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나는 고장 났다. 단단히 망가져 손쓸 수 없이 형편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꽤 괜찮은 요즘이었다. 늘 그렇듯 고단한 일정 속에서도 이직을 위해 틈틈이 면접을 봤고, 거짓말처럼 제일 마음에 들었던 두 곳에서 동시에 연락을 받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조건을 따져 골라갈 수 있는 구직자라니… 얼떨떨한 마음으로 통화를 마친 나는 어쩌면 그렇게까지 무용한 존재가 아닐지 모른다는 얄궂은 희망을 품었다.
꽤 괜찮은 하루였다. 새로 출근한 회사가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조건도, 회사의 방향성도, 그들이 나를 대하는 정중함도, 요즘 보기 드문 ‘직원’을 향한 태도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늘 태풍의 눈 한가운데서, 한 걸음만 삐끗해도 쓸려나갈까 불안하던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 퇴근길에는 캐럴이 널리 울려 퍼진다. 어둡고 시린 밤에 구슬 빛 방울들이 줄지어 흔들린다. 나는 그 말랑한 풍경을 저녁 여름만큼이나 사랑한다. 그토록 몽글몽글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름 끼치도록 침전하며 가라앉는 그 기분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근래 나는 조금… 아니, 조금보다는 더 많이 힘들었던 게 맞지. 그렇지만 꽤 괜찮은 요즘이었고, 특별히 더 괜찮은 하루였지 않았나. 게다가 지금 내가 바라보는 광경은 이토록 아름다워 행복에 겨운 감정을 느끼고 있을 테니, 이 낯설고 역설적인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오늘은 정말 괜찮은 하루였고, 지금은 꽤 행복해야 맞았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내게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너무너무 죽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아 , 나 진짜 고장 났나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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