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안내견이 말합니다.
어쨌든 제주로 향하는 일정은 확정되었고, 회사에 이를 알리는 절차만이 남아있었다. 사전에 협의를 거치긴 했지만, 입사하자마자 휴가를 떠난다는 것은 여러모로 이례적인 일이다.
어차피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심보로 제주행을 계획하던 나에게 이들은 지독한 타인이다.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그 이전에 잠시, 나의 심신을 위해 이용되었을 뿐이다. 불쌍한 사람들 같으니.
그래, 그때의 나는 ‘쓸모’에 몹시도 목마른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대표님, 저 일정 확정됐어요. 이때부터 이때까지 다녀오겠습니다.”
“어 그래요~”
단 일말의 고민도 없는 선선한 대답에 오히려 맥이 빠진 쪽은 나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회사는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다.
아니, 아니다. 아무래도 대표님이 조금 이상한 것 같다.
내가 면접을 보던 날, 대표는 중국에 일정이 있어 실무자와 일대일 면접을 진행했다. 사실 그것은 면접이라기보다 회사에 대한 일방적인 소개와 내 일정 조율에 가까운 자리였다. 다년간의 경력직 면접에서는 종종 있던 일이지만, 공백기가 길었던 탓에 나는 더 이상 나를 경력자라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다소 의아하던 차였다.
이틀 뒤, 대표로부터 직접 연락이 왔다. 당시 나는 우울감이 심각한 지경까지 치달아, 목소리가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듣자니 대표는 서너 마디 만에 나와 함께 일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 몹시도 음울하고 반항적인 상태였다. “내가 직원들 차도 많이 뽑아줬어요, 허허.” 자화자찬하듯 말하는 대표에게 나는 “차는 됐고, 차만큼의 복지나 해주세요.”라며 당돌하게 들이 받았다. 그런 나를 보고 건방지기는커녕 함께 일해야겠다니, 오히려 아주 마음에 들었다니. 하여튼 저 사람도 정상은 아닌 게 분명하다.
대표는 나를 아주 소중하게 아껴주었다. 표현이 조금 이상한 것 같지만, 이 말 말고는 달리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입사 후 일주일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떤 업무도 받지 말라는 대표의 특별 지시였다.
바로 전 직장에서 이틀 만에 대형프로젝트를 떠맡아 밤낮없이 갈려 나간 일이 고작 한 달 전의 일이다. 이제 웬만한 환경에서는 끄떡없이 버틸 수 있겠거니 싶었는데, 이 말랑한 기분은 대체 뭐란 말인가.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게 바로 신종 직장 내 괴롭힘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 일주일 동안 내가 출근해서 한 일이라곤, 눈치껏 이전한 사무실 비품을 아주 조금 정리한 것과 히터를 끄고 켜는 일, 대표가 오면 인사하는 것, 메일 구경, 업무 톡방 구경, 그리고 회사 홈페이지 구경이 전부였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