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by 마른틈

짐을 쌌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지독한 P다. 그런 주제에 누구의 재촉도 없이 무려 출발 이틀 전날 선선히 짐을 꾸렸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아주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다.

보통 짐을 챙기는 일은 나의 역할이 아니었으니, 무엇을 챙겨야 하나 멀뚱히 서서 고민하다가, 가장 먼저 가방에 챙겨 넣은 건 수많은 약들이었다. 가지각색의 하찮은 작은 알약들.

아니, 아니다. 하찮은 건 약이 아니라 고작 그딴 약에 기대어 연명해야 하는 허깨비 같은 몸뚱이다. 약통을 뒤적이다 문득 맥박 약이 다 떨어졌음을 깨닫는다. 이참에 약이 없다는 핑계로 심장이 터져버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젓는다. 토요일 오후 일찍 비행이니 오전에 서두르면 병원에 들러 처방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방 한켠에 늘 먹는 약과 상비약, 수면제까지 잔뜩 담아둔 모습을 바라보니 문득 어이가 없다. 이게 죽으러 사라지는 사람의 가방인지, 살기 위해 떠나는 사람의 가방인지 알 수 없는 꼴이다. 언제나 그렇듯 삶을 제대로 붙들기엔 어딘가 삐걱거리고, 죽음을 바란다기엔 영 어설프고 애매한 무용한 행위들이다.


나는 요즘 그에게 매일 같이 “제주도에서 돌아오지 않고 죽어버리겠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가 내게 했던 것처럼 아주 못된 말로 상처 주고 싶은 마음이 칠 할 쯤이고, 약간의 충동적인 마음이 삼 할쯤 되는 것 같다.

그래, 나는 살고 싶어졌지만, 여전히, 아직도 충동감을 조절하는 일이 어렵다.


“H,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저 돌아올 수 있겠죠?”

“작가님을 알아주는 회사가 있고, 이곳에서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고, 작가님의 안녕을 바라는 내가 있는데 안 돌아올 이유가 없잖아요.”


언제나 다정한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내가 밉다. 이토록 예쁜 다정을 예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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