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보다 향
봉투에 담긴 새해
새것은 무엇이든 좋다.
꽉 찬 새 치약, 보송한 새 장갑.
아무리 비싼 옷도 새 옷 앞에서는 살짝 밀린다.
다만 새해는 '무엇이든'의 범주에서 조금 예외다.
희망과 계획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문을 여는 손잡이가 유난히 무거운 날처럼 느껴진다.
하루가 아니라 한 해를 여는 아침이기에.
왁자지껄하던 연말의 공기가 하룻밤 사이 잦아들고,
어제와 다를 리 없는 태양을 보겠다고
산으로 바다로 가기도 한다.
봉투를 뜯으며
1월 1일. 우리 집은 조금 조용하다.
늘 제일 먼저 일어나는 첫째 언니보다
셋째인 세희가 먼저 눈을 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쌍둥이 두희도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부스스한 머리에 내복차림으로 둘은 베란다 창가에 섰다.
"엄마? 해가 뭐가 달라요?"
"어제랑 비슷해요."
나도 마시던 보리차를 식탁에 내려놓고 다가갔다.
아이들은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따끈했다.
봉투 속 귤빛 아침
"어디 보자."
새해 첫 해는 작고 오렌지빛이었다.
구름 가장자리로 스며드는 빛이 새해의 첫 순간을 밝혀주고 있었다.
"귤 같아요."
"그러네. 새해는 귤 같네. 빛나는 귤."
"맛있겠다."
새해 첫 햇빛을 엽서에 붙여 보냅니다
우리는 새해의 다짐이나 감상 없이 그냥 신나게 귤을 까먹으러 갔다.
곧, 거실 가득 상큼한 과일 내음이 퍼졌다.
소원이 있다면, 올 한 해도 되도록 많은 날이 이렇게 산뜻한 기운이 번지기를.
우리 집 식구들이, 내 주변의 모든 분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복보다는 보통의 하루를 빈다.
귤 같은 해를 바라보며,
소박하고도 거창한 새해 소망을 조심스레 전한다.
"엄마, 호빵도 먹고 싶어요."
또, 호빵같이 따스한 온기를 지닌 날도 많기를.
메뉴.. 아니 소원 하나를 더 추가한다.
산뜻함을 동봉합니다
그렇게 우리 집의 작은 새해 아침은
귤 향과 호빵 온기, 웃음과 소망으로 조용히 채워졌다.
새해의 문을 열고, 오늘을 시작하는 느낌 그대로,
이 순간을 엽서에 담아 봉투에 넣어본다.
여러분의 하루에도 사근한 온기가 오래 남기를.
우리 각자의 새해가 천천히 밝아오기를.
이 글이 새해 연하장처럼 도착했으면 좋겠다.
새해 향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