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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시카 Sep 16. 2024

독(毒)한 식물들, 병 주고 약 준다.

                         - 미국자리공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경험이었습니다.

남편은 나물과 생선을 좋아합니다. 매끼 빠지면 안 되는 반찬이지요. 그러자니 계절 따라 나물 반찬을 만드는 것이 큰 과제처럼 느껴집니다. 긴 겨울 내내 묵나물을 먹다가 봄이 오니 슈퍼마켓의 채소칸에는 싱그러운 봄나물들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그중에서도 유난히 싱그러워 보이고 씹으면 아삭거릴 것 같은 나물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바로 원추리나물! 한 묶음 사다가 살짝만 데칩니다. 왜냐하면 씹는 그 식감이 몹시 그리웠기 때문이었지요. 양념에 초고추장으로 버무려 밥상에 올려 맛있게 먹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지요. 


남편이 배가 살살 아픈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려니 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으니 담가 놓은 매실 진액을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면서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딸아이가 심한 위염 증상을 보여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원래부터 위가 약해 걸핏하면 탈이 나는 아이였기에 이번에도 그런 줄만 알았었죠. 그런데 증상은 쉽게 갈아 앉지 않고 점점 심하게 앓아 입원을 시켜야 하는 건가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픈 아이 때문에 다음 날은 정신없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아침을 먹고 출근했던 남편이 퇴근 후 돌아와 오늘 또 배가 아팠다고 말하네요. 그때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추리나물을 먹은 날은 배가 아팠고 먹지 않은 날을 괜찮았는데, 다시 먹으니 배가 또 아프다고... 틀림없습니다. 검색을 시작합니다. 불길한 예감은 곧 사실로 밝혀집니다. 


원추리에는 ‘콜히친’이라는 독성이 있어서 섭취하면 구토, 설사, 복통, 발열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데 심하면 신부전까지 유발한다고 하네요.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고 걱정이 되고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남편은 하루 정도 앓고 나았지만 딸아이는 1주일 정도 병원을 다니며 고생을 했습니다. 콜히친은 수용성 성분이기 때문에 끓는 물에 충분히 데치면 제거된다고는 하지만 조리법이나 주의사항도 없이 일반 상품으로 파는 상인들의 그 패기에 놀랐습니다. 물론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조리해서 먹인 내가 잘못이긴 하지요. 원추리는 자랄수록 독성이 강해지기 때문에 봄에 돋아나는 어린잎만 사용하고, 또 충분히 익히거나 물에 담가두었다 먹어야 한다니 모두들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저만 몰랐던 거지요? 이후 우리 집에서는 원추리나물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주부로서의 나의 위상도 저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습니다.


그 후로 딸은 가끔 이런 농담을 합니다.

“ 세상이 무섭다고? 가족이 제일 무서워!!” 나물을 만든 당사자인 나는 별 탈이 없었으니 혐의가 짙을 수밖에는 없었지요. 영락없는 가정 내 독살미수사건의 범인이 된 엉터리 주부,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납니다. 

이런 창피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까닭은 오늘의 주인공 미국자리공이 한 때는 용서받을 수 없는 독초로 만인의 지탄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자리공은 빈터에서는 제법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지만 키가 내 허리만큼 올라올 정도로 큰 식물이기 때문에 크랙 정원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위의 1, 2, 3번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그 좁은 크랙 사이 흙에서도 꽃을 피우고 있네요. 


