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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 하든,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지난해에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단편 소설을 썼다. 내밀한 이야기를 에세이로 담기엔 한계가 있었다. 논픽션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파편적 사실만이 존재할 뿐.


픽션이야말로 사실을 담기에 제한이 없는 그릇이었다. 그제야 나는 소설의 진실성에 매료되었다. 허구를 배척하며 픽션과는 담쌓았던 공대 출신의 파격이었다.


소설을 써서 글쟁이 지인에게 보여주었다. 첫사랑을 향한 어설픈 진심처럼, 첫 소설은 꾹꾹 눌러썼어도 어색함 투성이었으리라. 혹평을 각오하며 기다렸는데 지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평가할 가치조차 없는 글이라는 무언의 평가를 받은 느낌이었다.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차라리 쓴소리라도 들었으면 그토록 헛헛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한 편의 원고는 남았다. 애쓴 노력이 아까워 응모라도 해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이니 참가에 의의를 두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한 달쯤 지났을까. 불쑥 문자가 한 통 왔다.


"2024 제4회 세움북스 신춘문예에서 귀하의 작품, <들보 속 가시밭길>이 '가작'으로 선정되셨습니다."


이 소설 같은 문자는 뭐지? 보이스피싱인가? 하지만 진짜였다. 마음을 내려놓았기에 충격과 감격이 함께 밀려왔다.


그때 알게 되었다. 글은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을. 실력도 중요하지만, 평가자와의 대진운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물론 개인의 특수성이 중요하다고 인류의 보편성을 배제할 순 없다. 언론사 신춘문예에 당선되려면 말이다.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글로 재미와 의미를 다 잡고,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면 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김태희 같은 글이라야 딱 한 편 뽑는 언론사 신춘문예 왕좌에 오른다는 말이다.


그 말인즉슨, 내가 당선될 확률은 '0'에 가깝다는 뜻이다. 소규모 기독교 출판사 신춘문예와는 아예 덩치가 다른 언론사 신춘문예에 중편소설로는 처음 도전한다. 함석헌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별이 주는 것은 방향인데, 확실한 방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무한히 높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도 인생에 방향을 주는 것뿐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될수록 높고 멀어야 한다."


나에게 별은 글이다. 별을 바라보며 나는 계속 걸어갈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나는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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