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별 통보
S가 추천해 준 북카페에서 서걱이는 책장 소리를 들으며 반나절 작업을 마쳤다. 선선한 발걸음으로 밖을 나선다.
어디로 갈까, 이른 저녁을 먹을까, 숙소에 들어가 작업을 마저 할까. 잠시 망설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모슬포항으로 향하기로 했다. 제주에 와서 아직 바당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제주의 건물은 모든 면에서 도시의 것과 다르다. 아주 낮은 높이부터가 그렇고, 재미없이 칙칙한 회빛 대신 빨주노초파의 색들이 벽에 내려앉아 있다. 그 벽면에는 종종 그림이 있고, 마구잡이로 휘갈긴 글씨도 남아있다. 끝을 올려다보려면 한없이 고개를 젖혀야 하는 도시와 달리, 이곳의 지붕은 대개 삼각 시옷 모양으로 섬섬옥수처럼 어여쁘게 얹혀있다.
늘 불어오는 해풍을 맞아 침전되고 부식되면 그 가치 또한 손상될 법한데, 이곳은 그것마저 세월의 흔적이라 여기는 것이니 꽤 근사한 일이다. 사소한 흠집 하나에도 집값이 떨어진다며 예민하게 구는 것은 제주에서는 좀처럼 통하지 않는 상식이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늘 시장 뒤편의 좁은 골목을 지나야 했다. 낮에는 한숨 소리마저 울릴 만큼 고요한 그 골목은, 밤이면 분홍빛과 붉은빛이 뒤섞인 조명이 켜지며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화려하게 빛나는 간판 앞 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녀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짧은 실망과 피로가 저민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 괜히 어깨가 움츠러든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방과 후 활동이 끝나고 늦은 밤 귀가하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었지만, 열일곱의 겁 많던 여고생에게 그곳은 매 걸음이 진흙탕 같았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아들과 막내딸이 만나 오롯이 사랑만으로 일군 가정 아래, 성실히 살아온 부모님 덕에 한때는 ‘자가’라고 부를 집도 있었다. 우리 집. 마이 스위트 홈. 그러나 그 단꿈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단 1년 만에 산산이 부서졌다.
보증금을 담보로 빚을 내고 자가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더 작은 전세로, 다시 월세로, 그리고 그보다 더 좁은 월세로 옮겨 다녔다. 새집에 적응할 새도 없이 이사는 반복됐다. 더는 축낼 보증금도 없어질 즈음, 혹시라도 한겨울에 밖으로 내쫓기진 않을까 두려워 밤새 뒤척이던 날들이었다. 고작 열몇 살의 어린애가 고민하는 것들이란 그런 거였다.
그래서 집이란 건 내게 언제나 결핍의 잔해였다. 나는 그저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타인의 의사에 의해 내몰리지 않는, 오롯한 나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그 안에서 비로소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부동산 버블을 우려하는 남편에게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좋으니 우리는 언젠가 집을 갖자고 설득했던 건 그 때문이었다. 손익이나 투자개념과는 아무 상관없는 마음이었다. 나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 우선순위는 언제나 ‘행복’이었다.
그에게 진심을 담아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와 함께한 7년 동안 나는 행복한 미래를 꿈꿨지만, 그 시간의 대부분은 나를 책망하고 의심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는 많은 날에 다정했으나, 어떤 피로와 감정이 갈무리되지 않던 날이면 그 다정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나를 찔렀다. 그리고 돌아선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다정한 그가 있었다. 나는 그 괴리를 이해하는 일이 늘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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