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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소포인트 Jul 25. 2019

<열차의 도착>을 바라보는 단상

열차의 도착(Arrive dun train La Ciotat, 1896)

<열차의 도착>만큼 영화 사상 잘못된 정보로 알려진 '영상'은 잘 없을 것이다. 세계 최초의 '상업 영화'라는 타이틀을 오랫동안 달았고, 실제로 에디슨의 영상과 최초 타이틀을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실제로 내러티브를 가지고 만든, 최초의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 일 것이다. 또한 뤼미에르 기준으로도 이 작품이 최초의 영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라는 타이틀이 아주 인상적으로 작용한 탓인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열차의 도착>은 세계 최초의 영화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기차가 들어오는 줄 알고 사람들이 놀라 도망갔다는 얘기도 과장된 얘기라는 것이 영화사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토록 많은 루머 덕분에, 뤼미에르 형제와 <열차의 도착>은 지금도 영화사에 언급되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열차의 도착>이 최초이든 아니든 '최초의 영화'라는 수식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영화사가들에게는 이 논란이 아주 중요한 문제겠지만, 실제로 영화를 향유하거나 창작하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무엇이 최초가 됐든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열차의 도착>을 잘 뜯어다 본다면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뤼미에르 형제는 자신의 영상이 예술은커녕, 산업적으로도 흥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봤고, 실제로도 푼돈 몇 푼에 자신의 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기서 우리는 <열차의 도착>이 영화사에서 가지는 위치를 진정으로 생각해 볼만한 지점일 것이다. 새로운 매체에 대한 편협한 생각과 치졸한 견제, 무지들은 영화사 내내 이어져어온 특징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영화사야말로 '인간들의 편견과 벌이는 투쟁의 역사'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영화의 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시기부터 시작된 숙명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영화가 산업적으로 인정받은 이후로도, 영화는 한동안 연극계나 다른 예술계로부터 하위 산업으로 취급당하는 신세에 불과했다. 영화가 예술로 인정받은 이후로도, 영화는 독립적인 예술 영역을 인정받지 못하고, 다른 예술과 겹칠 수밖에 없는 예술로 인식되었고, 지금도 이러한 선입견에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토록 수많은 창작자들과 비평가들이 편견과 싸워왔음에도, 여전히 편견(영화계 내부와의 편견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팽배하다.)과의 전쟁은 끝날 줄을 모른다.

영화사에서의 <열차의 도착>이 가지는 위치는 오류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영화사에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영화가 태생적으로부터 받아왔던(심지어 그것들을 만든 아버지들에게 조차도!) 불신과 선입견이라는, 영화사 내내 관통하는 주제에 대한 질문을 '처음' 던지는 이 영상은, 영화라는 예술이 추구해야 할 목적과 본질적으로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에, <열차의 도착>은 최초라는 의미로 기념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영화에게 '처음'으로 던지는 질문으로 기념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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