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국내에서 코로나 19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어릴 때 좋아했던 만화 '철인 28호'처럼 언론에서는 국내 코로나 감염 환자에게 '1호', '2호', … , 'N호'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그들의 동선을 앞 다투어 보도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만, 전 국민은 N호기에게 스치면 좀비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날마다 코로나 19로 사망한 인구가 몇 명인지 보도되었고 전 세계가 죽음의 공포에 움츠러들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기업들은 전면 재택근무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온라인 회의가 빠르게 활성화되었다.
나중에야 코로나 19도 일종의 감기처럼 취급하면서 확진되어도 별 감응이 없었지만, 초기를 떠올려보면 어마 무시했던 기억이 선명할 것이다. (사탄의) 인형 같은 그녀에 의한 분노로, 코로나 19에 의한 공포로 부들부들 떨면서 나는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둘째의 출산 예정일은 3월 중순이었다.
양가 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줄 수 없는 상황인 데다 인형 같은 그녀의 감정 폭력에 견디다 못해서 선택한 명분 있는 회피였다. 문제는 그때가 이직 후 첫 성과평가 기간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평가에 대한 기대치가 전혀 없긴 했지만, 실제로 직장 생활을 통틀어 처음으로 최악의 평가를 받아보니 기가 차긴 했다.
죽음의 공포에도 봄은 왔고 생명이 태어났다. (그런 의미에서 둘째는 희망둥이가 아니었을까.) 거리 두기로 인해 1주일간 아내는 산후조리원에서 둘째를, 나는 집에서 첫째를 돌봤다. 이게 무슨 난리인가, 정말로 지구의 종말이 오는가 싶었다.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첫째를 자극하지 않으려면 아빠가 둘째를 돌봐야 했다. 첫째 출산 때 이미 육아휴직을 해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둘째는 내가 젖만 못 물렸지 거의 내가 키우다시피 했다. 둘째가 순한 편이라 다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K기업 본부장인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자리가 났는데 이직에 관심이 있냐는 것이었다. 이게 웬 떡인가. 커리어의 정점을 찍을 수도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바로 지원 의사를 밝혔다.
임원 추천이라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면접 때 침만 질질 흘리지 않는다면 떨어질 수가 없는 기회였다. 그래도 나는 선배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면접을 준비했다. 좋아, 합격해서 인형 같은 그녀가 보란 듯이 화려하게 떠나 주겠어!
워낙 유명한 K기업이라 체계가 잘 잡혀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뭔가 면접 진행부터 삐거덕 거렸다. 인사담당자가 면접 장소를 잘못 안내하질 않나, 수준 낮은 면접관들이 이상한 압박 면접을 하질 않나 시종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선배의 얼굴을 생각해 끝까지 정중하게 인사하고 나왔지만, 면접을 잘 보지 못한 것 같았고, 합격한다 해도 즐겁게 다닐 수 있는 회사인가 싶었다. K기업 본부장 선배와 절친인 또 다른 선배 J가 있었는데 그가 팁을 주길 100% 합격하니까 아무 걱정 말고 출근 준비나 잘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발표 날이 지나도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렇다고 K기업 선배에게 묻자니 괜히 서로 부담일 것 같아 J 선배에게 상황을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J 선배는 계속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며칠 후 MD 말고 기획자도 필요하기에 기획 능력을 보기 위해 참고할만한 자료들을 제출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뭔가 일이 꼬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냥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선배를 생각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적당한 자료들만 몇 개 보냈다.
또 며칠 후 통보받은 결과는 ‘탈락’이었다. 세상에 ‘100%’, ‘따 놓은 당상’이라는 것은 없는 거구나. 그러면서 한편으로 떨어질 수 없는데 떨어진 결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주일이 오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사람을 의지하려는 인본주의를 썼기 때문에 하나님이 막으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K기업에 선배의 라인이 점점 늘고 있어서 정치 세력들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를 극구 반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합격이라도 했으면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했겠는가.
하루는 휴대폰 벨이 유독 사납게 울렸다. 인형 같은 그녀였다. 휴직 중인데 전화를? 그녀가 나의 성과 평가 결과를 피드백해주겠단다. 휴직 중이라 그녀 역시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됐는데 왜 굳이 전화를 한 걸까? 의아했지만, 그녀의 말에 귀 기울였다.
역시 팩트로 사람을 조지는 건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해명을 하자면 한도 끝도 없었으나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쓰린 말이긴 했지만, 틀린 말은 없었으니까.
또다시 돌아온 주일날 예배를 드리며 이직 후 그녀와의 갈등부터 심리 상담과 K기업 사건, 그녀의 피드백 사건까지 쭉 돌아보았다. 기도하는 가운데 내 힘으론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중요한 과제로, 반드시 한 번은 넘어야 할 훈련으로써 그녀를 만나게 하신 게 아닐까?
새로운 한 주가 돌아왔고 그 주에 스승의 날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메일을 썼다. 전 직장인 이랜드에서는 스승의 날에 그동안 고마웠던 상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메일을 보내는 문화가 있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쓰는 메일을 한 글자씩 적어나갔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OOO님의 피드백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구구절절 다 맞는 말씀이며 제가 많이 부족했음을 느끼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제게 큰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기까지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결국 메일을 보냈고 가능성이 0%였지만, 그녀의 답장을 며칠 기다려보기도 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이학기 반장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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