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노을이 수평선 뒤로 가라앉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한참 동안 모슬포항의 바다 앞에 서 있었다. 쓸려오는 파도가 잘게 서리치다 수많은 모래알에 부서지는 해변의 바다와 달리, 항구의 바다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띤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마치 집어삼킬 듯이 굽이치던 파도는 점차 힘을 잃어 모슬포항의 벽에 부딪혔다. 그렇게 되돌아오는 물결과 맞서다 이내 스러졌다. 그 두 물결이 만나는 역설적인 지점을, 나는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어쩌면 그것이 딱 내 꼴과 같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기세 좋게 시도했다가, 끝까지 가보기도 전에 아주 작은 물살에 잘게 부서져 버리는 삶. 종래에는 이도 저도 아닌 채 남아버린 나. 어설프고 볼품없어 멍청한, 허섭스레기 같은 나.
그에게 저녁은 먹었냐는 연락이 왔다. 나는 바다를 보고 있다며 물 사진을 한 장 보냈다. 그 어떤 풍경도 아닌, 오롯한 물결의 사진을 받아 든 그는 “그렇다고 진짜 물만 찍어서 보내는 게 어딨냐”며 당혹스러워했다. 나는 “의욕이 없는 사람에게 풍경 사진을 기대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어느덧 제주에 온 지 1박 2일 차 저녁이거늘, 제대로 된 끼니라곤 경숙씨의 어묵 국물 조식이 전부였다. 문득 허기지는 기분에 근처에서 유명하다는 피시앤칩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담하게 꾸며진 1인 전용 바에 앉아 생선튀김을 시키곤, 안주가 안주이니만큼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허나 고민 끝에 하릴없이 향한 손가락은 결국 에이드나 주문할 뿐이다.
요리를 마저 포장해 숙소에 들어서니 S가 기다렸다고 했다. 나를 기다리다 배가 고파 간단히 끼니를 챙겼다고. 조금만 더 일찍 들어갈걸, 낭패였다.
미안한 마음에 간단한 안주를 주문하고, 경숙씨까지 불러 맥주와 막걸리를 곁들인 조촐한 자리가 마련됐다.
우리는 각자 사는 얘기를 했다. 어쩌다 제주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원래는 무슨 일을 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이 넓은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님을 깨달았다.
S와 나는 연로한 경숙씨의 즉흥 무용 영상을 보며 소녀처럼 꺅꺅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넓은 무대에서 작은 몸 하나로 홀로 공간을 장악해 내는 그녀의 집중력과 존재감은 가히 감탄스러웠다.
"너무 멋있어요… 저는 몸치라 이런 거 상상도 못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내게 경숙씨가 단호히 말한다.
"그런 말 하지 마. 그건 본인을 스스로 가두는 거야."
문득, 내가 오래 나이를 먹고 늙을 수 있다면, 경숙씨처럼 늙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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