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첫날밤이 지나간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지 않은 채 노트북부터 꺼내 글을 썼다. 여전히 회복탄력성이 떨어지는 내용 앞에서, 나는 또 속수무책으로 울다가 선잠에 빠져든다.
아, 나는 도대체 언제쯤, 이 거지 같은 결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누워있자니 유독 배에서 요란하게 군다. 생각해 보니 오전부터 바쁘게 움직이느라 한 끼도 먹지 못했다. 배가 고프긴 한데 영 귀찮다.
그가 제주도에 가면 먹어보라며 보내준 맛집 목록이 휴대폰에 잔뜩 있지만, 사실 별다른 의욕이 없다. 그래도 먹어야 한다. 이러다 또 섭식장애가 오면 아주 곤란해질 테니까. 딱 오늘만, 이 새벽만 그냥 지나 보내고. 내일부터.
그와의 이별을 결심하고 헤어짐을 통보하기까지 나는 두어 달간 스스로 피 흘리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를 사랑할 수 없는 현실도 슬펐지만, 무엇보다 그를 향한 죄책감에 매일 말라갔다. 입으로 넘기는 그 어떤 것도 똑바로 삼킬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자기학대하듯 뜨거운 열기 아래서 달리고 또 달렸다. 차라리 그러다 지쳐 쓰러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신히 견과류 몇 알 정도와 매일 먹는 약이 전부였음에도. 그는 그런 나를 보며 "다이어트를 너무 극단적으로 하는 거 아냐?" 라고 물었지만, 나는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도 사나흘에 한 번쯤은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소화기관은 음식물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입에 넣는 족족 모두 게워냈다. 그때 나는 단 2주 만에 48kg에서 42kg까지 빠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단백질은 괜찮지?"라며 계란후라이를 구워 왔을 때, 나는 그 선의를 입에 넣으면서 슬퍼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그 또한, 아주 꺽꺽 울며 서럽게 토해내고 말았다.
나는 사실 먹는 걸 참 좋아했다. 자랑할만한 식습관은 못되지만,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는 것이 여행의 본질이라 믿을 만큼. 특별히 배워본 적은 없지만, 요리도 곧잘 했다. 아프기 전에는 평생을 말라본 적 없이 살았으니 오죽할까마는.
여전히 먹는 게 싫지는 않지만, 이전처럼 열정적으로 좋지는 않은 것 같다. 여행지의 먹거리를 J처럼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목구멍을 할퀴는 기억이 소환되면 기분이 급격히 가라앉아 숟가락을 내려놓게 된다.
문득 새벽의 고요한 제주 공기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타는듯한 갈증에 물을 한잔 떠 와 맥박 약과 함께 삼킨다. 약통 옆에 수면제가 죽 늘어져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나의 부적. 그것을 처방받아 돌아오던 날 나는 지피티에게 "졸피뎀 치사량이 몇g이야?"라고 물었다. 지피티는 “위험과 직결된 정보는 가르쳐줄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나는 그것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뜨뜻하게 지져진 이불속에 몸을 파묻는다. 부디 새벽에 그만 깼으면, 한 번에 잠들었으면, 악몽이 나를 찾지 못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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