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례가 싫다. 무례가 좋은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쓸데없이 내상을 잘 입는 나에게 있어 특히 독이나 다름없다.
나는 단순하다.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 세상이 내게 악의를 갖고 있지 않을 거라 믿으며 살아간다. 그러니까, 대가리가 꽃밭이다. 그래서 뒤끝이 없다. 앙금을 남기고 싶어도 기억이 안 나니 남길 수 없다.
이 두 전제는 언뜻 충돌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제부터 내가 생각하는 무례에 대해 서술해 보겠다.
나의 전 남자친구는… 그래. 또 그 인간이다. 하도 우려먹어 이제는 말하기도 지겹다. 까도 까도 끝이 없으니 아주 양파가 따로 없다.
하여간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강아지를 선물했다. 작고 하얀 강아지는 충분히 사랑스러웠지만 나는 그 강아지를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미 데려온 강아지를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 강아지는 우리 둘 사이를 오가며 자랐다.
나는 세상에 특별한 책임감이 있어 비건을 실천한다던가, 동물권 운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동안 ‘개고기’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굳이 왜? 세상엔 이미 맛있는 게 널리고 널렸는데.
남들이 개고기를 먹든 말든 나는 개의치 않는다. 그런 건 각자의 기호니까 내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내게 강요치만 않는다면,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
어느 날 그의 친구들과 단체로 함께한 여행이었다. 그와 나는 나이 차이가 조금 있었으니 그의 친구들도 내겐 조금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런 그들이 갑자기 수육 같이 생긴 무언가를 내게 먹어보라며 들이밀었다. 보쌈이라고 했다. 음흉하게 웃으며 마구잡이로 들이미는 꼴이 어쩐지 찝찝해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그들과 함께 실실 웃으며 그게 보쌈이 맞다고 말했다. 그때 그는 우리의 강아지를 품에 소중히 안고 있었다.
나는 그를 믿고 순순히 받아먹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보쌈과 전혀 다른 식감에 거부감을 느끼며 곧바로 뱉어내고 말았다. 그들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곤 재밌다는 듯 낄낄댔다. 불길한 마음에 무엇이냐 재차 물었더니 개고기라 답하더이다.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황당했다. 나를 속여 개고기를 억지로 먹인 새끼가 내 남자친구라고? 게다가 그 품엔 강아지까지 안고서?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고 먹을 기회도, 먹을지 말지 선택할 기회도 얻지 못했다. 그게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개고기 경험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들의 무례에 어떤 반박도 하지 못했다.
아ㅡ 지금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키득거리며 쳐 웃던 그 머리통들을 한 대씩 후려갈겨버렸을 텐데. 그땐 너무 어리고 온순했다.
이런 직접적인 무례가 아니어도, 나는 때때로 간접적인 형태의 무례를 겪는다. 그건 주로 내가 그들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다. 물론 그들이 내게 의도적으로 무례를 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 나를 ‘존중’할 생각 없이, 본인의 방식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그래, 내가 그들에게 소중한 존재가 아닐 뿐이다. 그저 늘, 예민한 내가 그 관계의 기울어진 무게추를 먼저 눈치챌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 내가 철저하게 예의 바른 사람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 나도 숱하게 많은 무례와 결례를 범하고 살아왔겠지. 나는 아주 아주 이기적이고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니까.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잘 되고 있는진 모르겠다.
어릴 때 나는 ‘성선설’을 믿었다. 세상에 이유 없는 악의는 없다고 믿었다. 내가 그랬으니까 남들도 그럴 거라 여긴 거다. 서운한 일이 있으면 대화로 풀면 된다고 생각했고, 상대가 그렇다 하면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나는 빈말을 하지 않으니 남도 그럴 거라 착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멍청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금은 숨긴다. 여전히 거짓말엔 서투르니까, 차라리 입을 다무는 쪽으로. 서운함을 말하지 않는 쪽으로. 당신이 나를 존중하지 않음을 눈치채버렸지만 모르는척한다. 대화는 얕아지고 둥둥 뜬다. 약점은 드러내지 않는다. 네 인생이 흔들릴 만큼의 약점을 먼저 내게 꺼내준다면, 나도 고민은 해볼게.
사실 나는 외롭게 자라서 사람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관계에서 염증과 피로를 아주 심하게 느낀다. 뿌리 깊은 불신과 자기 방어다. 너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보여줄 수 없는 선이 있다. 밝고 즐거운 모습은 기꺼이 내어주겠지만, 어둡고 부족한 부분은 네게 쥐여주지 않을 거다. 네가 그것으로 나를 휘두르지 못하도록.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게도 감정의 배설은 필요하니까.
무례에 대응하는 방식은 관계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헤어지면 된다. 애초에 관계의 정립조차 안 된 사람이면, 그저 서서히 희미해지겠지. 헤어질 수 없는 사람이라면, 계속, 계속, 소모되고 닳다가, 더 이상 닳을 게 없어질 때쯤 헤어지겠지.
아, 모든 것은 이토록 부질없고 덧없음을. 허무와 공허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