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읽는 모든 당신들에게 부치는 편지.
Dear…
안녕.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이야?
친구일까? 오다가다 스친 인연? 그도 아니면, 얼굴도 이름도 모를 그저 인터넷 어딘가의 허울 좋을 ‘작가’쯤?
오늘 나는 이 글을 읽을 당신, 그러니까 늘 나의 글을 읽는 당신에게 편지를 써보기로 했어. 당신은 때로 나보다 어리기도 하고 때론 훨씬 어른스럽기도 해서 이 문장의 끝을 어찌 마쳐야 할지 잠시 고민도 했지만, 그냥 내 소박한 마음을 적어보기로 했어. 그러니 내가 조금 당돌하게 굴더라도 오늘만큼은 너른 맘으로 이해해 주길, 조심스레 소망해 볼게.
사실 나는 지금 우리 계절 매거진의 마지막 숙제를 쓰는 중이야. 이번 주제가 ‘가을에 담는 편지’거든. 이 주제에 대해서 무엇을 쓸지는 한참 전부터 정해두었지만, 아직 공개적으로 꺼내기엔 조금 사무치는 마음이라 조용히 우리의 책에만 담으려 했어. 그런데 역시 이곳의 작가님들은 너무 멋진 분들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스크롤만 쭉 넘겨도 가슴에 파문이 일더라. 그래서 결국 나는 또 이 자리에 앉고 만 거야. 그러니 어쩌겠어. 미련스럽게도 두 편의 글을 써야지.
실은 꽤 오래전부터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 문득 일렁이는 마음에, 오늘은 그 진심을 편지로 부쳐보려 해.
아, 이 편지를 읽고 당신이 나에게 너무 홀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미리 말하지만 나는 말은 조금 서툴지만 글은 꽤 잘 써. 개중에서도 특히 편지는 아주 잘 써. 그리고 이렇게 마음먹고 편지를 쓰는 건 정말 몇 년 만이기도 해. 그러니 각오 단단히 하고 읽길 바라.
있잖아, 요즘 나의 글을 읽는 일은 좀 어때? 혹시 너무 피로하거나 질리거나, 고단하지는 않았어? 당신이 어떤 경로로 내 글을 읽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잖아. 하지만 사실 우리는 무수한 옷깃을 스치고도 평생을 모르고 살아가는 편이지. 그토록 무정한 세상에서 어떤 이의 이야기를 매일, 혹은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읽는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야.
내 시간이 소중한 만큼, 당신의 시간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어. 내 글은 그동안 백 편이 넘게 쌓였고, 나는 늘 할 말도 많고 호흡도 길어서 글도 길지. 그러니 내 글을 꾸준히 읽는 당신은 결국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게 건넨 것과 다름없어. 그 사실에 나는 늘 감사해.
그러니 소중한 당신의 시간을 들여 나의 글을 읽는 행위에는 무언가 얻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내 생각에 요즘의 글은 딱히 얻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게 못내 당신에게 미안해.
당신을 감정 쓰레기통처럼 여기고 싶은 마음은 절대 아니야. 그저 나는 요즘, 말할 수 없을 만큼 사무치는 마음과 또 그것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음에 꽤나 외로워서, 그런 나약함에 자꾸만 스러져버려서 그래. 결국 모든 건 내가 너무 나약한 인간이라 그런 거야. 그래서 나는 늘 당신에게 미안해. 이것밖에 안 되는 나를 보이는 일이 언제나 부끄러워.
이토록 나는 나를 못 믿고, 얼마쯤 미워하는데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은 꾸준히 내게 다정하다 말해.
어제는 몇 년 만에 연락한 친구가 “넌 여전히 다정하네!”라는 거 있지. '어라, 내가 다정을 ‘흉내’ 내기 시작한 건 기껏해야 최근의 일일 텐데?' 싶어 종일 얼떨떨했지만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 나는 요즘 다정을 최고의 칭찬으로 여겨. 그 말을 들으면 나는 어쩐지, 볼을 발갛게 물들인 수줍은 소녀가 되고 말아.
