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운(Luck)은 무엇을 결정하는가?

시장통 오락실과 물리학이 증명하는 잔인하고도 당연한 진실

by 카피츄

"존나 계산적이네." "너, 너무 계산적인 거 아냐?"
살면서 대여섯 번쯤 들어본 말이다. 미리 인정하자면, 나는 꽤 계산적인 사람이 맞다. MBTI의 ENTJ 성향답게, 여행을 가거나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면 절차적인 완성도에 상당한 에너지를 쏟는다. 시간대별 동선, 예산, 준비물을 엑셀표처럼 꼼꼼히 세팅해야 직성이 풀린다. 대형 마트에 생필품을 사러 갈 때도 미리 메모한 것만 정확히 카트에 담고 빠져나온다. 가끔 이런 성향 탓에 타인과 가벼운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나를 향해 "계산적이다"라고 쏘아붙인 사람들은 과연 계산적이지 않았을까? 재미있게도 나를 그렇게 평가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이익 앞에서 훨씬 더 예민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들이었다. 반대로 나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타인에게 "넌 너무 계산적이야"라고 비난해 본 적이 없다. 애초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계산(측정)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자신의 계산은 '합리'로 포장하면서 타인의 계산은 '정 없는 짓'으로 깎아내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무례한 계산이다.

그렇다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셈이 빠른 사람이었을까? 내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 보면, 나는 원래 물욕이 큰 사람은 아니었다. 남들 다 한다는 명품 옷에 관심도 없었고, 겉치레를 위해 과소비를 한 적도 손에 꼽는다. 하지만 유독 '돈이 걸린 숫자'에는 동물적으로 빨랐다. 그 이유는 철저히 후천적인 환경, 즉 '운'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시장 한가운데 있었다. 대문을 나서면 생닭집과 건어물집이 있었고, 조금만 걸어가면 야채와 과일 가게, 건강식품점이 늘어서 있었다. 그 길 건너편에는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분식집이 있었다. 지금의 신정네거리역 안쪽 골목, 신용카드 따위는 없던 100% 현금 박치기의 시절. 그 치열한 시장통 한복판에서 자라는 어린아이가 셈에 밝아지는 것은 생물학적 필연이었다.
여기에 나의 오락실 사랑이 불을 지폈다. 보글보글, 신야구, 원더보이, 스노우브라더스, 이소룡, 스트리트파이터까지. 오락기 화면의 랭킹 보드에 내 영문 이니셜을 새겨 넣으려면 판을 읽는 눈과 숫자를 꿰뚫는 감각이 필요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하루에 만 원씩 골목에 뿌리고 다니며 '동네 대장' 노릇을 했던 흑역사도 결국 그 시장통의 돈의 흐름과 궤를 같이했다.
나의 천성도 일부 있었겠지만, 결국 내 계산적인 능력의 8할은 신정동 시장통이라는 '환경'이 길러낸 것이다. 훗날 컴퓨터를 다루고 엑셀(Excel)이라는 직관적인 프로그램을 통달하면서 이 능력에 강력한 터보 엔진이 달렸을 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서늘한 통찰 하나가 뒤통수를 때렸다. "잠깐, 이 모든 게 결국 완전한 '운(Luck)'이잖아?"
지금의 부모를 만나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 남자로 태어난 것,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것. 신월동에서 태어나 신정동 시장통에서 자란 것. 이 모든 거대한 전제 조건 중에서 '나의 의지'로 결정한 것은 단 1%도 없다.
만약 운명의 주사위가 조금 다르게 굴러가 내가 이재용의 아들로 태어났거나, 아프리카 사바나의 부족원으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나의 이 '계산적인 성향'은 수조 원의 M&A를 성사시키는 데 쓰이거나, 사자의 동선을 예측해 창을 던지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발현되었을 것이다. 아니, 아예 발현조차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의 의지로 삶을 개척한다고 믿지만, 뇌과학과 진화생물학, 그리고 거시세계를 다루는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자유의지란 꽤나 머쓱해진다. 물리학의 엔트로피나 유체역학이 증명하듯, 우주의 모든 물질은 무작위적인 확률과 환경적 변수에 의해 그 궤적이 결정된다. 인간이라는 유기체도 예외가 아니다. 유년기부터 소년기까지 우리의 뇌 구조와 성향을 세팅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우리가 결코 선택한 적 없는 '초기 환경(운)'이다. 내 삶을 이루는 95%의 기본값이 철저히 우주적 확률에 의한 '운'으로 세팅된 것이다.


내가 소름 끼치도록 무서움을 느낀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렇게 명백한 과학적 지표와 팩트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이 거대한 '운의 지분'을 철저하게 기만하고 무시한다.
우리가 받은 그 '후진 교육'과 사회 시스템은 출발선이 전부 다르다는 사실(운)을 깔아뭉갠 채, 똑같은 객관식 채점표를 들이민다. 환경이 만들어낸 개인의 어쩔 수 없는 결핍이나 특성을 오직 '그 사람의 노력이 부족해서', '성격이 파탄 나서'라며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반대로 95%의 엄청난 운을 타고나 쉽게 성공한 자들은,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100% 노력인 양 오만하게 굴며 타인을 함부로 잣대질한다.


삶에서 운은 무엇을 결정하는가? 솔직히 말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리가 이 차갑고 잔인한 팩트를 쿨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세상의 머슥한 잣대로부터 홀가분해질 수 있다. 내가 이룬 성취가 온전한 내 능력만이 아님을 알기에 타인에게 겸손할 수 있고, 내가 겪는 실패 또한 온전한 내 잘못만이 아님을 알기에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을 수 있다.
타인을 향해 "너는 왜 그 모양이냐", "왜 그렇게 계산적이냐"며 함부로 침을 튀기기 전에, 우주가 던진 확률의 주사위가 내게 얼마나 관대했는지를 먼저 계산해 보는 것. 그것이 확률론의 지배를 받는 나약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지성적이고 위트 있는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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