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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참 의미를 생각합니다.

- 개소시랑개비

by 나우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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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가만히 걷다 보면 온 세상이 노란색으로 가득합니다.

노랑선씀바귀, 고들빼기, 아직도 남아있는 서양민들레, 여전히 그 세(勢)를 줄이지 않고 있는 뽀리뱅이, 풀꽃은 아니지만 황매화도 피어나고... 눈부신 노란빛의 세상입니다.



이 세상 참으로 어지럽습니다.

놀라운 일들이 연속되는 시간이었지만 끝이라고 생각했던 놀라운 일은 그 끝을 모르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저열함, 최후의 가느다란 믿음까지 저버리는 모습들을 보며 ‘다양성’의 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과연 어디까지를 다양성의 범주에 넣어 인내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아파옵니다.


꽃들의 세상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다양한 모양, 다양한 크기의 꽃, 다양한 기능을 가진 꽃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중 인간의 감각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역시 색깔입니다. 꽃들의 색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가장 흔한 꽃의 색은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지며, 지역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고 하지만 꽃의 색깔은 꽃가루받이를 위해 매개 곤충을 끌어들이려는 전략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봄에 이렇듯 노란색이 많은 것은 이즈음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는 벌과 관계가 있는 듯 보입니다. 곤충에 따라서 좋아하는 색이 다소 달라집니다. 새는 빨간색을 좋아하는 데 비해, 나비와 박쥐는 흰색을, 그리고 벌은 노란색이나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꽃의 제국> p132, 강혜순 지음, 출판사 <다른세상> 참조)


물론 꽃의 색은 꼭 꽃잎의 색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꽃받침이나 꽃싸개잎, 심지어는 꽃밥의 색에 의해서도 색이 표현됩니다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꽃잎의 색이겠지요. 식물의 진화 과정으로 보면 꽃잎은 잎이 변화된 것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우연히 녹색의 잎에 색채를 가진 녀석이 출현했고, 그 녀석들에게 보다 많은 꽃가루받이 곤충들이 유혹되어 더 많은 후손을 남기면서 식물의 세상에 이토록 화사한 색의 잔치가 열린 것이겠지요. 녹색으로만 이루어진 단조로운 세상에서 현란한 색의 세상으로의 진화... 상상만으로도 그 대단한 생명의 여정에 깊이 감동하게 됩니다.


지금 이 계절에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들을 몇 가지 담아보았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꽃들이 있지만, 살짝 구경하고 넘어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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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갓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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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리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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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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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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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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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선씀바귀>


봄이 봄다운 많은 이유야 많지만 봄꽃의 노란색도 봄을 봄답게 만드는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인 것 같습니다. 이제 여름이 다가오고 봄이 뒷걸음질을 바쁘게 하게 되면 차츰 흰색의 꽃이 많아지는 것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특히 이미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는 쥐똥나무, 산딸나무 등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노린재나무, 산사나무, 조팝나무, 때죽나무, 병아리꽃나무 등의 꽃들이 피어나는 시간이 되면 세상은 흰 꽃의 색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위에서도 살짝 말했지만 속씨식물(현화식물)이 지구에 출현하여 식물 세계의 주류(?)를 이룬 이래 우리의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현란하고 아름다운 세상... 꽃이 만들어낸 세상입니다. 다른 존재를 내치지 않고 다른 존재에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댈 필요 없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존재들과 공생하면서 공진화해 나가는, 그리하여 마침내 폭발하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바로 식물의 민주주의이고 힘입니다.



크랙정원에서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는 노란색의 봄꽃들 사이에서 새로운 모양의 꽃을 발견하였습니다.

꽃모양 자체는 얼핏 양지꽃과 무척 닮아있습니다. 그러나 잎의 모양을 보면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도시의 건조한 길바닥에서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개소시랑개비’입니다. 그동안 개소시랑개비는 습기가 약간 있는 곳에서 보곤 했는데 그동안 이 꽃은 도시 환경에 많이 적응해 왔나 봅니다. 여기저기서 만나게 되네요.


이름이 발음하기에도 조금 복잡하게 들립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개소시랑개비는 ‘개쇠스랑개비’가 바뀌어 된 이름인데, 그 잎의 모양이 쇠스랑을 닮아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개소시랑개비의 작은잎(소엽)은 가장자리에 깊은 톱니를 가지고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모양이 쇠스랑을 닮아 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꽃이 주는 전체적인 인상이 세세한 부분의 정확한 모양보다 더 의미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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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쇠스랑과 그리 친할 일이 없었던 나로서는 새삼스레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쇠스랑’을 찾아봅니다. 꼭 닮았다고 하기는 어려운 면도 있지만 농업사회에서라면 충분히 연상하여 붙인 이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소시랑개비의 잎을 접사 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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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어긋나기(호생)로 달리고 있는데 잎자루가 긴 모양입니다. 작은 잎에는 가장자리에 깊은 톱니가 있는데 그 모양이 쇠스랑을 닮았다는 것이지요.


내친김에 꽃 모양도 자세히 보고 가도록 하지요. 예쁜 모습을 보며 이 꽃이 장미과에 속하는 것임을 새삼 확인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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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끝 잎겨드랑이에서 피어난 노란색의 꽃잎은 5장인데 가운데가 조금 들어간 모양으로 꽃잎 사이에는 간격이 있습니다. 암술과 수술은 풍성한 게 많습니다. 왼쪽의 사진을 보면 벌써 열매를 맺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뒷모습도 예쁩니다.

역시 노란색의 꽃잎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그리고 약간 짙은 녹색의 꽃받침조각이 보입니다.

그 위로 상대적으로 옅은 녹색인 곁꽃받침조각이 보이네요.

이렇게 2겹으로 꽃을 감싸고 있은 것을 보니 저 꽃은 참 든든할 것 같습니다.


아래쪽의 사진을 보면서 각각의 크기를 비교해 보도록 합시다.

곁꽃받침조각이 가장 크고 그다음은 꽃잎이 큽니다. 그리고 꽃받침 조각의 크기가 가장 작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꽃을 뒤에서 혹은 올려다보면 아주 새로운 모습을 볼 수도 있으니, 꽃을 볼 때면 그야말로 요리보고 조리보고, 오래 들여다보고 가까이서 보아야 합니다.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식물들에게도 이 지구 행성 위에서의 생존과 번식, 다른 말로 한다면 자기 복제를 통한 ‘영생’이 가장 중요한, 아니 유일한 삶의 목표라고만 말한다면 저 위에서 소개한 식물들의 다양성 앞에서 잠시 말문이 막힐 수도 있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목표라면 가장 효율적인 모습은 하나이고 하나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은 수없이 많고 그 방식의 다양함은 곧 식물들의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됩니다. 어느 꽃이 환경에 더 적합하다고 순위를 매길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 모두가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해 왔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다만, 그들 하나하나의 모습이 다른 식물들을 폄훼하고 배제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양성으로 인해 세상이 더욱 풍요롭고 더욱 아름다워지고, 다른 존재들까지 품어 성장시키는 것은 물론 환경의 변화에 더욱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는 사실... 이것이 다양성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노란색의 세상을 조금 더 즐겨보렵니다. 물론 그 사이사이 피어있는 흰색과 분홍색, 심지어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녹색의 꽃까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모든 꽃들에게 감사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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