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2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탄소포인트 Jul 25. 2019

소음과 박수, 그리고 음악

레토 (Лето, 2019)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바닷가에서 기타를 치며 놀고 있다. 그리고 검은 머리에 아시아 인종의 얼굴을 한 청년이 친구와 무리에 낀다. 오프닝에서부터 바닷가 시퀀스까지, 그 기나긴 시간이 흘러 드디어 두 명의 청년은 기타를 꺼낸다. 관중들은 이제 곧 전설이 될 남자 빅토르 최의 노래에 감화되어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 준비를 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간다. 빅토르 최를 계속해서 비추고 있어야 할 카메라는 그 주변 사람들을 비추는 숏으로 분절되기 시작한다. 카메라는 단순히 그들의 리액션을 비추기 위해 분절되지 않는다. 마이크는 그의 노래에서 수정하고 싶은 부분을 수정하고, 그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어우러진다. 나는 이 바닷가의 시퀀스가 영화가 가지고 있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웅 한 명은 시대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의 인물들 사이에서 손잡는 연대의 과정 속에서 발견된다는 것 말이다. <레토>가 작동하는 방식은, 빅토르 최의 전기를 기대하고 있는 관객들을 좋은 의미로 무너뜨린다.
 
<레토>도 음악 영화이니, 사운드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레토>의 사운드는 빽빽한 밀도를 가지고 있다. 실상 음악 영화지만, 영화는 음악이라는 사운드 하나에 집중하지 않고 주변 소음들로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소음들은 인물들이 노래하는 중간에도 끼어들기도 한다. 음악들은 주변 소리들과 조응한다. 마치 그 시대의 모든 것을 잊지 않겠다는 듯이, 사물 소리, 대화 소리가 영화 전반에 들어찬다. 이렇듯 <레토>는 모두가 기대하던 그룹 ‘키노’의 사운드보다는 그 시대 청춘들의 사운드를 들려줌으로써, 다른 것들을 주목하게 만든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뮤지컬 시퀀스들은 어떠한가. 시퀀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 중에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도, 음정조차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 뮤지컬 속 주인공이 되어 노래를 부른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역할을 뮤지컬 시퀀스에서만큼은 넘겨주어야만 한다. 자신의 역할을 당연한 듯이 넘기는 주인공들처럼 우리는 연대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화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크린에 계속해서 침범해서 들어오려는 빛 번짐 현상(이것이 기술상의 문제인지, 내가 관람한 극장의 문제 인지는 모르겠으나)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오선지의 다섯 개의 줄처럼, 어떤 것은 인물에게 찌를 듯이 들어오는 빛의 갈래들은 끊임없이 화면 중앙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또한 감독의 의지 아닐까. 화면에 놓여있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그 옆을 봐달라는 일종의 애원은 아니었을까.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보헤미안 랩소디>(2018, 이하 랩소디)와의 비교는 필연적일 것이다. <레토>는 <랩소디>가 의도하는 것들을 정확하게 겨냥하는 안티테제이기 때문이다. <랩소디>가 머큐리의 목소리, 퀸의 음악, 스타디움의 함성소리가 가득한 영화라면, <레토>는 사람들의 목소리, 청춘들의 음악, 소극장의 조용한 박수소리로 영화를 메운다. <랩소디>가 불멸의 음악 영웅 프레디 머큐리를 무대로 소환해서 그들의 음악을 들려줄 때, <레토>는 ‘키노’의 최고 히트작 [혈액형]마저 배제한 채, 시대의 ‘소리’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쓸모없는 소음일 수도, 아직 피어나지 못한 채 죽어버린 습작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할 때 음악이 아닌 다른 것들로 기억하게 만들어주기에 더욱 풍성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랩소디>의 음악들은 분명히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지만, 그 감동의 파장은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맴돌다 극장 밖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레토>의 박수 소리는 극장 안의 관객들 서로에게 전해져 극장 밖으로 끄집어내야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그렇게 시대를 추모하고 있는 것만 같다. 열렬한 환호의 박수조차 치지 못하던, 상상으로만 반항을 할 수밖에 없는 시절을 이제야 기억해야 하는 까닭은, 러시아가 현재 겪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탈색되어버린 세계에서 <레토>가 작동하는 방식은 더없이 생생하고, 아름답다.

매거진의 이전글 박제된 기억, 유리된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