위의 사진을 보면 일부 열매가 생긴 것도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익은 모습은 아니기 때문에 미국자리공의 참모습(?)을 다 보여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 열매가 검붉은 색으로 익어 그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슬쩍 만지기만 해도 손바닥을 붉게 물들이는 그 엄청난 기세 말입니다. 열매가 익으면 그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드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자리공의 학명은 ‘Phytolacca americana L.’입니다. 제일 앞쪽에 라틴어 대문자로 표기된 것은 이 식물의 ‘속명’입니다. 속명인 ‘Phytolacca’는 식물을 뜻하는 그리스어 ‘phyton’과 붉은색 염료를 뜻하는 ‘lacca’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미국자리공 열매의 짙은 붉은색이 얼마나 인상적이면 이런 속명이 붙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실제로 포도주, 옷감, 종이 등을 붉게 물들이는 데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학명의 중간 부분은 ‘종소명’이라고 하는데 라틴어 소문자(형용사형)로 표기합니다. americana라는 것을 보면 그 고향을 짐작할 수 있네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마저 설명하자면 속명과 종소명은 이탤릭체로 씁니다. 마지막 글자는 이 식물의 학명을 붙인 사람인데 L. 은 식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과학적인 학명 표기법을 확립한 ‘칼 폰 린네’를 의미합니다. 명명자 이름은 이탤릭체로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축약해서 쓸 경우는 뒤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학명은 인위적인 이름이기에 얼른 와닿지도 않고 생경하게 느껴지지만 조금만 알고 나면 식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식물들 사이의 근연관계를 추정하는데 꽤 유용합니다. 그러나 모른다 하여 꽃을 즐기고 사랑하는 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니 너무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위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미국자리공에게는 다소 서글픈 오해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미국자리공이 독소를 내뿜고 그 독성을 지닌 열매가 땅에 떨어지면서 주변 토양을 산성화 시킨다는 주장이 있었지요. 그러기에 미국자리공이 자리를 잡고 5∼6년 자라게 되면 그 자체의 독성으로 군락은 사라져 버리고, 그 오염된 땅은 어떤 식물도 자랄 수 없는 황무지로 변하게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덕분에 대대적인 미국자리공 퇴치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미국자리공이 토양을 산성화 시킨다기보다 산성 토양에서 잘 자랄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라고 합니다.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읽은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은 식물들이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독’이라고 부르는 화학물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있는 자리에서 멀리 달아날 수 없기에 주로 초식동물인 포식자들에게 먹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잎사귀에 가시를 달아서 먹기 어렵게 하는 방법, 잎의 끝부분에 실리카 성분을 배치하여 초식동물들이 잎을 따먹을 때 날카로운 칼로 베이는 듯한 통증을 느끼게 하는 방법, ‘탄닌’을 만들어 떫은맛을 내는 방법,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는 물질을 섞는 방법 등등 열거하자면 한이 없네요. 그중에서도 최강 방책은 동물들이 먹었을 때 아프거나 심하면 죽게 만드는 독소를 만드는 방법이지요. 식물은 지구의 화학 공장입니다. 실제 많은 식물들이 약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화학 물질을 만드는지 상상이 됩니다. 지금처럼 약이 흔해진 시기 이전 우리 조상님들은 몸이 아프면 으레 식물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이라는 말이 있듯 ‘약과 독’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그렇다 보니 그들 중에는 유난히 독성이 강해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식물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은방울 꽃’을 봅시다. 



이 아름다운 은방울꽃에 들어있는 독에는 심장을 강하게 뛰게 하는 성분이 들어있어서 어쩌다 약으로 쓸 때에도 1-2g 정도의 극소량만을 사용해야 하며, 심한 경우에는 이 꽃을 꽂아둔 꽃병의 물을 마시기만 해도 중독이 될 수 있다고 하네요. 오죽하면 야생동물들도 은방울꽃을 먹는 것만은 피한다고 하니 그 위험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백부자도 맹독성 식물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사약(賜藥)의 재료로도 사용될 정도로 천남성, 투구꽃과 더불어 대표적인 독초이기도 합니다.        

      


                <위쪽 사진은 일반적인 색의 백부자, 아래쪽은 독특한 색의 백부자라서 소개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식물에게든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경쟁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한 독성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식물이 자기 주변에 있는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특정한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것을 ‘타감 작용’이라고 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허브 식물의 향, 요리를 할 때 한없이 눈물을 흘리게 하는 마늘이나 파의 성분, 고추의 캅사이신 등도 원래는 타감 작용에 이용되는 대표적인 물질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나무는 뿌리에서 ‘갈로탄닌’이라는 물질을 분비해 자신의 주위에 다른 식물은 물론이고 제 새끼인 애솔마저 거의 살 수 없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소나무 아래에서는 식물들을 보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꽃 탐사를 할 때 소나무밭은 빠르게 통과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미국자리공도 보통의 식물들이 그런 것처럼 어느 정도의 독성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특히 그 뿌리의 모양이 인삼과 비슷하여 오용되는 바람에 부작용이 크게 부각된 모양이지만 약재로도 널리 사용된다고 하니 단적으로 ‘독초’라고 분류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원추리나물을 먹고 중독 사고를 직접 경험하기도 했지만 원추리가 독초라고 말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조심해서 먹는다면 맛있고 몸에도 좋은 음식이 되니까요.  



‘자리공’ 가문의 꽃 중에는 ‘자리공’과 ‘섬자리공’도 있다는데 나는 보질 못했으니 자료만 찾아봅니다. 

자리공과 섬자리공 모두 씨방의 개수가 8개이고 열매가 아래쪽으로 처지지 않고 바로 선다고 합니다. 사진으로 보니 꽃밥이 분홍색이어서 참으로 어여쁘게 보입니다. 섬자리공은 울릉도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일반적으로 그렇듯 식물체 자체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미국자리공의 꽃밥은 흰색(4번 사진)이고 씨방은 희미하게 10개로 갈라집니다. 아래쪽으로 처진 열매 이삭의 모양까지 아래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가고 가을이 깊어지면 미국자리공의 열매도 검붉게 익어가겠지요. 8월의 마지막 날까지도 이렇게 더운 이번 여름, 툭툭 떨어진 그 열매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길마저 붉게 물들이는 미국자리공의 그 가을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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