맞아, 나는 요즘 퍽이나 다정을 흉내 내. 물론 서투른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고민에 온전히 공감하기 어렵고, 어떤 예쁜 말로 어루만져야 할지 몰라 머뭇대지만, 그럼에도 힘닿는 데까지 그 마음에 닿고 싶다고 소망해.
오늘로 얼굴도 이름도 모를 열네 명의 작가님들과 함께했던 첫 번째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났어.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자축했지. 여름에 만나 문장으로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던 우리가 겨울 초입에서야 진짜 치얼스를 하자며 이야기하고 있어.
당신 상상할 수 있어? 30대 초반부터 60대까지, 세대와 배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글이라는 공통된 관심사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 정말 멋진 일이거든.
내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당신에게 왜 하는지 조금 난해하지?
그게 바로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이기도 해.
나는 당신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나는 늘ㅡ,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내가 한 가지 비밀 이야기를 해줄게. 내 인생 대부분의 첫 기억들은 어떤 이지도, 의지도 없을 여섯 살 쯤의 충격적이고 슬픈 것들이지만, 사실 진짜 '첫 기억'은 따로 있어.
나는 다섯 살에 한글을 전부 뗐어. 또래보다 꽤 빨리 익힌 편이지. 아직 아프지 않았던 엄마는 내 교육에 꽤 열정적이었으니, 나는 무려 다섯 살부터 꼬박꼬박 매일 일기를 쓰는 착한 아이였어. 당신, 초등학생 때 방학마다 밀린 일기를 쓰는 일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기억하지?
하지만 나는 일기를 밀려 쓸 수 없었어. 단 하루라도 밀리면 아빠에게 맞았거든. 내 인생 첫 기억은 그로부터 시작해. 그 체벌이 다섯 살 여자아이가 겪을 고통도, 도구도 아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나는 내 허벅지만 한 각목으로 피멍이 들도록 맞고 탈수가 올 때까지 벌을 서곤 했어.
놀랐지? 당신이 늘 읽고 있는 내 글. 시작점이 바로 그곳이야. 고작 다섯 살에 일기를 하루 쓰지 않았다는 이유 따위로 학대받던 것이 내 글의 기원이었어. 그러니 어쩌면 이런 내가 당신에게 글을 쓰라 말하는 것이 조금은 우스울지도 모르겠네.
아, 걱정할까 봐 말하건대, 그 기억들은 이제 더 이상 내게 상처도, 흉터도 아니야. 언제나 내게 상처가 되는 일은 조금 밉고, 조금 슬픈 단 한 사람뿐일 테니. 아빠도, 그때의 기억도 이제 더는 나를 흔들지 못해.
글을 쓰면서 나는 참 많이도 고민했어. 부끄럽게도 내가 적어내는 것들은 늘 이따위 것들이라, 언제나 나 자신에게만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미는 나는, 늘어나는 구독자 수와 따뜻한 댓글 속에서조차 그 진의를 의심하기 바빴거든.
솔직히 당신이 내 불행 포르노 같은 이야기를 읽는 이유를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고 고백할게. 그래서 언젠가는 이렇게 결론 내리고 말았어.
'아ㅡ 내가 쟤보단 멀쩡한가 보다'
그러니까, 일종의 시혜적 우월감 같은 거 말야. 당신이 내 글을 읽고 그런 우월감 외에는 얻어갈 수 있는 게 없을 거라 여겼거든. 내가 그토록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정말 부끄럽지만 이제 와 고백해.
나는 여전히 내 글이 조금은 불행 포르노 같다고 생각해. 하지만 당신들의 진의를 의심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었어. 그건 고작 나의 어려운 마음을 숨기지 않고 토해냈을 뿐이거늘, 그들의 가려움을 긁어주는 일이 되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야.
미처 터트리지 못하고 끙끙 앓고 삭히던 것을 위로하는 일이 되었던 거지. 전혀 다른 경험일진대, 어떤 문장은 그들의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던 것이고. 조금은 부끄러워 잊고 싶던, 하지만 그럴 수 없어 밤잠을 설치게 하던 나날들을 이제는 편히 놓아줄 힘을 쥐여준 거야. 세상에 이토록 서투르고 부족한 것이 나만이 아님을, 그래서 내일도 버벅대겠지만 그 또한 괜찮은 일이라 안도하게 해 주었다는 거야. 그리 스스럼없이 솔직해 본인도 몰랐던 모습을 알게 해 주었다는 거야. 그리하여 내게 감사하대. 나의 모든 마음을 존경하고 응원한대. 나는 이 소중한 마음들을 더는 의심할 수 없게 되었어.
