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나 아기 두 살

by 마른틈

2025년, 아니 2026년이 됐다. 젠장할. 당분간은 연도를 쓸 때마다 2025 위에 볼펜으로 죽죽 긋고 2026을 덧써야 할 테다. 해마다 찾아오는 새해건만, 평생에 걸쳐 몸에 밴 습관보다 고작 일 년짜리 습관이 이토록 얄궂다.


나는 이제 두 살이 됐다. 응애.


무슨 헛소린가 싶겠지. 맞다. 사실은 서른두 살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주 어릴 적, 서른 살까지만 짧고 굵게 살다가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보다 두 살이나 더 살아버렸으니 그냥 두 살인 셈 치기로 했다. 응애, 나 아기 두 살.




어릴 때는 서른 살이면 아주 어른이라 생각했다. 꼿꼿한 다리로 세상의 풍파에 끄떡없이 버텨내고, 지조와 강단으로 나만의 길을 굳건히 걸어 나가는 멋진 어른이 저절로 되어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서른에서 두 해를 더 지난 지금의 나는 여전히 이토록 어정쩡하다. 어른이라 말하기엔 지독히 겁이 많고, 아이라고 우기기엔 어떤 책임들이 어깨를 짓누른다. 무심히 불어오는 바람마다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고 싶어진다. 가끔은 너무 고단해 이 모든 마음을 어리광처럼 털어놓고 싶지만, 그저 꿀꺽 삼켜 목구멍 너머로 흘려보낸다. 이제는 마냥 어리다는 핑계로 용서받을 수 없는 나이라는 것을 알아버려 그렇다. 사무치는 외로움 또한 마음 한켠에 고이 묻어두고 만다.

서른이 아니라 마흔이 되면 조금은 다를까 싶지만, 주변의 마흔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마흔을 지나 쉰, 예순이 되어도 늘어나는 것은 아마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골라 쓰는 가면일 테다.

아, 스무 살의 나는 분명 이 고단한 날들을 지나 언젠가는 한 마리의 우아하고 고귀한 백조처럼 피어날 줄 알았거늘, 물밑에서 누구보다 필사적으로 다리를 휘젓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참 모양 빠지고 서글픈 일이다.


작년 이맘때 나는 병원에 있었다. 정초부터 A형 독감과 폐렴, 신우신염이라는 트리플 콤보를 맞아 열이 40도까지 올라 일주일간 입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컨디션이 아주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악물고 무리해서 놀다가 사달이 난 것이니 멍청하다 욕먹어도 싸다. 그때의 나는 그날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그래ㅡ 마치 한이 맺힌 사람처럼 미쳐 밤을 새워 놀았다.


나는 늘 때를 잘 타지 못했다. 그 나이에만 할 수 있고, 지나버리면 그저 안타까워 입 속을 떫게 만드는 것들. 예컨대 부모와의 정서적 유대 형성, 년의 순수한 추억과 우정, 생으로서 학업에 전념할 기회와 권리, 캠퍼스생활 은 청춘의 유희.

그러니까 나의 일탈은 뒤늦은 미련이다. 잿투성이 신데렐라가 이미 열두 시가 지났음에도 분침을 붙잡고 버티는 우둔한 집착이다.


내 첫 직장은 조금 야박했다. 그곳은 최저시급과도 같은 돈을 쥐여주면서 빨간 날도 토요일도 없었다. 달에 한 번은 일요일마저 없었다. 그러니 나는 스무 살이 되는 새해 첫날에도 새벽같이 출근길에 나서야 했다.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목의 유흥가에는 술이 덜 깬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늘어져 있었다. 그들이 쏟아낸 토사물을 두 블록마다 지뢰밭처럼 피해 다니느라, 맞지도 않을 구두를 신은 뒤꿈치가 쓰라렸다.

평일이면 앉을자리는커녕 숨 쉴 틈도 없이 모르는 이의 어깨를 밀며 날을 세우던 지옥철이거늘, 그날만큼은 아주 여유롭던 거다. 한적한 좌석들 사이로 몇몇 졸린 얼굴들이 연신 고개를 떨구었다. 아마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을 테지.

그때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휴대폰을 무심히 꺼내 들었다. 스무 살이 된 것을 기념하는 친구들의 단체채팅방에는 전날의 유희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너무 재밌었어ㅋㅋ

나도~!

조심히 들어가~

또 보자!


“이번 역은 동인천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이제 막 해가 떠오르던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나치게 한적했다. 그 고요 속에서 내가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느냐 묻는다면, 아ㅡ 그래. 단언컨대 서러움이었다.

그 뒤로 나는 남들이 쉴 때 함께 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여전히 억척스럽게 살아내는 나날들 속에 그 결심은 무색해지기 일쑤였지만, 그것만은 언제나 나의 소망이었다.




어쨌든 지겹게도 또 한 해가 갔다. 나는 이제 남들이 쉴 때 쉬는 사람에 가까워졌다. 고무적인 성과다.

매년 새해가 밝으면, 나의 1순위 목표는 늘 이것이었다.

1. 살 빼기


음, 나는 여전히 미련투성이 인간이지만, 두 살이 되었으니 조금만 더 의젓해지기로 한다.

1. 살 빼기 건강해지기.

2. 가득 찬 수레 되기.

1) _________하기

2) _________하기

3) _________다시 쓰기

4) _________쓰기

5) _________되어 _________받기

3. 나를 다시 사랑해 주기.
4. 그리하여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내 수레는 늘 빈 주제에 요란하기만 했다. 나는 그게 항상 못 이기게 싫었다. 그러니 2번의 소항목들은 모두 비밀이다. 전부 이루어서 가득 찬 수레가 되고 나면, 그때 요란을 떨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이제 예쁘고 다정한 위로만으 꿈과 희망이 가득한 미래를 그릴 수 없다. 아무래도 순수한 두 살이 아니라 닳아버린 서른두 살이라 그럴 테다. 그러니 예쁘고 다정한 위로는 애정으로 받아, 잠시 마음을 데우는 동력으로만 사용해야겠지.

예쁘고 다정한 것들로만 쌓은 자기애와 자존감은 허상과도 같았다. 지독하게 무용하고 허약한 그것들이 무너졌을 때, 나는 정말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수만 갈래의 감정을 억눌러 삼키며, 그보다 단단한 뿌리가 내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지난 한 해였다.


나는 지독한 결과주의자. 그러니까 2번을 전부 이루고 나면 자연스럽게 나를 사랑하게 될 테다. 그러면 정말로 더 괜찮은 내가 될 것 같다. 그러면 이 삶에도 조금쯤은 미련이 생기겠지. 그거면 되었다.






안녕하세요, 마른틈입니다.

요즘 저는 마구 공개하기에는 다소 쪽팔린 마음을 멤버십이라는 공간에 기대어 숨겨내고 있습니다.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가운데 어린 학생분들도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고단했던 한 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마음을 간신히 주워 담아 2025년을 지나 2026년을 맞이합니다.

저는 여전히 문득문득 서글퍼지고 사무치게 외롭지만, 아주 느리게나마 똑바로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늘 걱정해 주시고 따뜻한 관심을 보내주셔서 감사했던 한 해였습니다.

새해에는 조금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가슴께에 파문을 드리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늘 건강하시고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제 글이 당신께 작은 평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른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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