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를 밝히지 않으려고 '이학기'라는 필명을 썼는데 조성기 작가님께서 이미 축사 때 제 신상을 공개하셔서 당황했습니다. 행여나 명성에 누가 될까 봐 할아버지 정체는 더더욱 안 밝히는 편인데 제가 김춘수 시인의 장손이라는 사실도 공표하시는 바람에 숨길 수가 없게 되었네요.
이 자리가 제겐 3가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세움북스와의 인연인데요. 혹시 세움북스의 첫 책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거꾸로 읽는 산상수훈>이라는 책이에요. 문정식 목사님께서 쓰셨는데 제가 섬기는 열린교회 담임 목사님이세요. 이 사실을 오늘 시상식에 오는 길에 세움북스 강인구 대표님 인터뷰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세움북스 시상식에 간다고 말씀드리니 목사님께서 저보다 더 기뻐하시더라고요.
그다음으로는 제가 태어나 처음 쓴 소설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과, 공대, 군대, 유통으로 커리어를 이어왔고 글 쓰는 것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왔어요. 딱 보기에도 체대 출신 같지 않으세요? 게다가 저는 실용적인 사람이라 소설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런 제게 하나님은 '글 쓰는 삶'이라는 소명을 주시고 뒤늦게 책을 읽게 하셨는데 소설이야말로 인간의 진솔한 내면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도전을 해보고 싶었고 제 부족함을 알기에 별 기대 없이 필명으로 소설을 썼는데 덜컥 상을 받게 되어 얼떨떨합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이신 조성기 작가님과의 인연인데요. 올해 제가 상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몇 달 전에 조성기 작가님께서 <아버지의 광시곡> 북토크 때 제 독후감을 대상으로 뽑아주셨거든요. 초등학생 때 교내 글짓기 상을 탄 이후로 처음 받아보는 상이라 감개무량했는데 세움북스 신춘문예에서도 상을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심사위원이 조성기 작가님이라는 사실을, 작가님은 이학기라는 필자가 저라는 사실을 오늘 시상식에 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출판계가 연일 단군이래 최악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출판은 말할 것도 없겠죠. 저는 세움북스 강인구 대표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걷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 중에는 이제 유일한 신춘문예를 매해 개최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세움북스의 정신을 세우는 일이라 저 역시 세움북스를 위해 기도하며 응원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상을 주신 세움북스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