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잠에서 깨어날 시간

by 마른틈

늘 그렇듯 알람보다 두어 시간 일찍 눈을 떴다. 네 시간 반. 수면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원치 않게 눈을 떴으나 바로 다시 잠들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허나 각성하듯 깨어버린 정신은 쉽사리 잠들지 않는다.


사실 나는 원래 잠이 아주 많은 편이었다. 잠귀도 무척 어두워 알람을 곧잘 놓치곤 했으니, 수십 개의 알람을 3분 단위로 맞춰놓고도 불안한 날이면 지인들에게 모닝콜을 부탁하기도 했었더랬다.

그랬던 내가 수많은 밤, 공포와 불안에 떨며 울다 잠들던 시간이 학습된 트라우마가 되어 해묵은 수면장애로 남았다. 그리하여 선잠에 빠지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얄궂은 그것이 닥쳐오고, 지리멸렬한 고질병에 두방망이질하는 심장 소리가 깊은 밤의 단잠을 깨운다.

아직 시야가 까만 어둠에 적응하지 못한 그 밤, 나는 또렷하게 눈을 뜬다. 그러나 마치 장님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그저 요동치는 나의 심장 소리만을 들으며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보다 조금만 더 건강하지 못하게 되면, 아주 조금만 더 나이를 먹은 뒤에는, 이대로 영영 눈을 뜨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어떤 준비도, 인사도 못 하고, 마지막인 줄조차 모른 채 이생이 끝나버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 이 모든 발악이 당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거지.

그토록 '쓸모'라는 것을 찾아 헤맬 때는 아마, 그렇게라도 죽길 바랐던 것 같다. 그에게 어떤 쓸모조차 되지 못한 내가 너무 한심해서, 미안해서 영영 사라지고 싶었다. 다만 그런 식으로라도 그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얼마 되지도 않을 나의 질병 사망보험금이나 들춰보곤 했던 거다.


오전 내 병원을 들르기 위해 일찍 나섰다. 내가 살던 곳은 오늘 웬일로 눈이 펑펑 와서 도로와 인도에 두텁게 쌓였다. 눈은 제주도에서나 보고 싶다니까는… 하하, 이 빌어먹을 날씨 요정은 역시 어디 안 가는구나 싶어 허탈하게 웃던 순간, 제주의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제까지 눈이 와서 한라산에 눈이 잔뜩 쌓였어요ㅡ 이제 출근하는데, 오늘 날씨가 정말 좋네요, 아무래도 마른틈씨 날씨 요정이 맞나봐요."


어라, 내가 말하던 자칭 '날씨 요정'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하여튼 시작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밀린 연락들을 주르륵 살피는데 어쩐지 심상치가 않다.


며칠 전, 갑자기 점심을 함께 먹자며 친구가 회사로 찾아왔다. 얘가 이럴 애가 아닌데 왜 이러나 싶었지만 사실 엄청, 정말 엄청 반가웠다. 나는 춥다는 핑계로 꼬리를 마구 흔드는 강아지처럼 그 애의 팔짱을 끼고 바짝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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