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경쟁심이 강했다. 운동과 게임, 그림과 글씨 등 다방면에 평균보다는 더 나은 수준에 이를 때까지 스스로 다그치곤 했다. 하지만 공부는 예외였다. 부모님의 세뇌로 스스로 머리가 좋다고 믿었기에 공부는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서울대라고 못 갈쏘냐 큰소리쳤다. (부모는 자식에게 머리 좋다는 말은 안 하는 게 좋다.)
6살짜리 아들은 나를 쏙 빼닮았다. 뭘 하든 본인이 만족하는 수준이 되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게임을 하다가도 아빠나 엄마한테 지면 아들의 두 눈에는 분노의 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히곤 했다. ‘마리오 카트’라는 레이싱 게임을 막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한 바퀴를 접어주고도 아들을 울리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요즘은 사력을 다해도 아들에게 번번이 진다. 내가 울어야 할 판이다. (아빠들은 게임에 진심이다. 아들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며 아내는 아들 둘을 키운다며 한숨 쉰다.)
“아들아, 1등은 중요하지 않아. 최선을 다했다면 지더라도 기쁘게 상대를 축하해 줄 수 있는 거야.”
아무리 좋은 말로 타일러도 아들은 순위에 집착한다. 아들에게도 이기려고 기를 쓰는 아빠를 닮았는데 어쩌겠는가. 아들은 어느 날부터 유치원에서 배운 걸 집에 와서복습하더니 어느새 한글을 깨우쳤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와는 다르게 공부 욕심까지 있는 아들이 대견스럽다. 그림도 예외는 아니다. 처음 그려보는상어 그림이 계속 마음에 들지 않자 아들은 분노의 드로잉으로 애꿎은 종이에 화풀이를 했다. 며칠을 그렇게 성질을 내더니만, 어느 날 매끈한 상어 그림을 들고 웃으며 내게 오는 것이 아닌가. 그 후로 아들은 그림에 취미가 붙었다.
잘하려는 욕심을 어떻게 하면 좋은 방향으로 발산할 수 있을까? 미술을 전공한 친구에게 아들이 스트레스받지 않고 즐겁게 그림을 그릴 방법이 있을지 물었다. 매달 테마를 정해서 열두 달 치를 모아 달력을 만들어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나는 당장 스케치북을 사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달력 만들기에 착수했다. 또 아들이 매달 그림 달력을 완성할 때마다 전시회도 열어주기로 했다.
아들에게 화백이라는 호칭을 부여하자 신바람이 난 아들은 스스로 테마를 정하더니 춤추듯 작품을 그려나갔다. 우리 집 명당인 식탁 바로 옆 벽면에 그림 달력을 전시해놓고 매달 꼬마 화백을 모셔서 작품 설명을 들었다. 전시회를 열 때마다 영상에 담아 SNS에 올렸는데 다음 전시회를 기다리는 소소한 팬덤이 생겨났다. 아들의 자존감이 날개를 달고 하늘로 솟구치는 게 눈에 보였다. 화백은 현재 1월부터 5월까지 총 다섯 개의 작품을 완성했다. (※ 저자 주: 6월에 썼던 글을 재구성했기에 시점의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현시점으로 아들은 8월까지 총 여덟 개의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1월에는 ‘흥미로운 날’이란 작품을 그렸는데 화백은 겨울에 호랑나비와 꽃을 볼 수 없기에 봄을 미리 그렸고 이 자체가 흥미로워 작품명을 짓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호랑나비의 기하학적인 무늬와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6살 화백의 예술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쯤 되면 나를 아들 바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2월 작품 ‘바닷속 대왕’에서는 화백이 애정하는 상어에게 대왕을 상징하는 왕관을 씌워주었다. 작품을 설명하는 태도가 제법진지하면서도 자연스러워졌다. 3월에는 중국으로 돌아갈 판다 ‘푸바오’를 생각하며 ‘행복한 동물원’이란 작품을 그렸다고 했다. 동물원에 기린, 얼룩말, 사자가 다 함께 평화롭게 사는 모습이 생경했지만, 분명 행복해 보였다. 전시회 시작과 동시에 코믹한 춤을 추며 등장한 화백으로 인해 온 가족이 빵 터지고 말았다.
