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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Sep 24. 2024

인생의 번지점프

'나'로 살아가는 빠들남

“너 재입사 안 할래? 요즘 회사에서 사람을 찾더라고. 너라면 바로 합격일 텐데.”     


영주로 내려가는 길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올해 초부터 프리랜서라고 포장해왔지만, 내가 백수나 다름없다는 걸 간파한 그가 달콤한 제안을 했다. 그는 첫 직장 입사 동기다. 15년 동안 한 직장에 뿌리내린 그는 현재 영주에서 사과 산지 MD로 일한다. 회사 전체 사과 매출이 그의 손에 달려있다.     


2009년에 처음 만난 우리가 사실 동기에서 친구로 거듭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5년 전 이직하고 아이 둘의 아빠가 되었을 때 그는 이미 아이 셋의 아빠였다. 서로 직장이 달라도 외벌이라는 처지가 우리 둘을 끈끈하게 묶어주었다. 통나무를 어깨에 메고 “전우야, 사랑한다!”를 외치는 훈련병들처럼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격려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하하, 네 직속 부하로 들어갈 수 있다면 생각해볼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돈은 못 벌어도 요즘 잠들 때마다 얼마나 행복한데.”     

“너 아직 배가 덜 고팠구나? 내 직속으로 들어온다는 건 나보고 그만두라는 말이네. 흐흐.”     


내가 망설임 없이(억대 연봉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5초 정도 망설이긴 했지만) 거절하자 그가 놀란 눈치였다. 오랜만에 그를 보러 가는 길에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니(누가 뽑아준대) 룰루랄라였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펼쳐진 풍경에 홍채가 초록빛으로 물들고 살짝 내린 창문 사이로 연둣빛 바람이 들어와 나를 휘감았다.(헐크로 변하는 거 아님)      


녹색 기쁨에 취한 채 그를 만났다. 2년 만이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다가오는 그의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을 보니 제법 베테랑 농부 같았다. 짜식, 사과 매출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먼.     


“엥? 너 얼굴이 왜 이렇게 좋아졌냐? 심지어 귀티가 난다고 해야 하나. 무슨 일이지?”     


내가 진짜 헐크로 변한 것도 아닌데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뜯어보았다. 내가 퇴사하고 마땅한 일도 없이 지내니 분명 얼굴이 썩어있을 거라고 예상했단다. 그래서 재입사 이야기도 꺼낸 건데 안색이 좋고 편안해 보여서 놀랐단다.(후후, 점을 빼긴 했지) 그는 나를 위로해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가 내게 위로받았단다. 그러면서 소고기도 사주고 숙소도 잡아주는 게 아닌가. 그는 일도 잘하고 재테크에도 능하다. 직장인이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에 가깝다. 하지만 그는 백수가 된 나를 부러워했다.     


“머리로는 안 죽는다는 거 알거든. 하지만 나는 직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어.”     

“마치 번지점프 같은 게 아닐까? 뛰어도 안 죽는 거 알지만 두려워서 못 뛰잖아. 그래도 너는 굳이 안 뛰어도 될 정도로 치열하게 잘 살아왔잖아. 나는 어쩌다가 떨어졌는데 이 출렁거림이 좋아서 사는 거고. 근데 겁나 재밌긴 해.”     


올해 마흔이 된 나는 죽을 때까지 글 쓰는 사람으로 살기로 결단했다. 전업 작가가 된다면 좋겠지만, 누군가가 대한민국에서 순수하게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200명도 안 된다고 했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5천만 인구 중에 0.0004%라니! 나이 마흔에 아이 둘 외벌이 가장이 비현실적인 확률에 인생을 걸 수는 없다. 따라서 나는 지금까지 직장인으로 글까지 쓰는 사람이었다면 앞으로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계속 글을 쓰기 위해 자유 직업인까지 되고자 한다.      


뜬금없이 스스로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무모한 짓일 수 있다는 거 인정한다. 주변에서도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다니 미쳤다, 직장 밖은 몹시 춥다, 경기가 최악이라 빨리 자리 잡아야 한다, 라며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소리가 불안, 초조, 염려, 근심, 걱정을 부추긴다. 하지만 어느 책에서 만난 문장이 두려움 5종 세트를 한 방에 잠재우며 깊은 안도감을 주었다.     


“당신에게 안정된 삶의 방식을 가지려고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당부하고 싶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시작할 때 이미 당신은 끝까지 그 일을 따라갈 깊은 안정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액수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평생 안정될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한문화, 16쪽


역사 속 위대한 인물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삶의 태도가 바로 꾸준함이다. 결국, 끝까지 버티는 자가 이기게 되어 있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일은 오래 지속할 수 없다. 내 안에 진정한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일을 할 때 샘솟는 깊은 기쁨만이 끝까지 버틸 수 있는 동력인 것이다.


아무나 타고난 천재가 될 수 없어도 누구나 노력의 천재는 될 수 있다. 진정한 기쁨이 있다면 말이다.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 사람은 이미 안정적인 삶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삶에서 안정성을 확보하려고 심히 발버둥 칠 필요가 없다. 운동하고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꿈꿔왔고 현재 꿈같은 삶을 누리기에 이보다 기쁠 수 없다.


그동안 사람들이 번지점프라는 걸 도대체 왜 하나 싶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뛰어내리기 전에는 혹시나 죽을까봐 지레 겁먹고 망상에 사로잡힌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은 마치 내가 삶을 놓아버리는 듯한 미친 행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부정한 줄이 쫙 펴지는 순간, 온몸을 꽉 죄어드는 압력은 쾌감으로 변하고 발끝에서부터 나를 단단히 붙들있는 삶의 악력이 느껴진다.  죽는다. 멋지게 추락하는 이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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