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절대 안 하겠다던 놈이 장가간 날

[결혼은 절대 안 하겠다던 놈이 장가간 날]


2003년 2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잊을 수 없다. 생경함과 지루함이 교차되는 시간이 흐르던 중, 눈이 번쩍 뜨였다. 금빛 테를 두른 푸른빛 요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튀어나왔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군무를 추는 게 아닌가.


시선은 자연스레 제일 예쁜 누나에게로 향했다. 순간 시력 2.0이 되어 누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시뻘건 망토를 두른 한 남자가 등장했다. 나는 그에게 시선을 완전히 빼앗겼다. 나는 결심했다. 응원단에 들어가야겠다고.


대학 시절, 친구들이 '너는 응원대학 응원학과에 다니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수학이 좋아서 공대에 갔지만, 공업 수학을 제외하곤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A+를 받은 과목은 딱 세 개, 공업 수학과 탁구, 군사학이 전부였다. (군사학은 ROTC라서 필수 과목이었다는...)


학교의 가장 큰 행사인 응원제를 앞두고는 응원단실에서 먹고 자기도 했으니, 나는 공대생이라기보다는 응원생(?)에 가까웠다. 그런 놈이 여럿 있었으니 그중 하나가 오늘 결혼했다.



동고동락을 함께 한 동기 명훈이. 그놈은 죽어도 결혼은 안 한다며 일찌감치 비혼주의자를 자처했다. 연애를 해도 상대에게 결혼은 안 한다는 전제조건을 꼭 달았다. 그러니 실제로 동기들 중 결혼이 가장 늦을 수밖에.


최근에 어느 가수가 비혼을 선언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그런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좋은 짝을 만나는 순간, 비혼의 신념 따윈 사랑의 태양 앞에 사르르 녹아내릴 테니까. 때려죽여도 혼자 살겠다던 놈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듯이 신부를 바라보는 눈빛을 오늘 내가 두 눈으로 목격했다.


또 다른 친구 중에 절대로 자식은 낳지 않겠다던 놈이 있었다. 그놈은 최근에 딸을 낳더니 딸바보, 아니 딸등신 천치가 되어 아주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신념이란 때론 무서운 철벽 같지만, 사랑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선 산산이 부서지는 유리벽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 가장 무서운 게 아닐까. 동기 놈이 어떤 신념을 가졌든 반려자와 무섭도록 사랑하며 아이도 낳고, 늦은 만큼 더 많이 행복하길 바란다. 일상에서 벌어질 자잘한 전쟁 보다, 핵보다 더 위대한 무기를 가졌다고 오늘 많은 이 앞에서 선포하지 않았는가.


명훈아, 축하한다. 잘 살아라!


#결혼식 #비마응원단 #신념과사랑 #축하해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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