4월 작품 ‘행복한 하루’는 따스한 봄이 반갑고 새하얀벚꽃에설레는 마음을 담아 그렸다고 했다. 이제는 아들이 작품 설명과 함께 퍼포먼스에도 신경 쓰는 '꼬마 화백 유튜버'로 보였다. 5월에는 날씨가 좋아서 아빠와 함께 낚시를 하고파 ‘선강이랑 아빠 낚시대왕♡’이란 작품이 탄생했다고 밝혔다. 덥다면서도 화백으로서 격식을 갖추기 위해 보온 조끼를 걸친 아들은 아빠와의 낚시 대결을 예고하며 비장한 눈빛을 번득였다.
화백의 진심이 담긴 5월 작품 덕분에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5월에 가두리 양식장 낚시를 다녀왔다. 그동안 낚시 게임으로 괴물 아귀, 대왕오징어는 물론 고래상어까지도 잡아본 아들은 승부욕을 불태웠다. 오늘의 낚시왕은 자기가 될 거라며 잔뜩 들떠있는 아들에게 나는 실망하지 않도록 철저히 사전 교육을 했다.
“선강아, 실제 낚시는 게임이랑 많이 달라. 빨리 잡히지도 않고 쉽게 잡히지도 않아. 어쩌면 한 마리도 못 잡을 수 있어.”
하지만 기우였다. 꼬마 강태공은 참돔을 무려 세 마리나 낚았다.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더 놀라운 건 내가 한 마리를 잡는 바람에 5월 그림대로 3:1의 조과가 나왔다는 사실! 소오오오름! 무한 체력의 아들조차도 대자로 뻗을 정도로 고된 하루였지만, 조과를 떠올리면 언제든 다시 낚시터로 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나는 한 마리이긴 했지만, 귀하디귀한 돌돔을 낚았다. 이 또한 말도 안 되는 현실. 우리 집 낚시왕은 아들이, 낚시터 조과왕은 내가 차지했다. 낚시터 관계자 왈, 횟집에서 먹으면 돌돔은 kg당 20만 원이란다. 나아아이쓰! 생초보라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도 모르고 맨몸으로 가서 낚싯대만 빌렸는데 근처에 있던 다른 일행 덕분에 뜰채, 어망, 멀티플라이어는 꼭 챙겨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돌돔은커녕 참돔 한 마리도 건져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네 마리를 잡을 동안 베테랑 같았던 그들은 단 한 마리도 낚지 못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준비해간 음식을 그들에게 나눠주면서도 이게 실화인가 싶었다.
낚싯대를 처음 잡아보는 아들이 진짜 낚시왕이 될 줄이야! 아들을 얕봐서 미안했다. 역시 인생이란 내 수준에서 멋대로 앞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분명 순수한 아이의 자연에 가까운 손길이 물고기를 홀렸던 게 아닐까? 사실 내가 돌돔을 잡았던 것도, 아니 돌돔이 나를 찾아왔던 것도 앞서 세 마리를 잡은 아들의 낚시법을 유심히 관찰한 덕분이었다. 낚시터 관계자가 처음엔 꼬마 낚시왕에게만 관심을 보이다가 돌돔을 잡자 순식간에 나를 VIP로 추켜세웠다. 게다가 3만 원에 판매하는 낚싯줄도 돌돔 이벤트 사은품으로 주는 것이 아닌가. 화려한 장비를 갖춘 다른 일행들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아들은 펄쩍 뛰며 기뻐했다.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는데 초보는 탓할 것조차 없으니 마냥 즐거울 뿐이다. 아이의 찐 웃음을 보면 나는 우주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된다. 우리는 잡은 물고기를 모두 회 떠서 양손 무겁게 처가댁으로 향했다.한상 가득한 회와 함께 찐 웃음이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아이가 그린 현실 같은 그림이 가족 모두에게 그림 같은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