나는 한때 내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고민하던 적이 있어. 남의 슬픔과 아픔에 그다지 공감을 잘하는 편이 못되니까. 오롯이 나만 살아남기 바빴던 생이라 내 손톱 밑 가시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나는 그토록 이기적인 인간이야. 이런 내가 만약 누군가를 위로한다면, 그건 아마 얼마쯤의 '흉내'를 내며 다정을 노력하는 것일 테야.
나는 타인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쉬웠어. 흉내는 연습으로 낼 수 있지만 '우러나오는 마음' 같은 건 연습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위로하고 공감하고 싶었지만, 그게 잘되지 않아 늘 속상했거든.
그런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었대. 정말 놀라운 일이지? 나는 단 한마디의 위로도 건네지 않았는데 말이야.
봐. 글 쓰는 일은 정말 이토록 찬란한 일이야.
내가 당신에게 글을 권하는 이유는 또 있어. 나는 심경의 변화가 있으면 꼭 글을 써. 찬란한 환희의 순간에도, 벅찬 감동에도 그렇지만, 사실 대부분은 조금 슬프고 고단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함이야. 글을 쓰는 건 감정을 조절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돼.
누군가에게 서운한 마음을 차마 털어놓을 수 없을 때도, 무력한 나 자신을 지켜보기 참담할 때도, 그저 무작정 침잠하는 마음에 무엇이라도 부여잡고 싶어 진다면, 나는 키보드를 아무렇게나 눌러 어떤 문장이든 만들어. 그 감정 끝에 온점을 찍고 나면 분명히 가벼워진 마음은 내일을, 조금 미운 그 사람을, 부족한 나를 다시 바라볼 힘을 줘.
어느덧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반년. 내 주변 사람 중 일부는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알아. 그들은 종종 내게 다가와 비밀처럼 속삭여.
“나도 사실 어릴 때 꿈이 작가였어.”
“나 어릴 때 글짓기대회 좀 나갔었어.”
그런 얘기들을 들을 때면 나는 상당히 놀라곤 해.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글쟁이처럼 생기지 않았고(?) 이런 쪽에 그다지 관심 있어 뵈지도 않았거든. 그러면 나도 생각하게 돼.
아, 나도 남들 눈엔 똑같이 그랬겠지? 사실 나도 글 쓰게 생긴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푸흐흐) 그래서 내가 글을 쓴다 고백했을 때 상상도 못 할 것처럼 놀라던 그들의 표정이 이해되어 버린 거지.
그래서 나는 이 모든 이야기 끝에 다시 한번 당신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 글은 잘 쓴 글이 아니어도 되고, 공개될 필요도 없어. 그럴싸한 다이어리도 없이 핸드폰 메모장에 대충 흘겨 적는다면 그뿐이야.
오롯이 당신만 읽을 당신만의 글이어도 좋아. 어색하고 앞뒤 순서가 엉망이어도 괜찮아. 그저 소박히 바라건대, 그 순간에 남기고 싶은 기억과 생각을 글로 써줘. 어차피 아무도 안 볼 텐데 뭐 어때?
문득 하늘을 보니 철새가 날아가더라ㅡ 그런 단순한 기록이어도 좋아. 언젠가는 그 위에 당신의 온전한 감정을 덧입히고 싶어지는 날이 올 거라고 나는 확신해.
내가 당신에게 글을 쓰라 권하는 마음은 진실로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나는 당신이 이 삶의 소중함을 잊지 않길 바라. 혹여 바쁜 일상에 잠시간 잊더라도 언젠가 기록해 둔 그것을 펼쳐 그 계절을, 그 순간의 온도를 기억하길 바라.
그렇게 온 마음으로 찬란한 당신을 사랑하길 바라.
나 또한 그리 눈부신 당신 곁에서, 당신을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길 바라.
당신의 가을 끝에 서서
마른틈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