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언니의 결혼식이 코앞이었다. 단정한 원피스를 꺼내 입고, 작년에 열심히 신었던 구두를 꺼내 보았다. 신발장 한구석에 숨어있던 탓에 찾아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후, 입김을 불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겉면을 쓱 훑어본다. 깔끔하고 예뻐서 한동안 자주 신었던 기억이 있는데, 언제부터 구석에 밀려 그 존재감마저 잃게 되었나 곰곰이 생각한다. 굽도 단단하니 아직은 쓸만한 것 같은데…라며 신발 안쪽을 들여다보니 겉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깔창 위의 거뭇하게 일어난 거스러미가 눈에 띈다.
아, 맞다. 이 싸구려 구두는 내부 마감이 아주 엉망이었다. 고단한 일정을 견뎌낸 무게만큼 쓸려나간 부스러기가 늘 발에 달라붙어 묻어났다. 집에 돌아와 발에 묻은 그것들을 무심하게 털어내면서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타인은 볼 수 없는 모습이니까. 겉보기엔 그럴싸한 이 구두가 실은 싸구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오직 나만 아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예기치 않게 좌식 식당에 들어가 신발을 벗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때 나는 조금 들떠있었다. 오랫동안 가고 싶었으나 이런저런 핑계로 미뤄두었던 그 식당에 가게 되었으니 그저 어떤 메뉴를 고를 것인지에 대한 고민 따위나 하며 내 구두 속 사정에 무지하고 말았다. 그렇게 신발을 벗는 순간까지도 아무것도 모른 채 즐거웠을 테다.
그러나 평소처럼 신발을 벗으려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순간, 맨발에 진득하게 들러붙은 잔여물을 발견하고 말았으니 눈치 없이 잔뜩 들떴던 마음이 폭삭 주저앉은 것이다. 나는 막 벗던 신발을 급히 다시 구겨 신고는 “화장실에 다녀올게, 먼저 들어가 있어”라며 일행들을 들여보냈다.
도망치듯 화장실로 숨어 들어가 애꿎은 발과 구두를 털어냈다. 그 짧은 시간 한없이 우스워 보였을 내 꼴과 잔뜩 당황해 구겨진 안색을 들키지 않았을는지 가슴이 콩닥거렸다.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에 돌아갔지만 나는 줄곧 기대했던 음식의 맛에도,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았지만, 여전히 내 취향대로 생긴 그 구두를 미련스럽게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다시 내려놓았다. 겉보기엔 그럴싸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지만, 오직 나만 알고 있는 값싼 마음. 그러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들켜 범람하듯 쏟아지는 감정에는 한 번도 대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무력하게 쓸려가고 나면 잔해조차 남지 않은 마음이 헛헛하다. 나는 그 싸구려 구두를 보며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불행하다”고 말했다. 본인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은 전부 하잘것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스스로가 이 사회의 밑바닥이나 다름없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말을 잃었다. 네가… 불행하다고? 그래…. 행복의 기준은 지독히 주관적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꽤나 명예로운 직업에 오래도록 쌓아온 경력, 선망받는 배우자까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을 삶이란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거늘, 그런 삶을 두고 처절하고 참담하다고 말하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강렬한 폭열감이 치밀었다.
네가 밑바닥이라면, 나는 그보다 한참 더 아래 지하 어딘가에서 머리를 처박고 살아가고 있지 않겠나. 썩은 물인지 고인 물인지도 가릴 수 없는 곳에서 그저, 숨이 붙어있는 것만을 감사하며.
나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옹졸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있지도 않은 침을 몇 번이나 꼴깍 삼켜야 했다.
그때 함께 이야기를 듣던 다른 친구가 그 친구의 손을 꼭 잡으며 참 잘 버텼다고 말했다. 여태껏 많이 고생했으니 이제는 조금 평안해져도 된다고, 그리 말했다. 그 말을 건네는 얼굴엔 순수한 안타까움과 걱정의 기색이 완연했다.
친구가 불행을 고백할 때 나는 치졸한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간신히 고개만 끄덕이는 게 전부였으나, 그 손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문득 스스로가 아주 형편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감히 타인의 불행을 나의 잣대로 판단하고 재었구나.
당신의 불행이란 고작 그따위라, 안락한 집에서, 안정적인 환경과 적당한 명망을 지니고서 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이라면, 내가 겪어온 것들에 비해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고작 그것이 네 불행이라 냉소했다.
그러면서 그 마음을 밖으로 흘려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최선이라 믿었다. 하지만 단단히 맞잡은 두 손 앞에서 나의 최선이 사실은 아주 최악이었음을 깨닫고 만 것이다. 나는 그대로 쥐구멍에 꺼져버리고 싶어졌다.
나는 늘 그 친구가 가진 것들을 가지고 싶었다. 아마도 우리의 출발선은 같았을 것이다. 가난했고, 위태로운 가정 안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일찍 사회로 밀려나길 강요받았다.
우리가 다른 길을 걷게 된 건 순전히 친구의 독단이었다. 친구는 자기 발목에 메인 족쇄를 모두 걷어차고 떠났다. 절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자기 몫의 밥그릇을 영리하게 챙겼다.
반면 미련한 나는 병든 어미를 차마 놓을 수 없던 탓에 홀로 남아 ‘그렇게’ 사는 선택을 해버렸다. 그 모든 족쇄를 오래도록 붙들고 있다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무너질 것 같아질 때야 뒤늦게 놓았다.
나의 콤플렉스는 지독한 가난도, 술에 취해 나를 괴롭히던 부모도, 때를 놓친 교육에 대한 미련도 아니었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피해의식과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억울함, 그리하여 혀끝을 오래 맴도는 쓴맛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찌해야 나 또한 그 손을 어루만져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타인의 불행 앞에 전시하듯 나의 불행을 비교하며 탄식하지 않고, 그들의 고단함을 인정하고 다독이는 방법이. 그저 밖으로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믿어왔던 나를 지우고 싶었다. 나의 못생긴 콤플렉스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어진 것이다.
나는 오래전 그날에 집에 돌아와, 어쩐지 치미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구두를 벗어 신발장 한구석에 처박아두었다. 사실은 버리고 싶었으나, 내심 마음에 들었던 그 구두를 단칼에 버리지 못하는 미련이 그랬다.
어쩌면 진득하게 눌어붙은 피해의식과 지나가 버린 시간들에 대한 미련 또한 그렇게 버리지도 신지도 못한 채, 신발장 어딘가에 남겨둔 내가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겉은 멀쩡하지만, 엉망진창인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살아왔다.
쓰레기봉투 속에 오래도록 신발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던 구두를 조심스레 담아 넣었다. 그 구두는 오랜 시간 나와 함께했고, 여전히 어여쁘다. 방심하면 들러붙는 마음이 마치 거뭇한 부스러기 같지만, 나는 그 미련을 애써 털어내고 봉투의 끈을 질끈 동여맨다.