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의 참 의미를 생각합니다.

- 개소시랑개비

by 나우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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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가만히 걷다 보면 온 세상이 노란색으로 가득합니다.

노랑선씀바귀, 고들빼기, 아직도 남아있는 서양민들레, 여전히 그 세(勢)를 줄이지 않고 있는 뽀리뱅이, 풀꽃은 아니지만 황매화의 꽃도 피어나 눈부신 노란빛의 세상입니다.


꽃들이 보여주는 평화로운 질서와 달리 우리가 발붙인 세상은 어지럽기만 합니다. 믿기 힘든 일들이 연이어 터지고, 상상조차 못 했던 상황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인간성의 스펙트럼이 참담할 정도로 넓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합니다. 마지막 보루처럼 붙들고 있던 믿음마저 무너뜨리는 이 저열함이 극히 일부의 일탈일지라도, 과연 어디까지를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용해야 하는지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꽃들의 세상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다양한 색, 다양한 모양, 다양한 크기의 꽃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중 인간의 감각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역시 색깔입니다. 꽃들의 색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가장 흔한 꽃의 색은 계절에 따라서 달라지며 지역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꽃의 색깔은 꽃가루받이를 위해 매개 곤충을 끌어들이려는 전략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봄에 이렇듯 노란색 꽃이 많이 피어나는 까닭은 이즈음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는 벌과 관계가 있는 듯 보입니다. 곤충마다 볼 수 있는 색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식물은 목표가 되는 곤충에 맞춰 색을 정합니다. 벌은 빨간색은 거의 보지 못하고 노란색이나 파란색, 보라색을 좋아하는 데 비해 나비는 빨간색, 주황색, 분홍색 등 선명하고 밝은 색을, 주로 밤에 활동하는 나방은 어둠 속에서도 눈에 잘 띄는 흰색이나 연한 노란색을, 파리는 썩은 고기의 색을 좋아한다니 꽃도 이런 곤충의 취향에 따라 자신의 색을 맞춰 가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꽃의 색은 고객(곤충)의 취향에 맞춘 식물의 화려한 광고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꽃의 색은 꼭 꽃잎의 색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꽃받침이나 꽃싸개잎, 심지어는 꽃밥의 색에 의해서도 색이 표현됩니다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꽃잎의 색이겠지요.

식물의 진화 과정에서 본다면 꽃잎은 잎이 변화된 것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우연히 녹색의 잎으로부터 현란한 색채의 꽃잎이 출현했고, 그런 꽃잎을 달고 있는 식물들에게 보다 많은 꽃가루받이 곤충들이 유혹되어 더 많은 후손을 남기게 되면서 식물의 세상에 이토록 화사한 색의 잔치가 열린 것이지요. 녹색으로만 이루어진 단조로운 세상에서 화려한 색의 세상으로의 진화... 상상만으로도 그 대단한 생명의 여정에 깊이 감동하게 됩니다.


지금 이 계절에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들을 몇 가지 담아보았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꽃들이 있지만, 살짝 구경하고 넘어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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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갓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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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리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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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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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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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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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선씀바귀>


봄이 봄다운 많은 이유야 많겠지만 봄꽃의 노란색도 봄을 봄답게 만드는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인 것 같습니다. 이제 여름이 다가오고 봄이 바쁘게 뒷걸음질 치게 되면 차츰 흰색의 꽃이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는 쥐똥나무, 산딸나무 등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노린재나무, 산사나무, 조팝나무, 때죽나무, 병아리꽃나무 등의 꽃들이 피어날 때쯤이면 세상은 온통 흰색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위에서도 살짝 말했지만 속씨식물(현화식물)이 지구에 출현하여 식물 세계의 주류를 이룬 이래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현란하고 아름다운 세상... 꽃이 만들어낸 세상입니다. 다른 존재를 내치지 않고 다른 존재에게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댈 필요 없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존재들과 공생하면서 공진화해 나가는, 그리하여 마침내 폭발하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바로 식물의 민주주의이고 식물이 가진 힘입니다.



크랙정원에서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는 노란색의 봄꽃들 사이에서 새로운 꽃을 발견하였습니다.


