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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소포인트 Jul 25. 2019

‘방’이라는 이름의 세계

소공녀 (소공녀, 2017)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서라도, <소공녀>를 보면서 주목했던 건 ‘방’이라는 공간이 영화 속에 가지는 위치였다. 그들의 방을 보면서 나는 그것들을 각자 인물들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영화에서 얘기하는 방이라는 공간은 내가 지금부터 말하려는 방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얘기된다. 나는 <소공녀> 속의 방이 인물들의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요소라는 생각을 했다.

미소가 만나러 다니는, 혹은 일하러 다니는 인물들을 보도록 하자. 그들은 각자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너무나 달라지거나 망가져 버린다. 그들과 미소와의 거리, 아니면 자신이 속해져 있는 세계와의 거리는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자신의 세계에 미소를 아예 초대하지 않는 문영, 가족과의 단절로 인해 그들과의 세계와 동떨어져 겉도는 현정, 두 세계의 충돌로 인한 파탄으로 무너져 버린 지 오래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방에 종속되어버린 대용, 욕망을 채우거나 사람을 도구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세계만이 존재하는 록이,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침입자는 과감히 처단하는 정미, 자신과 미소가 함께할 세계를 만들기 위해 역설적으로 미소와 가장 멀리 떨어져야만 한다는 한솔, 남에게 잠깐 빌린 세계를 나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민지까지. 미소는 마치 하나의 챕터처럼 각자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방들의 구조는 재밌는 구석들이 있다. 같이 살거나 혹은 살았던 사람들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들의 집은 둘로 쪼개져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공간이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다. (대용, 현정) 한편에는 미소라는 존재가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위협적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요구되는 인물들의 방(정미, 문영, 록이)은 대개가 하나의 단일 개체처럼 존재한다. 자신의 방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듯 말이다. 그렇다면 감독은 미소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미소가 가지는 작품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좋든 싫든 방이라는 공간을 절대적으로 가져야만 하지만, 미소 혼자만이 과감히 그러한 세계를 버리고 떠돌아다닌다. 마치 감독의 대리인처럼, 미소는 다른 사람들을 ‘여행’하고 다니면서 남의 세계에 들어가 관찰자의 시선으로 집이라는 것을 둘러싸고 있는 청춘 세대들을 바라보는 역할로 기능한다.

감독은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방’이라는 이름의 세계(자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자존을 저당 잡힐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사회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그들에게로 여행을 마친 그녀가 하는 행동은 나로 하여금 이 영화를 더욱 지지하게끔 만든다. 그녀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한 번의 밥이나 청소, 그리고 담배를 태우며 얘기해주는 것뿐이다. 그녀가 나타났다고 해서 상황이 더 좋아지거나 나빠지지 않는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밖에는 해줄 수 없다 ‘고 말하는 것만 같은 그녀의 존재는, 각자의 삶에 힘들어하는 청춘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그리고 어떤 존재들에게 함부로 연민의 눈길을 보내지 말아 달라는 감독의 호소가 아닐까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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