발한 표정으로 카메라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었다. 그도 귀찮은지 카메라 뒤에 있는 나에 대해서  이상 묻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어느 , A 죽었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죽은 A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니, 죽은 A 학습한 AI에게서 온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AI 통해 대화의 내용을 분석, 상대방의 성격이나 특징, 말투 등을 유추해 메시지를 보내게 만드는 메시지 서비스를 하는 회사들이 있다. 어찌 되었든 리포트를 끝내야 했으므로, 나는 이제껏 나누었던 모든 메시지 대화 내용을 회사에 보내어 매일 아침 9시에 대화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A 죽기 전에 찍었던 인터뷰 영상도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이질감 없이 A 대화를 나눌  있었고, 결과적으로 리포트 자료로  풍부한 자료들이 많이 나왔다. 예컨대,
 
누군가는 연인이 사라졌을 때의 자신을 떠올리지만, 나는 내가 사라졌을 때의  사람을 떠올려.  사람이 나를 붙잡고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일상생활을 살다가도 그냥 문득, 나를 기억해주면 좋겠어. 그저 그것뿐이야.” 라던가,
 
츠카모토 신야의 <철남> 보면 이런 대사가 나와. 우리의 사랑만이  빌어먹을 세상을 끝낼  있다고. 세상을 구원하는 것도, 세상을 파멸시키는 것도 결국 사랑 아닐까? 결국 우린 사랑 때문에 죽어.”
 
계절이  사람을 데리고  때가 있어, 그럼 나는 견딜  없어.”
 
같은 어디 로맨스 소설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얼굴도   없는 A와의 대화를  학기 내내 이어나갔다. 덕분에 교양 수업의 성적은 ‘A+’ 받았다. 교수가   뜨거운 문장들을 수업 시간에 읽기까지 했으니  다했지. 덕분에 성적은  받았지만, 부작용이 생긴 것만 같다, 괜히 9시로 맞췄던 것일까. 이제는 9시만 되면 눈이 뜬다. 그날도 어김없이 9시에 눈을  날이었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신청하신 서비스의 기간은 6 10일까지입니다. 연장하시겠습니까? 만일 연장하지 않는다면 상대방과의 대화 기록과 보내주신 정보는 모두 삭제 처리됩니다. Yes/NO’
 
 망설임 없이 ‘No’ 눌렀다.  이상 A와의 대화는 필요 없는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침대에 던지고 창가를 바라본 채로 앉았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팔꿈치 끝에는 여름이 내렸다. 마룻바닥에 누워 바람을 맞으며 먹는 캔맥주와, 소낙비 소리와 함께 젖은 아스팔트의 냄새를 맡던, 그런 계절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어긋난) 가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