꽃모양 자체는 양지꽃과 무척 닮아있습니다. 그러나 잎의 모양을 보면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습기가 약간 있는 곳에서 보곤 했기에 도시의 건조한 길바닥에서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개소시랑개비’입니다. 그동안 이 꽃은 조용히 도시 환경에 적응해 왔나 봅니다. 올 봄 여기저기서 만나게 되네요.


이름이 발음하기에 조금 어렵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개소시랑개비는 ‘개쇠스랑개비’가 바뀌어 된 이름인데, 그 잎의 모양이 쇠스랑을 닮아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개소시랑개비의 작은잎(소엽)은 가장자리에 깊은 톱니를 가지고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모양이 쇠스랑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꽃이 주는 전체적인 인상이 세세한 부분의 정확한 모양보다 더 의미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 ‘쇠스랑’을 찾아봅니다. 개소시랑개비의 잎과 쇠스랑의 모양이 꼭 닮았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깊게 갈라진 잎의 형태를 보니 농경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 모습을 연상해 이름을 붙였을 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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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시랑개비의 잎을 접사 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잎이 어긋나기(호생)로 달리고 있는데 잎자루가 긴 모양입니다. 작은 잎 가장자리에는 깊은 톱니가 있는데 그 모양이 쇠스랑을 닮았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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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꽃 모양도 자세히 보고 가도록 하지요. 예쁜 모습을 보며 이 꽃이 장미과의 꽃임을 새삼 확인해 봅니다.

가지 끝 잎겨드랑이에서 피어난 노란색의 꽃잎은 5장인데 가운데가 조금 들어간 모양으로 꽃잎 사이에는 간격이 좀 있습니다. 암술과 수술은 풍성한 게 그 수가 많습니다. 위 사진의 왼쪽 부분을 보면 벌써 열매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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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뒷모습도 참 예쁩니다.

역시 노란색의 꽃잎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그리고 약간 짙은 녹색의 꽃받침조각이 보입니다. 그 위로 상대적으로 옅은 녹색인 곁꽃받침조각이 보이네요. 이렇게 2겹으로 감싸고 있는 것을 보니 저 꽃은 참 든든할 것 같습니다.


꽃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부위들 간의 크기를 비교해 보도록 합시다.

소소한 차이이기는 하지만 곁꽃받침조각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은 꽃잎입니다. 그리고 꽃받침조각의 크기가 가장 작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꽃을 뒤에서 보거나 혹은 올려다보면 아주 새로운 모습을 볼 수도 있으니, 꽃을 볼 때면 그야말로 요리보고 조리보고, 오래 들여다보고 가까이서 보아야 합니다. 같은 구성 요소라 하더라도 꽃마다 그들 간의 크기 차이가 있어서 보는 이를 즐겁게 합니다. 그야말로 다양성이 섬세하게, 소리도 없이 폭발하는 현장이기도 하지요.



다른 생명체처럼 식물의 유일한 목적이 생존과 번식을 통한 ‘영생’에 있다면, 우리 곁의 식물들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만약 효율성만이 정답이라면, 세상의 모든 식물은 결국 가장 완벽한 단 하나의 형태로 수렴되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으며, 그 방식의 다채로움은 곧 식물들의 개성 있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꽃이 환경에 더 적합한지 순위를 매기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 존재하는 모든 꽃이 각자의 방식대로 가장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생존해 왔다는 점입니다.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답이 하나만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 하나하나의 고유한 모습이 결코 타자를 폄훼하거나 배제하기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다름’이 모여 ‘다양성’이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이룹니다. 그러기에 그 차이가 다른 존재를 배제하는 명분이 되어서도, 누군가를 억압하는 권력이나 무기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무수히 많은 ‘다름’이 평등하게 어우러진 다양성이야말로 세상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듭니다. 또한 다른 존재를 품어 함께 성장시키며, 서로서로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강력한 힘, 동지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다양성이 품고 있는 참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당분간 나는 이 노란빛의 세상을 조금 더 즐겨보렵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수줍게 피어난 흰색과 분홍색, 심지어 눈에 잘 띄지 않는 녹색의 꽃들까지도 놓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를 다시 웃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이 모든 생명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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