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꽃아재비
일주일 남짓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느새 봄은 깊어지고 여름의 기운이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와 공원 울타리마다 피어난 쥐똥나무의 꽃향기가 은은하게 코끝을 스칩니다. 보도블록의 틈새에는 큰개미자리의 꽃들이 피어났다가 벌써 작은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꽃들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 자칫하면 그들의 가장 어여쁜 모습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고들빼기의 꽃이 얼추 시들고 나니 노랑선씀바귀가 여기저기, 이곳저곳에서 피어나 도시 전체가 옅은 노란색으로 화사해졌습니다.
아파트 앞의 배나무 과수원을 없애버리고 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은 이미 예고가 되어 있었기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그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배꽃의 아름다운 밤도, 때늦은 꽃샘바람과 봄에 내린 눈의 세상도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게 된 작은 텃밭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다리꽃이 피어나고, 개망초의 흰 꽃들이 가득해졌습니다. 그런 날들이 흘러가던 차에 어느 날 아침부터 불도저 소리가 요란하더니 장다리꽃과 개망초의 땅이 갈아엎어지고 울타리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사 기간 중 소음과 먼지를 가려준다는 의미에서 베푼 친절이기는 하지만 살아있는 것들이 뭉개져버리는 모습, 마구잡이로 뽑혀 나가는 꽃들을 보는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높이 1.5m가 넘는 울타리가 세워진 곳은 원래는 종일 햇볕이 잘 드는 곳이어서 자잘한 꽃들이 번갈아 가며 피어나는 장소였는데, 이제는 높다란 울타리로 햇볕이 가려져 버렸으니 환경 자체가 크게 변한 셈입니다. 그곳에서 자라던 많은 식물들이 힘든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아예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릴 것인지 걱정이 됩니다.
울타리가 만들어진 지 며칠이 지난 오늘 아침에는 본격적으로 배나무를 잘라내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수십 년을 애지중지 키워왔던 그 나무들이 잘려 나가는 데에는 불과 몇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만들고 가꾸는 데 걸리는 시간과 땀에 비하면 파괴는 참으로 눈 깜짝할 만큼 짧은 시간에 쉽게도 일어납니다. 이제 정겨웠던 텃밭과 배나무 과수원의 풍경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 속 기억은 아주 천천히, 천천히 옅어져 갈 것입니다.
이 작은 텃밭의 가장자리, 하수도로 이어지는 블록의 틈새에서 아직 봉오리 상태의 ‘개꽃아재비’를 발견한 것은 올해 봄의 일이었습니다. 이 꽃을 발견하고는 매일 가서 들여다보는 것이 이 봄날의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작년 늦가을 산책길, 마을버스 종점이 자리 잡은 길 끝자락의 어수선하고 축축한 바닥에서 낯선 꽃 하나를 발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국화과 꽃 특유의 모습에 잎은 코스모스처럼 잘게 갈라진, 처음 보는 꽃이었지요. 사진 몇 장을 대충 찍어 돌아온 뒤 도감을 찾아보니 ‘개꽃아재비’라는 꽃이었습니다. 꽃을 발견한 시기도 계절적으로 너무 늦은 데다 달린 꽃도 딱 2송이 뿐이어서 사진을 찍기에도 영 마땅치가 않았지요. 호기심과 아쉬움을 접고 잊은 채 겨울을 지냈는데, 해가 바뀐 이 봄날 뜻밖에도 가까운 곳에서 녀석을 다시 만난 것입니다. 더 기뻤던 것은 며칠 뒤 근처에서 무더기로 피어난 군락까지 발견했다는 사실입니다. 꽃들은 이렇듯 도처에서 소리 없이 피어나, 도시의 틈새에 자신들의 시간을 겹겹이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특히 소중한 것들은 더욱 쉬이 떠나가고 그 빈자리는 언제나 우리를 쓸쓸하게 하지요. 길게 느껴졌던 시간일지라도 돌이켜 보면 만남의 시간은 참으로 짧게만 느껴집니다. 그것이 사람과의 만남이든 꽃과의 만남이든 혹은 행복과의 맞닥뜨림이든 말이지요. 그러나 그 쓸쓸함의 뒤에는 다시 새로운 만남도 준비되어 있나 봅니다. 그러므로 헤어짐과 새로운 만남이 교차하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이 개꽃아재비 이야기를 하기에 딱 좋은 시간입니다.
