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될 차는 연락부터 다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듯, 판매될 차는 연락부터 다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듯, 임자를 만날 중고차는 첫 연락부터 그 결이 다르다. 지난달, 경매 사이트에 주행거리 5,000km도 채 되지 않은 25년식 신차급 차량 두 대가 올라왔다. 법인 소유 이력과 상태로 보아 시승차였을 가능성이 컸다. 모델은 출시 직후부터 뜨거운 감자였던 '르노 그랑 콜레오스 하이브리드 아이코닉'. 망설임 없이 데이터 기반의 공격적인 입찰가를 적어 냈고, 운 좋게 두 대 모두 낙찰받았다.


유명 정비 유튜버가 현대·기아차 대비 가성비 면에서 극찬했던 그랑 콜레오스. 직접 대구에서 탁송 받아 시운전을 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현재 내가 타는 토레스도 훌륭한 차지만, 토레스가 든든한 여객선이라면 그랑 콜레오스는 부드러운 크루즈를 탄 느낌이었다. 오죽하면 두 대 중 한 대는 내가 직접 매입해서 타고 싶다는 사심이 생길 정도였다.


결국 한 대만 먼저 광고를 올렸다. "안 팔리면 내가 탄다"는 배수진의 전략으로 매일 시세와 조회수를 분석했다. 채팅 문의가 쏟아졌지만, 대부분 상세 설명에 이미 적어둔 내용을 되묻는 '간 보기'식 연락이었다. 정성껏 답하는 나를 보며 사수는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진짜 살 사람은 첫 연락부터 달라요. 어디로, 언제 가면 되는지부터 묻거든요."


어느 토요일, 한 여성 고객의 연락이 왔다. 마침 양평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던 중이라 난감했다. 사수의 조언대로 "마음에 들면 계약할 의사가 있는지"를 먼저 여쭙고, 내 상황을 솔직히 설명한 뒤 비대면 안내를 진행했다. 하지만 남편분과 함께 차를 보고 온 고객의 반응은 차가웠다. 신차급 차량임에도 미세한 돌콕과 썬팅지, 그 외에도 몇 가지를 지적하며 가격 할인을 요구했다.


현재 중고차 시장은 중동 전쟁의 여파로 비수기나 다름없다. 금융 이자를 생각하면 마지노선까지 내린 가격이었지만, 고객은 비대면 계약의 찜찜함을 이유로 발길을 돌렸다. 일주일 내내 '마진을 포기해서라도 그때 팔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마음이 급해져 가격을 더 낮춰보기도 했다. 하지만 찔러보는 문의만 늘어갈 뿐이었다. 매입 딜러의 고충을 뼈저리게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문득 오기가 생겼다. 내가 타고 싶을 만큼 좋은 차인데, 왜 스스로 가치를 깎아먹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감하게 가격을 적정 시세로 원복시켰다. 과거 패션 MD 시절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한 브랜드가 정장을 파격적인 저가인 10만 원대에 출시했다가 참패한 적이 있었다. 고객의 심리적 가치 하한선을 고려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후 가격을 20만 원대로 현실화하자 오히려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무조건 싸다고 팔리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가치'다.


가격을 올리고 한 주가 지난 어느 아침,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오늘 차 볼 수 있나요? 근데 이거 왜 이렇게 싸요? 허위 매물 아니죠?"


목소리만으로도 연륜이 느껴지는 고객이었다. 가격을 올렸는데도 싸다고 하니, 드디어 차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이 앞섰다. 고객은 노원구에서 수원까지 곧장 달려왔다. 20만 km 넘게 SM6를 타온 르노의 충성 고객이었다. 여러 매물을 비교해 본 결과, 풀옵션에 낮은 키로수를 가진 내 차가 가장 경쟁력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너무 싸서 허위 매물일까 봐' 걱정했던 것이었다.


시운전을 하며 이 차를 매입하게 된 히스토리와 나 역시 탐냈던 차라는 진심을 전했다. 고객은 연신 감탄하며 내고 한마디 없이 기분 좋게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사수가 말한 '떡잎부터 다른 고객'과의 쿨거래였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단지 내에서 가장 맛있는 제육볶음을 대접하며 출고를 마쳤다.


차량을 인도한 후에도 고객은 만족스럽다는 안부 전화를 주신다. 내가 타고 싶은 차를 팔 때 고객의 만족도도 극대화된다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했다. 가슴 한구석이 뿌듯함으로 차오른다. 이제 남은 한 대의 그랑 콜레오스도 좋은 주인을 찾아줄 차례다.


고객님, 그랑 콜레오스 출고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디 안전하게 타시다가, 훗날 이 차를 떠나보내실 때 다시 저를 찾아주세요. 저와도 깊은 인연이 닿았던 차니까요. 귀한 인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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