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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 Oct 23. 2023

Only 60percent

누군가 나의 삶을 엿보고 있다면 변명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이래 봬도 전 완벽주의자입니다. 다만 모든 것이 완벽해질 가능성이 없다면 차라리 하지 않고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먼지 한 톨 없이 방청소를 할 수 없다면 차라리 방청소를 하지 않겠다.

맛이 없는 파스타를 만들 바에는 차라리 파스타를 만들지 않겠다.

아무리 살을 빼도 저 반짝이는 연예인처럼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살을 빼지 않겠다.  


는 식의 생각인데…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사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는 누군가는 (대부분 엄마…) 마치 내가 더러운 것도 잘 견디고, 요리도 싫어하며, 살을 빼지도 않는 나태주의에 빠진 인간처럼 볼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이 생각하는 진정한 완벽주의란 그 허들이 너무 높은 나머지 건들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 결코 나태하기 때문이 아님을 이 글을 빌어 변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우리 엄마가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삶이란 것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완벽해 보이는 저 사람에게도 시련과 고통은 존재하고 나에게는 보여주지 않을 뿐이라는 것도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SNS가 발달하면서부터 삶은 ‘완벽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한층 더 나아가 의도된 불행을 겪고 보여주기식 극복이 전시되는 일도 왕왕 있다. 그렇게 느끼는 이 시점에서 나는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솔직히 말하자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내가 극복한 방법을 소개하며 나는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혹시 저만 이런가요? 아니요, 저도 그래요.’ 정도의 메시지를 담고자 한다.  그 고통을 겪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님을 알도록, 인간의 고통은 꽤 거기서 거기이며 다양하지도 않다. 까놓고 펼쳐보면 몇 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도 있을뿐더러, 또한 인간은 보편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면 내 고통은 특별히 유난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나를 드라마퀸에서 ‘적당히 겉보기에 잘 살아가는 듯한 조연 1’로 바꾸어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많이 벗어났다. 물론 요즘도 종종 주인공병에 걸려서 허덕일 때가 있지만 이런 생각의 알고리즘들을 만들어두면 빠르게 격정적인 드라마의 진행에서 잠깐 stop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잠깐 멈추고 보면 세상은 모두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살아가라고 하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한테만 주인공이지 우주의 일부분에서는 조연의 친구의 이웃사촌 정도 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한국적인 나이로 말하자면 올해 계란 한 판을 채웠다. 그리고 햇수로 4년째 공황장애를 앓고 있으며, 부수적인 여러 질병들을 두루두루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서 기능하는 많은 부분들의 일부를 고장 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한다. 그걸 퍼센티지로 환산해 보자면(오로지 느낌적인 느낌으로) 대략 60 퍼센티지 정도만 기능하고 있는 기분이다. 기능적 제약이 생긴 인간의 몸이란 가족들의 걱정과 본인의 자괴감으로 점철되어 도태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케이크 한 판에 몇 조각이 없다고 케이크가 아닌 것은 아니지 않나? 초도 꽂을 수 있고, 맛에도 변함이 없다. 그저 몇 조각 채워지지 않았을 뿐이다.

계란 한 판에 몇 알이 비었다고 계란 그 본질이 달라지는 일은 없다.

방전된 배터리를 채울 때 나는 60 퍼센티지만 채워도 충전선을 뽑아버린다.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생각하면서.


나태주의에 가까웠던 완벽주의를 벗어나고자 하는 첫 번째 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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