개꽃아재비, 참으로 질퍽한 이름입니다. 귀한 느낌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내팽개치듯 붙여진 이름. ‘개꽃’이라는 이름도 그다지 고상하지 못한데 게다가 아재비라니 귀하지 않은 개꽃 가문에서도 적자(嫡子)가 아니라 서자(庶子)라도 된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러나 초여름에 피어난 이 꽃의 모습은 청초하기만 합니다.
어떤 분들은 개망초와 닮았다고도 하고, 또 한 번은 아이와 산책하던 젊은 엄마가 ‘이 꽃의 이름은 구절초야!’ 라며 아이에게 가르쳐 주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그만큼 어여쁘고 귀티가 나는 모습이란 증거겠지요. 특히 무더기로 피어난 모습을 보면 일부러 심었다고 해도 이처럼 해사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개꽃’과 닮았다 하여 개꽃아재비라고 하는데 개꽃을 보지 못한 나는 인터넷을 뒤져 봅니다. 개꽃은 중부 이북지역에서 드물게 자라는 꽃이라 하니 내가 만나지 못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두 꽃을 비교해 보면 얼핏 매우 닮아 보입니다. 그러니 눈을 크게 뜨고 다른 점을 찾아봅니다.
일단 꽃의 크기가 개꽃아재비 쪽이 살짝 큽니다. 특히 혀꽃의 크기는 개꽃아재비 쪽이 훨씬 커서 보기에 시원합니다. 개꽃은 아가의 이빨처럼 아주 작은 혀꽃을 가지고 있네요. 이 정도만 가지고도 구별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밖의 자료를 보니 개꽃은 줄기에 약간의 털이 있는데 비해 아재비에는 털이 없다는 차이점도 보입니다. 흔히 ~아재비는 원래의 꽃에 비해 미모가 떨어지는 경우가 흔한데 이 경우는 아재비가 뒤늦게 이 땅에 도착한 까닭에 아재비라는 이름이 붙어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원조’의 텃세에 밀린 것으로 보아야겠지요?
다음은 개꽃아재비의, 꽃이 두드러진 사진입니다.
이미 여러 번 설명했으므로 이제는 이 꽃을 보면 바로 ‘아하, 국화과의 꽃이구나!’라고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아주 모범적인 국화과 꽃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즉 가운데 모여 달린 대롱꽃(관상화)의 주위를 흰색의 혀꽃(설상화)들이 얌전하게 둘러싸고 있습니다. 혀꽃의 개수는 대체로 10개~18개인데, 이들은 암술을 가지지 않은 중성꽃입니다. 물론 대롱꽃은 암술과 수술 모두를 가지고 있는 양성화이므로 번식에는 문제가 없답니다.
이 꽃은 원산지가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인 귀화식물이라고 합니다. 영어 이름은 ‘stingking chamomile’, 악취를 풍기는 카모마일이라니 어떤 냄새인가가 궁금해서 코를 대어 봅니다. 늘 각종 냄새가 가득한 도시에 살고 있는 까닭에 적어도 내게는 참지 못할 정도의 냄새는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알레르기까지 일으킬 수 있다 하니 나처럼 함부로 코를 들이밀 일은 아닙니다.
공사가 진행 중인 저 땅이 어떤 모습의 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될지, 베어진 저 배나무들은 또 어찌 처리될 런지 모르겠으나 드러난 땅을 시멘트로 몽땅 발라버리지만 않는다면 내년, 후년, 그리고 몇 년 뒤라도 다시 크랙 사이에서는 꽃들이 올라올 것임을 믿습니다. 파괴 속에서도 살아남은 산자락의 나무들이 나날이 울창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저 내게 축복처럼 주어진 지금 이 시간의 저 풍경을 충분히 즐기자고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듯 보이는 인간의 시간에 비하면, 꽃 한 송이의 시간은 가냘프고 찰나처럼 짧아 보입니다. 그러나 종(種) 전체의 역사를 본다면, 식물들이 이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이어온 삶은 인간보다 훨씬 길고도 경이로운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속 남겨진 빈자리는 이제, 더욱 강인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피어날 미래의 꽃들을 위해 기꺼이 예약해 두려 합니다. 그 무엇 앞에서도 절망하거나 애통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꽃들이 걸어온 유구한 여정에 비한다면, 나의 아쉬움도 나아가 나의 삶 자체도 결국 한 순간에 불과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