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퇴사 후 오랜 스승을 찾아갔다. 은사님이 추천해 준 숙소에 머문 덕분에 따듯한 실내에서 잊을 수 없는 겨울 해돋이를 관람할 수 있었다.
붉은 공 하나가 수평선 위로 빼꼼 고개를 내밀자 짙푸른 바다와 맞닿은 말간 하늘이 좌우로 나란히 불타올랐다. 잠시 후 붉은 공의 광선은 레드 카펫을 펼쳐내며 바다 위로 붉은 가르마를 만들어냈다. T자 모양의 붉은빛은 하늘과 바다를 갈랐고, 동시에 바다를 반으로 나누었다. 붉은 공은 조금씩 떠오르면서 점차 몸집이 커지더니 따스한 노란빛으로 물들어갔다. 하늘에도, 바다에도 황금 비단 카펫이 깔렸다.
평상시 나는 말수가 별로 없는 편인데 은사님을 만나자 퇴사를 결심한 이유, 그 과정에서 정리된 삶의 방향성, 소명을 발견한 이후의 변화 등등 묵혀왔던 이야기가 파도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내와 충분히 상의하고 퇴사를 결정했지만, 마흔을 앞둔, 아이 둘의 외벌이 가장이 뾰족한 대책도 없이 뜻을 세운다는 게 쉬웠다면 거짓말이다. 마음의 불안을 솔직하게 은사님에게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저를 쭉 지켜보셨을 때, 앞으로 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세요?"
나는 어떤 대답이 나올지 기대하며 은사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코칭을 공부하면 좋겠어요. 정말 잘할 것 같아요."
은사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지체하지 않고 답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코칭'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은사님의 입술이 슬로 모션처럼 보였다. 해돋이 때 봤던 붉은 공처럼 동그래지더니 좌우로 불타오르는 붉은빛처럼 양옆으로 찢어졌다. 코칭이라...!
올해 3월, 코칭 공부를 시작했다. 먼저 국제크리스천코치협회(ICCF)에서 7주간 진행하는 '크리스천 코칭 기본 과정' 20시간을 수료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코칭이란 '경청을 통해 존재를 인식하고, 그 존재가 올바른 목표로 나아가도록 지지하고 동행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나를 지지해 주는 안전한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삶의 큰 축복임을 경험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보석 같은 동기 코치들과 매주 온라인에서 만나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며 연대했다. 영적으로 침체될 때마다 공동체 안에서 큰 힘을 얻었고 그 힘으로 감사하게 또 한 주를 살아갈 수 있었다. 크리스천 코치는 '감사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일반 코치와 구분된다. 교육 과정 동안 감사 일기를 쓰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감사에 둔감하게 살아왔는지인식할 수 있었다. 코치가 먼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감사함으로 무장할 때 크리스천 코칭이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체험했다.
코칭은 완전히 새로운 언어였다. 크리스천 코칭을 배운 후 내겐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가 조언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 잠시 멈칫하는 습관이 생겼다. 좋은 솔루션을 주는 것보다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이 상대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청은 단순히 잘 들어주는 수동적인 기술이 아니라 상대가 더 잘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기술임을 배웠다.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라는 경청의 질문으로 상대의 존재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또한, 지이 고객의 말이 어쩌면 나에게 하는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경청하라는 지도 교수님의가르침에 울림이 있었다.
코칭은 정규 교육 과정에서 의무화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대한민국은 얼마나 조언하길 좋아하는 민족의 집합체인지 코칭을 배우며 새삼 깨달았다. 특히, 가족 간에는 거의 폭력에 가까운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르치려 들지 않고 궁금해하는 것, 그래서 질문하고 경청하는 것이 코칭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시대에 코칭이야말로 인간성을 회복하고 연대할 수 있는 따듯한 통로가아닐까.
크리스천 코칭 과정 수료증, ICCF, 2024
은사님의 추천으로 배우기 시작한 코칭을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DB김준기문화재단과 기아대책이 연합해 시설 보호 중학교 3학년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학생을 선발했다. 혜택이 큰 만큼 꽤나 까다로운 면접 과정을 거쳐 전국에서 총 40명의 청소년이 뽑혔다. 이 프로젝트의PM이 바로 은사님이었기에 나는 열 명의 코치 중 한 명으로 합류하여 네 명의 중3 남학생들로 구성된 한 조을 맡아 코칭을진행했다.
매월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으로 만나 감정과 욕구, 진로 탐색, 강점 파악, 성교육 등 다양한 주제로 아이들과 소통하며 함께 미래를 그려나갔고, 지난 11월 말에 대학 탐방을 끝으로 공식적인 코칭을 마쳤다. 처음엔 '중2보다는 덜하겠지만, 그래도 무서운 중3 남학생들을? 게다가 처음 만나보는 시설 보호 중인 아이들을?'이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나 첫 만남 때부터 나의 편견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시설 아이들이라고 하니 어둡고 불쌍한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는데 발대식 때 만난 아이들은 세상 때깔 곱고 부티까지 나는 밝은 학생들이었다. 그동안 나는 빈곤 포르노에 세뇌되어 있었던 걸까.
내가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았을 때 내 안에는 중3 짜리 아이가 들어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중3 때 벌어진 부모님의 이혼은 내게 불안과 상처가 고스란히 남겼다. 내 안에 자리한 '중3 짜리 나'와 코칭으로 만난 중3 아이들이 좋은 친구가 될 수도있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코칭 때 아이들에게 나의 중3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엔 내가 결손가정에서 자란 것조차 이 아이들 앞에선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하니, 나의 어려웠던 시절을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났다.
와우! 아이들이 생각보다 집중도 잘하고 흥미로워하는 것 같았다. '중3 짜리 나'가 쭈뼛쭈뼛거리다 용기를 내 손을 내밀자 중3 아이들이 그 손을 따스히 잡아주었다. 중3 시절의 나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진지하게 삶을 대하는 중3 친구들이 내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저마다 사정이 있고 사연도 제각각이지만, 생명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한 존재는 곧 우주와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100% 어른들의 잘못이지만, 그것이 이 아이들의 삶까지 잘못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코칭을 받은 쪽은 오히려 나였다.
크리스천 코칭 과정이 끝난 이후에도 동기들과 상호 코칭을 하며 연결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동기가 한국코치협회 코치 인증 자격인 KAC에 도전할 건데 같이 해보지 않겠냐며 제안을 해왔다. (쉽게 설명하면, KAC는 고객에게 유료 코칭이 가능한 라이선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혼자서는 막막했는데 함께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동기가 지도 교수님에게 요청해 KAC 시험을 준비했다. 서로 코칭하는 내용을 들으며 피드백하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 긴장도 되었지만, 이때 배우고 느낀 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각자 한 단계씩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지도 교수님 없이도 동기들끼리 자발적으로 실기 연습을 여러 차례 했는데 서로에게 놀랄 정도로 제법 코치다워지는 좋은 공부가 되었다.
12월 2일 합격자 발표날, 지도 교수님과 동기 세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결과는 세 명 모두 합격이었다. 자축 파티를 열어 그동안의수고와 노력을 서로 격려하며 다함께 감사와 기쁨을 나누었다.
흉흉한 시국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코치라는 존재는 코칭을 통해 사람들이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애써야 하지 않을까? 자격증 하나 추가한 걸로 머물지 말고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코치가 되는 것,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