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꼴사납게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시작은 어김없이 이른 새벽 욕실이었다. 다만 평소와 조금 달랐던 건, 간절히 죽음을 소원해서도, 끔찍한 상상에 매몰돼서도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그냥 갑자기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불현듯 덮쳐오는 기쁨이 얼떨떨했다가, 그 환희가 허상과도 같아 잘게 부서지는 기분에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닥쳐오는 설움에 별안간 비명을 토해내고 싶다가도, 물에 젖은 솜처럼 목구멍을 무력하게 틀어막았다. 마치 꽤 괜찮았던 어느 날에 느꼈던 낙화와도 같은 감정. 나는 요즘 이렇게 서로 어긋나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
허나 오늘만큼은 그 기쁨과 슬픔에 미련토록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오늘은 아주 바쁜 날이다. 긴 휴가를 떠나기 전, 내가 쥐고 있던 업무를 최대한 예쁘게 마무리를 지어놓아야겠다. 그리고 우리 과장님의 생일이시니, 그도 챙겨드려야지.
과장님은 얼마 전 새로 입사하셨다. 덕분에 나는 임시로 맡고 있던 경영업무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본 업무에 투입되기 시작했는데, 단 한 달이라도 먼저 들어온 짬 덕인지, 혹은 대표님이 나를 신뢰해 주신 덕분인지, 그도 아니면 과장님의 업무 흐름을 대강 파악하고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과장님도 나를 꽤 좋아하시는 눈치다.
나는 사실 그간 나의 생일도, 타인의 생일도 특별히 챙기며 살아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생일 전날도, 그 전날도 생일 전야제처럼 늘 파티 같았으면 좋겠다”던 어떤 이의 다정을 받은 이후로, 가능하다면 누군가의 ‘전야제’에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쓸데없이 눈물 바람이나 태우며 시간을 날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하며 소소한 생일 선물을 챙긴다. 그리고 출근 버스 안에서 내내 회사 근처의 베이커리 집을 검색한다.
일을 얼른 마무리해놓고 과장님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퇴근 전에 대표님께 업무 보고를 드려놓으면 좋아하시겠지… 그분께 최대한 빨리 도움이 되고 싶어…
아, 내가 늘 대표님만 찬양하니 우리 회사에는 대표님만 있는 줄 알겠지만, 사실 우리 부장님(차장님이 얼마전 진급하셨다)도 정말 좋은 분이다.
어제 부장님 앞에서 “사무실에 히터가 예열되는 데 오래 걸리니, 미니 난로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스치듯 했는데, 그래 놓고 나도 곧바로 잊어버렸다. 그런데 오늘 출근해 보니 사무실의 모든 자리, 책상 밑마다 새 난로가 하나씩 놓여있지 않은가.
알고 보니 밤 열두 시까지 철야를 하셨던 부장님께서 쿠팡 로켓배송으로 그것을 주문해, 포장을 말끔히 뜯어 자리마다 코드까지 꽂아두고 가신 거였다.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섬세할 수 있지. 나는 또 울었다. 이쯤 되니 이제 내 감정 버튼이 고장 난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오늘은 출근길마저 뻥뻥 뚫린다. 늘 타던 시간대의 버스인데도, 주변 카페들을 기웃거리며 혹시 홀케이크를 파는지 살필 만큼 시간이 아주 여유롭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불을 켜고 내 자리의 컴퓨터 전원을 켠다. 늘 마시는 콜드브루 더치커피를 내 전용 텀블러에 담아 탄다. 나는 빈 사무실을 죽 둘러보다, 청소도구를 들었다.
실은 나는 이런 행위가 참 싫었다. 그러니까, “미쓰리~”같은 행위들. 조금 편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애매한 지점에서 끊겨버린 나의 경력에 대한 피해의식 같은 거였다. 전문적이지 못하고, 누구나 대체할 수 있으며, 그러다가 나이 사십쯤 되면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에게 손쉽게 갈아 끼워질 인력. 적당히 어른들의 비위나 맞추며 손님들 커피 접대나 하고, 사무실 관리나 하는 역할 정도로 소비되는 존재. 사무실에서 내 역할은 대개 늘 그런 것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언제나 모른 척하며 살아왔다. 그것을 똑바로 인식하는 순간, 나의 존재는 하염없이 밑바닥으로 처박힐 테니.
그러나 요즘의 나는 자처해서 사무실의 미화를 맡고, 대표님의 쓰레기통을 때마다 비워드린다. 그분이 요청한 적도 없는 일정까지 챙기며 비서처럼 굴어댄다. 대표님의 손님을 정중하고 반갑게 맞이한다. 아양 떠는 데는 아주 재주가 없는 ISTP임에도 불구하고, 그분 앞에서만큼은 능청스러워 잔망 떨기가 제법 그럴듯하다.
그건 내가 더 이상 나를 “미쓰리”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내 나를 점철하던 피해의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는 존경하는 나의 대표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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